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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예수 부활 여드레 되는 날입니다.

by 분당교회 2020. 4. 19.

2020년 4월 19일 부활 2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요한 20:19-31

 

예수 부활 여드레 되는 날입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 한 가운데 서신 예수님이 첫 인사를 전합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인사를 듣는 제자들은 지금 낙심과 절망,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로 인해서 어리둥절한 심히 불안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평화하고는 거리가 먼 상태인 것이죠. 이런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먼저 자신의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못자국난 손, 창에 찔려 파인 허리를 보여주시며 내가 바로 사흘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임을 확증해 주고 계십니다. 이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자신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 알려주신 그 말씀대로, 하느님이 자신을 살리셨다는 것을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죽음을 너머선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옳다는 하느님의 확증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들이 옳다는 하느님의 확증입니다. 

 

이렇게 부활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고자 하느님의 뜻에 오롯이 순종하며 살아가신 예수님의 삶만이 옳다는 하느님의 인정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의 믿음이 옳았다는 하느님의 인정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기뻤습니다. 로마제국이 가하는 가장 극형의 죽음, 유다인들에게는 가장 저주받은 죽음, 바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무덤에 묻힌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기쁨이 솟아올랐고 이내 제자들은 평화를 회복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인사하시고 자신의 몸을 보여주신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 자신을 다시 살리신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굳게 서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확신만이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는 평화를 누리게 해 줍니다. 하느님이 하신 일, Fact에 대한 확고한 믿음, Faith가, 내적 평화와 견고함 가운데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한 평화의 인사는 “너희에게 부활의 확신이 있기를!” “하느님만을 신뢰하기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이 믿음을 갖게 하고자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한다고 말합니다. 31절,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서신에서 베드로는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을 칭찬합니다. 1:8-9,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넘쳐 있습니다. 9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결국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활의 확신 위에 굳게 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평화를 기원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란 스승 곁에서 보고 배우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주님과 같이 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이 하신 일들을 보며 배웠습니다. 이제는 부활의 확신 가운데 세상에 나가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 운동을 이어서 펼쳐가야 합니다. 이것을 선교라고 합니다.

 

선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 분당교회는 성공회 선교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합니다.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은 하느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성령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어 주신 창조를 연상케 합니다. 숨, 루아흐, 성령님이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낙심과 절망, 수치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불어 넣어 “사도”라는 새로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오늘 1독서 사도행전 2장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 살아가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부활 절기는 성령강림절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으로 구원받았어도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만, 세상 속에서 일상 가운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가 매주일 봉헌하는 감사성찬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은총의 시간인지를 거듭 생각하게 됩니다. 한 주간 세상 속에서 너무나 자주 주님을 잊고 세속과 욕망을 따라 살고 있는 연약한 우리들입니다. 제자들처럼 실패감에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배의 자리에 나오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먹이시며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감사성찬예배의 절정인 성찬기도문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고 신앙의 신비를 선포한 후, 드리는 기도가 이렇습니다. “간절히 구하오니, 이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받는 모든 이에게 성령을 내리시어 하늘의 축복을 나누게 하시고, 자신의 몸과 영혼을 하느님께 드리어 합당한 산 제물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소서.”

 

부활절부터 승천일까지 드리는 성체후기도도 이렇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부활의 신비를 나타내는 이 성사를 받았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사랑의 성령으로 채우시고, 그 사랑 속에 한마음이 되게 하시어, 부활의 기쁨을 항상 누리게 하소서.”

 

연중주일에도 성체 후 기도문도 이렇습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도우시어 사랑 가운데 상통하며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이 명하신 일? 선교! 선교는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감사성찬예배는 그리스도인을 성령으로 충만한 선교적 존재로 변화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창조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 4:23-24, “23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영적으로 참되게 감사성찬예배를 드린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며 고백합니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그리고 세상 속에서 이 고백대로 살아갑니다.

 

3.

이제 장면은 토마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토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에 근거한 신앙이 아닌 자신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만 믿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토마는 믿음 없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오명을 뒤집어 쓴 제자입니다. 그러나 의심이나 회의도 신앙의 일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의를 거치지 않은 신앙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회의를 모르는 신앙에는 ‘다름’을 용납할 여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근본주의 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저도 대학 시절 신앙에 대한 깊은 고민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바르게 따르고 싶은 갈망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방황했습니다. 그 시간을 통과함으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이렇게 사제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26절, “여드레 뒤에” 부활 팔일 째 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난 날, 토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여덟, 8”이란 일상의 시간인 이레를 넘어선 초월의 시간,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수를 나타냅니다. 전통적으로 성당 입구에 놓인 세례대가 8각형인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세례는 옛 삶, 곧 옛 시간의 죽음인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삶, 새로운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토마가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이 쓰여 진 시기가 대략 100년경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한참이 지난 교회의 시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들의 증언만 듣고 갖게 된 믿음으로, 로마제국 황제에게 드리는 칭호인 “주님”이라는 고백을 예수님께 드리고 사는 것, 야훼께만 드리는 “하느님”이라는 고백을 예수님께 드리며 사는 것,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시대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부활 2주일, 오늘이 부활 후 “여드레” 날, 부활의 시간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교우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성령을 가득히 받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사도”로 변화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설교말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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