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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드릴 봉헌은?

by 분당교회 2019. 2. 5.

주의봉헌일 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신부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드릴 봉헌은?


공항에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는 설 명절 연휴에 하느님께 예배 드리러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성공회는 설과 추석에 별세자들을 기억하며 성찬예배를 드립니다. 내일 모레 화요일 오전 10시입니다. 특히 이 날은 송준영 그레고리 교우님이 별세하신지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그레고리 교우의 영혼이 주님 품에 안식하시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송주한 어거스틴에게 치유의 기적이 임하도록 기도바랍니다. 

 

벌써 1월이 지나가고 2월 첫 주일, 3일입니다. 내일은 입춘이구요. 새로운 결단으로 시작한 2019년이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새 해에 세운 계획과 다짐을 잘 지키고 있으신지요?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정하신 새해 목표와 다짐을 잘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주의봉헌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력으로는 어제 2월 2일이 ‘주의봉헌일’인데 신앙적인 의미가 중요하기에 가까운 주일로 옮겨서 지키도록 합니다. 2월 2일이 ‘주의봉헌일’이 된 이유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 12월 25일부터 40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에 따라 성전에 가서 정결례를 치르고 아기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아이를 낳으면 3가지의 예식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남자 아이 같으면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거행했습니다. 오늘 복음 바로 앞 절에 할례 받으신 예수님의 기록이 나옵니다. 할례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의 표지입니다. 



두 번째는 첫 아들이나 동물의 첫 배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식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키실 때 이집트의 모든 첫 배들을 죽이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을 기억하도록 만드신 예식입니다. 


출애 13:1-2, 1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은 모두 나에게 바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 첫 것을 드림은 나머지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아이를 낳은 산모가 부정을 씻는 예식으로 남자 아이를 낳으면 40일 후에, 여자 아이를 낳으면 80일 후에 정결예식을 가졌습니다. 산후조리 후 공동체와 일상으로 복귀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를 낳으면 왜 남자의 배가 되는 80일을 쉬는 것일까요? 여성 차별 문화 속에서 여성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려는 하느님의 배려로 이해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들도 요셉과 마리아처럼, 이 3가지 예식을 치렀습니다. 모두 맏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했던 것이죠.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의 봉헌을 기억하고 ‘주의봉헌일’이라는 절기로 예배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것으로 봉헌된 예수님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전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오신 결과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밤, 게쎄마니 동산에서 드리신 기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를 보면 예수님은 완전하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하느님을 버린 이 세상의 가르침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주일 복음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아버지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루가 4:18-19,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은총의 해! 희년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삶은 죄인과 병자들의 친구로 가난한 사람들을 환대하고 그들을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오늘 1독서 말라기의 말씀대로 그들의 인권을 짓밟는 자들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삶은 오늘 복음 시므온의 예언처럼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함으로 예리한 칼로 찌르는 고통을 성모 마리아에게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봉헌은 오늘 2독서 히브리서 말씀처럼,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로 이 땅에 오신 성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오롯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의 삶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죽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과 삶과 십자가를 통해 참된 봉헌이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임을 알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봉헌하다”는 말은 하느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바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성찬예배를 위하여 하느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바쳐진 그릇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성잔, 성반, 성합이라고 부릅니다. 또 이 그릇 속에는 밀가루 떡은 면병이 있는데, 이것이 성찬의 전례 축성기도를 드리면 성체라고 불립니다. 구별되어 하느님께 바쳐진 것은 하느님의 것이 되고 하느님의 뜻 가운데만 사용되기에 거룩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 받은 여러분을 성경은 성도라고 부릅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별된 존재로 그 삶을 주님께 봉헌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는 양초를 보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오주봉헌일에 그리스도인들의 봉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이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어려운 영역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녀입니다. 

성가정 요셉과 마리아는 할례, 첫 아들을 바치는 것, 그리고 정결예식 등의 예배를 드리면서 아들 예수를 하느님의 것으로 온전하게 봉헌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그러했습니다. 


어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스카이캐슬이 종영했습니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성공이라는 세속의 가치로, 스카이로 대표되는 일류대학을 보내기 위해 자녀들을 억압하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우리 사회는 세상의 성공과 맘몬을 주인으로 여기며 하느님이 아닌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타락한 사회입니다.  


성공회는 구약의 말씀들을 새롭게 적용하여 산후조리를 마친 후 부모와 아기가 성당에 나와 출산감사예식을 갖도록 합니다. 기도서 801쪽에 있는 예식문을 보면, 자녀를 주님께 봉헌하는 부모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기를 위한 사제의 기도문입니다. “모든 생명을 지으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새 생명을 통하여 창조의 놀라운 신비를 나타내시고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고귀한 생명을 우리에게 맡겨 주시나이다. 이제 이 아기를 하느님의 나라의 가족과 백성으로 맞아 주시고 산모를 축복하시어 건강한 몸과 마음을 허락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양육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게 하소서.”


기도문에 나오는 “고귀한 생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시나이다.”라는 기도처럼 아기는 내게 맡겨주신 하느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시편 127:3, “자식은 주님의 선물이며 태중의 소생은 그가 주신 상급이다.” 


그래서 부모가 할 역할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따라” 아기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 욕심이나 세속의 가치로 양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아기가 하느님의 나라의 상속자로 살아가도록 진리와 사랑으로 양육할 것을 약속하오니, 우리 가정에 크신 은총을 내리시고 성령의 빛으로 인도하소서.”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고 여러분의 가정에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 중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하느님의 뜻 가운데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에페소서 5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개역성경은 단호하게 번역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건져 올리라,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시대가 악하다’는 말은 이 시대가 주어진 시간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해 낭비하도록 유혹하는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시간으로 건져 올림으로 삶을 봉헌합니다. 시간을 하느님의 뜻 가운데 사는 것이 곧 예배입니다. 주일감사성찬예배를 중심으로, 매일매일 개인예배를 드림으로, 세상 속에서 노동하며 일상을 사는 생활예배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영성의 척도입니다. 



세 번째는 물질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신자들이 가장 순종하기 힘든 영역이 물질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는 자신이 사용하는 재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물질을 하느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여기는 청지기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와 하느님 나라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봉헌합니다. 오늘 많은 성공회 교회들이 십일조헌금 서약을 봉헌식을 하는데 바로 이러한 신앙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봉헌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말씀을 따라 양육하는 성가정을 세워가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건져 올려 삶이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청지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순종해야하는 봉헌의 시작입니다. 


“자녀, 시간, 물질 등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받은 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주여 이것으로 당신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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