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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베드로와 바울로

by 분당교회 2014. 7. 12.

베드로와 바울로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은 ‘내가 나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문제일 것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표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립니다. 인간의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자각함으로서 생성되는 소명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지옥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각한 사람이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뛰어넘어서 고귀한 가치와 사랑을 실천합니다. 역사는 바로 이 불타는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은 성인 베드로와 바울로의 축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두 사람은 교회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님의 복음과 부활을 증언하였기에 교회가 있을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날 때부터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로, 성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시골 어촌의 이름 모를 어부였던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고 계획에도 없는 새로운 삶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랍비들과 달랐고 따라서 그의 제자가 된 베드로 역시 다른 선생을 모신 제자들과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할 때 베드로는 자신의 인생에 비칠 큰 광명을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고하실 때 얼마나 실망했는지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심한 책망을 하실 때만 해도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예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고 달아났습니다. 그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지만 베드로는 다시 도망칩니다. 고기잡이나 하겠다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동안 베드로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책망하거나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실적을 내놓아 보라고 따져 묻지 않으십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만 물으십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세 번씩이나 물으셨습니다. 그만큼 베드로의 진정한 고백을 듣고 싶어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입니다. 무리는 무엇을 이루고 하느님과 이웃에게 내보이고 싶어 합니다. 어떤 신앙의 결실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영광 돌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신앙적 열매는 바로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도가 사도인 까닭은 예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바울로는 베드로와는 전혀 다른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이었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믈리엘에게서 수학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평탄한 길을 걸었다면 그 역시 최고의 율법학자이자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열정적이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는 변화되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태어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넘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해서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거나 배우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들의 삶을 볼 때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아니, 바뀌었다라기 보다는 가장 자기다운 삶을 찾았을 것이라 보여 집니다.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했고 행복하게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했습니다.


소명의식이라 하면 매우 거창한 일을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소명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세월호의 참극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29 연중 1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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