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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그러나

by 푸드라이터 2013. 4. 15.

그러나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14일 부활 3주일 설교 말씀)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만의 책을 한 페이지씩 평생을 두고 써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한 번 쓰면 다시는 수정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 번 지나간 삶을 돌이켜서 다시 고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아무리 잘못 써도 찢어 없앨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끄러운 흉과 허물이라도, 아무리 괴로운 사건이라도 한 번 지나간 일을 지우거나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엄숙한 삶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끄럽고 괴로운 내용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라리 빨리 마쳐버리고 말고 싶은 심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책에는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는 역접입니다. 이 단어가 들어가면 그 동안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는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드라마나 소설은 이 반전의 묘미를 잘 살려야 재미도 있고 큰 감동을 일으킵니다. 반전이 없는 드라마를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윗왕도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괴로워서 뼛속의 진액이 마르는 고통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나단이라는 예언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거듭났습니다. 그 반전의 결과 그는 성서 속에서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성서는 ‘그러나’라는 반전의 역사와 인생을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뒤집어지는 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유대 지도자들도, 빌라도와 헤로데도, 그리고 군중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하셨고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엄청난 반전입니다.


최후의 만찬 /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드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부였다가 예수님을 따라나섰고 제일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예수님의 질책을 받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향으로 가서 고기잡이나 하면서 살겠다고 했던 매우 나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서 그의 속마음을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인간적으로 세속적으로 생각한다면 배반자에게 복수를 하고 응징을 해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속마음을 믿고 스스로 확인하고 다짐하게 합니다. 결국 베드로는 십자가를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 올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필요로 하셨고 극적인 회심 사건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핍박을 당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교를 세계에 전파하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누가 감히 이 엄청난 반전을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본인도 교인들도 유대인들도 어느 누구도 그의 전향을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인생의 책을 써 가면서 어떤 반전이 이루어질 것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잠시 실패했다고, 잠시 부끄러운 과오를 저질렀다고, 잠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조금 성공했다고, 잠깐 인정받았다고, 우쭐하고 교만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우리의 인생의 계획표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꼭 한 가지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책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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