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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깨어 있으라!

by 분당교회 2020. 11. 30.

2020년 11월 29일 대림 1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르 13:24-37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일, 제 건강의 문제로 영상예배조차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습니다. 교우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 확산이 심상치 않아, 교회위원들과 논의해서 오늘부터 비대면 예배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쁘게 꽃꽂이를 해 놓고 오늘 또래모임별주일예배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카톡으로 올려 드린 지난주일 설교문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 나라 백성은 가장 먼저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성당 대면예배가 아닌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일지라도 전심으로 예배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저도 영상예배를 드려보니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영상예배를 위해서 심방 받으실 때처럼 미리 십자가와 초를 준비하시고 예배 동안에는 초를 켜 놓으면 예배에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고 일구어 가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이 한 시간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먼저 오늘 주보 2면에 실은 “대림절의 신비와 신앙”이라는 글을 읽어드립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1주일입니다. 대림절기란 성탄일 전 4주간 동안 세상의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待臨의 시간입 니다. 라틴어로 “다가오다”(Adventus)는 뜻인 대림절기(Advent)에 우리는 예수님 께서 이 땅에 오시는 신비를 되새깁니다.

 

 

그 신비의 첫 번째는 이천 년 전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하느님의 사건입니다. 성탄절은 산타클로스의 날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고자, 연약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날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더불어 겸손하게 회개와 절제의 마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두 번째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성찬례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매일 순간마다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시고 삽니다.

 

세 번째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한 기대와 희망입니다. 첫 번째 오심으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다시 오심으로 온전히 완성하겠다고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나라를 믿음으로 경험하고 희망으로 앞당겨 살아가며 사랑으로 세상에 증언합니다.

 

깨어있는 신자는 대림절의 신앙의 신비를 온전히 누립니다. 대림절기에 요청하는 회개와 절제의 생활은 우울한 부담이 아닙니다. 신앙의 신비 속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려고 우리 자신을 깨끗이 단장하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대림 절기 4주 동안 읽게 되는 성경 본문들은 거의 종말과 관련된 말씀들입니다. 기독교에서 종말이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그 때와 사건을 말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 종말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서신의 말씀입니다. 고전 1:7-8, “모든 은총의 선물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도 여러분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끝까지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대하고 있다”는 말이 영어성경에는 “eagerly wait fo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강렬하게, 열정적으로, 간절히, 기쁨과 설레임으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신자들의 온 생애는 대림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의 인사말은 “마라나타”였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도 감사성찬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여러분은 주님의 다시 오심, 종말을 “eagerly wait for‘하고 계시나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대림의 신앙을 말씀하십니다.

 

마르 13:33  “그 때가 언제 올는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어라.
마르 13:35  “집 주인이 돌아올 시간이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혹은 이른 아침일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마르 13:37  늘 깨어 있어라.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대림 1주일 주님의 요청은 ‘깨어 있음’입니다. ‘깨어 있음’은 어떤 것일까요? 각 구절마다 사용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33절, “항상 깨어있으라.” 영어로 Be on guard! Be alert!입니다. 원어 헬라어로는 '블레포'인데 ‘눈을 띠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맹수들이 사냥할 때 먹이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기회가 오면 먹이를 덮치는 것처럼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눈을 띠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은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말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35절, 37절, “깨어 있으라.” 영어로 keep watch, watch입니다. 헬라어로 ‘아그립프네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졸음을 쫓아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에도 영적으로 졸고 있는 때가 있습니다. 때로 영적인 깊은 잠을 잘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큰일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깨어 있는 삶을 알아듣도록 비유로 ‘문지기’를 말씀하십니다. 문지기는 졸지 않고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도둑으로부터 주인의 재산을 지켜내며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립니다. 문지기가 경계 태세를 갖추지 않고 졸거나 잠이 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이렇듯 주님의 다시 오심을 “eagerly wait for”하며, 언제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일상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묵상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깨어있는 삶’이란, 바로 “기도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가 21:36,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어떤 사람이 수도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매일 깨어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한다고 해가 뜨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수도자는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뜨는 해를 볼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무화과나무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압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일상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알아차립니다.

 

여러 차원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소원의 성취를 위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간구기도’라고 합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라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다 소중한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때에, 하느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또 다른 차원의 기도가 있습니다. ‘친교의 기도’입니다. 오늘 서신 고전 1장 9절입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주님과 친교를 누리는 사람은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가는 기도의 시간을 가장 우선으로 합니다. 이렇게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친교의 기도’, ‘사귐의 기도’라고 합니다. 친교의 기도, 사귐의 기도가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기도입니다.

 

‘사귐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그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그 인격에 하느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지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레오 톨스토이의 말을 통해서 생각해 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톨스토이가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한 이유는 지금이 바로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시거나 지금 내가 죽어 주님께 돌아갈 수 있기에, 지금이 종말이 됩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붙여주신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을 환대하며 섬기고 나누면 그것이 바로 주님께 한 일이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한 일이 주님께 한 일이며 그것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귐의 기도이며 이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깨어 있는 삶입니다.

 

코로나19로 만남을 멈추어야 하는 이 때, 주님과 더 깊이 만나는 사귐의 기도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멈추어 주님을 바라볼수록, 우리는 “지금 여기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시어 십자가와 부활로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다시 오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eagerly wait for'하며, 환대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는 대림의 신앙, 깨어 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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