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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도조를 잘 내는 교회되기 위하여!

by 분당교회 2020. 10. 7.

2020년 10월 4일 연중 27주일

설교말씀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 21:33-46

 

어느덧 10월 첫 주일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 가족은 집에만 있어서  좀 여유로운 연휴를 보낸 것 같습니다. 연휴 동안 기모란 교수의 인터뷰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광범위한 코로나 확진 검사와 역학 조사, 그리고 마스크 쓰기 등 국민들의 협조로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진짜 잘 관리하고 있는 거라고, 다만 일일 확진자가 제로로 가기는 이제 힘들어 졌고 하루 50명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백신이 연내에 개발 되도 내년 하반기나 맞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치료제도 나와야 하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방역수칙 잘 지키는 가운데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번 추석 연휴 이후 감염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일단 10월 18일에 성당 현장 예배가 다시 시작됩니다. 오전 11시, 오후 1시 30분 2회로 예배드리는데, 이번에는 지역별로 나누어 참례하시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엊그제 추석추모성찬례를 드리면서 보고 싶었던 교우들을 뵐 수 있어 참 기뻤습니다. 그래서 더욱 10월 18일이 기다려집니다. 

 

‘10월의 엽서’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편을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0월의 엽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   단단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묵은 단풍에 물들어   /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

수녀님의 시처럼, 구체적으로 마음을 나누며, 우정을 깊게 하여 우리 모두 정다운 벗이 되는 10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만들어 소작인에게 맡기고는 멀리 떠나갔습니다. 포도 철이 돌아와 주인이 도조를 받으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소작인들이 그 사람들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다시 사람을 보내도 똑 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포도원을 아예 가로 챌 목적으로 그 아들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이에 주인은 제 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이 비유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마태오복음 21장의 흐름을 살펴봐야 합니다. 마태오 21장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이 첫 번째 하신 일은? 성전을 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점잖게 표현해서 성전 정화이지, 예수님이 성전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배만 불리며 살아가는 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분노가 표출된 사건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이미지는 너무 유약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온유하기만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들을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도록 하는 기존 질서에 대항하셨고, 그런 질서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배를 불리는 기득권 사람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립니다.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합니다. 마태오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타락의 온상이 된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서기 70년 유다-로마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다시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이 때 성전 권력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난주일 복음 ‘두 아들의 비유’와 오늘 복음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포도원은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명을 지닌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에서 보듯이, 구약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상징입니다. 

 

소작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이스라엘이 되도록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어 가야 하는 지도자들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상대하는 사람들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고, 주인이 보낸 종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이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럼 소작인들이 내야 하는 도조는 무엇일까요? 

 

그 답이 오늘 1독서에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5장 7절입니다. “만군의 야훼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가문이요, 주께서 사랑하시는 나무는 유다 백성이다. 공평을 기대하셨는데 유혈이 웬 말이며 정의를 기대하셨는데 아우성이 웬 말인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도조는 사법적 정의인 미슈파트와 관계적 분배적 정의인 쩨다카입니다. 이스라엘이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짐으로 샬롬이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열방이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신 목적이고 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공평 대신 유혈이 난무하고, 정의 대신 가난한 이들의 아우성만 울러 퍼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타락의 중심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자 우상을 섬기며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했습니다. 오늘 1독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자 이사야의 외침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왕, 제사장, 예언자들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하느님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비유의 소작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하니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하느님의 비전이 이루지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은 소수일지라도 하느님께 충성하는 지도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교회는 도조를 내지 못해 폐기 당한 이스라엘을 대신 하는 새 포도원임과 동시에, 이 시대 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가도록  새로 채용된 소작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의 지도자들인 것이죠.

 

이렇게 위대하고 존귀한 사명을 지닌 교회를 바로 세워 가시고자 하느님은 사제와 교회위원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영광스럽고도 떨리는 소명입니다. 이번 주간과 다음 주간, 두 주간 동안 교회의 지도자인 교회위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진행됩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법규에서는 교회위원 피선거권자의 첫 번째 자격 기준으로 견진성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울교구 법규 80조 2, “교회위원 피선거권자는 견진을 받은 자로서 이 헌장과 법규에서 정한 신자의 의무를 준수하고 도덕적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자로 하되, 피선거권자 범위는 각 교회에서 정한다.”

 

지난주일 견진성사가 있었는데, 견진성사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안수 기도 예식입니다. 견진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왕, 제사장, 예언자로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삼중직을 수행하며 그 시대를 책임지는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를 받은 모든 신자들은 위대하고 존귀한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하여 제 때에 도조를 잘 내는 포도원으로 교회를 세워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 이스라엘인 교회가 내야 하는 도조는 무엇일까요? 

 

도조를 낸다는 것이 의무와 책임이니까, 우선은 피선거권자 자격에 들어 있는 신자의 의무를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의무는 서울교구 법규 6장에 있습니다. 제 54 조 (신앙생활) 신자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자기생활을 닦고, 복음전도에 힘쓰며 세속 사회에 하느님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 55 조(공기도 참례) 신자는 모든 주일과 의무적 축인 성체성사에 참례하여야 한다. 제 56 조(재계법) 신자는 대한성공회 재계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제 57 조(십일조 헌금) 신자는 십일조 헌금을 의무적으로 생활화하여야 한다. - 교회위원은 신자 의무를 삶으로 보여주는 모본입니다. 

 

또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도조는 5가지 성공회 선교정신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5가지 선교정신 외워 볼까요? 1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전하기, 2 새 신자를 가르치고 세례주고 양육하기, 3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기, 4 불의한 사회를 변혁하며 모든 폭력에 도전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기, 5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지구 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하기. - 교회위원은 교회를 5Marks를 실천하는 선교공동체로 세워가는 일꾼들입니다.

 

기도하면서 교회가 하느님께 드릴 도조로 신자의 의무, 성공회선교정신 등을 생각하는 중에 떠오른 말씀이 있었습니다. 로마 13장 8절 말씀입니다.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 교회위원은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사랑이 교회가 하느님께 드릴 도조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어느 정도 연민의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주님의 뜻대로 사랑하며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오롯이 실천하게 하는 사랑의 능력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서신에 나오는 사도 바울로의 고백이 깊이 와 닿습니다. 필립 3: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기도와 묵상으로 사랑이신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는 친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이럴 때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세속과 정욕과 마귀에 끌려 사는 노예적인 삶이 아니라, 부활하신 부활의 능력의 실체인 성령님을 의지하여 세상 속에서 왕 제사장 예언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우리를 그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일구어가는 복음 공동체가 되도록 섬김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섬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와 같이 죽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개역개정성경을 읽어드립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바칠 도조는 공평과 정의였습니다. 새 이스라엘인 교회가 하느님께 바칠 도조는 사랑의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신자의 의무를 다하여 5Marks를 실천하는 선교공동체가 되는 일입니다. 

 

이 도조를 제때에 바치기 위해, 교회 안에서 먼저 사제인 저와 교회위원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며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도조를 잘 내는 주님의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며, 기도 가운데 그 일을 잘 감당할 교회위원을 선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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