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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나눔

성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by 분당교회 2019. 2. 10.

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직하게 인정합시다.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영감으로 가득 찬, 연령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영성 서적을 고르라면 성서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를 조금만 읽다 보면 욕정과 폭력, 비열한 행위들이 언급됩니다. 일부 독자들이 성서에 있는 온갖 난해한 단락들에 질려 성서를 읽지 않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위선자들이 너무나 많아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을 향해 우리는 분명하게 답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항상 한 사람을 위한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성서를 읽도록 권하는 이유는 성서가 난해하거나 반대로 단순해서가 아니라 성서가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는 선한 모습, 악한 모습, 추한 모습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난해한 본문을 어떻게 다룰까요? 모든 사람은 성서를 일종의 렌즈를 통해 바라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렌즈는 주어진 본문에 다가가고 해석하는 방식을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적을 무차별적적으로 학살하는 여호수아나 판관기의 본문을 읽을 때 십자군 전쟁 시기의 사람들을 비롯해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분노의 하느님이라는 렌즈를 끼고 이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 본문을 ‘불신자’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반면 조건없는 사랑이라는 렌즈로 같은 본문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러한 살육의 장면을 구원이 필요한 인류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예시로 바라보게 됩니다.


성공회는 공동기도서의 세례언약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있습니다(기도서 332쪽). 우리는 이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우리 행동을 이해하며 성서의 난해한 본문들에 다가갑니다. 


어떤 교우들은 선교의 다섯 지표나 니케아신경, 혹은 더 간단하게 요한의 복음서 3장 16절의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라는 렌즈를 통해 성서를 바라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성서에 접근하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렌즈를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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