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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령충만 아름다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by 분당교회 2018. 6. 24.

2018년 6월 24일 설교/말씀

성령충만 아름다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제가 교회에 처음 나간 때는 중 2였는데, 친구 따라 갔습니다. 물론 그 교회에 마음에 드는 중1 여학생이 있었지요. 시골교회를 잘 다니다가 2학기 때 서울로 전학 왔습니다. 큰 누님 댁에서 살았는데 누님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믿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 3에 진학했는데 체육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릎 이 아팠습니다. 체력장 준비도 해야 하는데, 체육시간이면 교실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매형의 여동생 남편 분이 매형 집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폐병을 앓다가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 기도하던 중 치유 받아 신학을 공부하시던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무릎에 손을 대고 기도해 주시는데, 박하사탕을 머금은 목처럼 시원하더니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체력장 준비도 하고 축구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예배드림이 기쁨이었습니다. 설교를 경청하고 분반시간에 배우는 하느님의 말씀이 꿀 같았습니다. 고 2겨울방학 때 진로를 놓고 집중기도 중, 성직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고 3이 되면서는 신학교에 갈 생각에 문과로 전과까지 했습니다. 아버님의 반대로 신학교에 가지 못했지만, 대학 진학 후에도 예수님처럼 살아야겠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렇게 영광스러운 성공회 사제까지 되었네요.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 치유의 은혜를 경험한 것,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게 된 것,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소망! 이 믿음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주일 설교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제 인생 가운데 있는 이 모든 은총을 행하신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성령님의 네 가지 사역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진리로 인도함.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구원의 은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를 사모하며 기도와 묵상 등으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하느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셋째,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십니다. 넷째,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도록 은총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 삶과 사역 중에 저는 이렇게 일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했습니다. 전에 교회를 섬기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숙한 신자들이 지체들을 섬기고 헌신함으로 교회가 부흥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무릎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기도회 중에 은사로 일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성령님이 지금도 성경에 기록된대로 일하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과 성령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교회를 섬기는 삶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먼저 성령 충만에 대해서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故대천덕 신부님은 성령 충만을 두 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성령으로 가득 찼다’ ‘성령 충만’은 한 가지 표현으로만 나옵니다. 그런데 대신부님은 헬라어 원어 연구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성령 충만과 능력이 나타나는 성령 충만의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열매를 맺는 성령 충만을 “성령의 내적 충분”이라고 하셨고 은사가 나타나는 성령 충만을 “성령의 외적 충만”이라고 하셨습니다. 


1. 내적 충분에는 ‘플레로오, 플레레스’라는 헬라어가 쓰입니다. 

내부 침투적인 표현으로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경우입니다. 


일곱 부제를 선출할 때 베드로 한 말이 이 경우입니다. 사도 6:3, “여러분 가운데서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내시오.”


초대교회 위대한 지도자 바르나바에게 사용된 단어도 이것입니다. 사도 11:24, “바르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 나오게 되었다.”


에페 5: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에 나오는 ‘가득히’도 내적 충분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플레로오”하면, 즉 내적 충분하면, 우리는 내면에서 비롯되는 깊은 헌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의 이미지가 그 삶에 이루어집니다. 3절,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따라 열매 맺으리.” 


이것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은 성숙한 신자의 이미지입니다. 


2. 외적 충만을 나타내는 단어는 “플레토”, “핌플레이”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단기적이고 일시적으로 임재 하시어 일하시는 경우입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충만 입니다. 사도 2: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1독서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에페소 교우들이 사도 바울로의 안수기도를 받자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령의 외적 충만의 현상입니다.

 

이는 은사와 능력을 위해서 구약 시대에 나타난 성령님의 임재가 여전히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 충만이 물가에 심긴 나무가 제 철따라 열매를 맺는 이미지였다면, 외적 충만은 성탄 트리 같은 이미지입니다. 죽은 나무에 장식을 입힌 이미지입니다. 


개신교를 보면, 전혀 인격적이지 않는데 은사를 행하는 목사님이나 부흥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입니다. 구약의 판관기를 보면, 삼손도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령 내적 충분과 외적 충만을 균형 있게 누리면서 교회를 세우고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으로 아름다운 신자의 삶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이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갈망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인격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신가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고 능력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교회를 세우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요한 7:37, “37. 그 명절의 고비가 되는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이렇게 외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향한 목마름, 거룩을 향한 갈망, 하느님의 얼굴을 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구원받지 못한 것일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간절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격려합니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간구하십시오.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십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셋째, 믿음으로 기도했으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5:32,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십니다." 


순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사귀는 예배와 기도와 묵상하는 시간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분별되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일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면 할수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신앙이 성숙해 지고 은사가 더 활발해 질 것입니다.


넷째, 공동체로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성경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히브리 10:25, “어떤 사람들처럼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신자들은 함께 모여 세속 사회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신앙의 모본이 있어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기 위해 함께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연령별 모임을 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서신의 말씀이 여러분이 함께 드리는 기도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라는 단어를 일인칭 복수형인 ‘우리’로 바꾸어서 읽어봅시다. 

에페 3:16-21, “16 넘쳐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17 그리고 아버지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19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1 하느님께서 우리 성공회 분당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김장환(엘리야) 신부 (성공회분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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