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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먼저 나 자신을 전도하라!

by 분당교회 2018. 2. 5.

2018년 2월 4일 

먼저 나 자신을 전도하라!


지난 주간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검찰 내 성추행 인터뷰의 파장이 큽니다. 한국판 미투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이 사라지고 건강한 사회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고통 받은 여성들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신 하느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여성 남성을 떠나 사람 자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의 감수성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 사제들도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습니다. 


오늘 서신에 나오는 사도 바울로의 고백은 사람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한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신앙의 모범을 배우게 됩니다. 고전 9: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인터뷰를 하게 된 동기가 목회자인 저에게 주는 아픔이 컸습니다. 자신을 성희롱한 안검사가 유명한 대형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간증한 것을 보고 인터뷰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안검사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성실하고 올바르게 일하면서 검사로서 인정받으며 고위직까지 올라갔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그 고난 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서지현 검사는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안검사의 간증에 분노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 밀양의 내용과 같습니다. 


안검사가 성희롱한 일, 불공정하게 인사에 개입한 일 등의 팩트는 앞으로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검사들에게 돈 봉투를 돌리고 면직을 당한 일을 억울해 하며 고난으로 여기는 대목은 동의되지 않았습니다. 검찰 조직 안에서 오랫동안 행해온 관행인데, 왜 나만 들켜서 면직 당했는지 그 일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난으로 여기고 힘들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위로해 주고 전도를 한 것 같습니다. 안검사에게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말로 위로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회로 인도했을까요? 세례를 준비하면서 학습을 받았을 텐데, 목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이라고 가르쳤을까요? 


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이고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이 근방 다음 동네에도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전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서신에서도 사도 바울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 전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전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고 교인을 늘리는 것이 전도일까요? 예수님 믿고 죄 사함 받아 천국 가도록 하는, 소위 말하는 영혼 구원이 전도일까요?


두 주 전에 전도운동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첫 외침을 들었습니다. 마르코 1: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그렇습니다. 전도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하느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와라.” 초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택할 것인가 세상을 택할 것인가”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새로운 인생으로 초대하고 그 삶을 보여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면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하느님을 왕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확증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을 때 하게 되는 언약을 살펴보면 전도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례식 중에 세례 언약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거절하고 믿고 따른다”입니다. 세속과 정욕과 마귀를 거절한다. 하느님만을 믿겠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확증이 세례입니다. 


타락한 세속의 문화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문란한 술 문화, 음란한 성문화,  돈 봉투의 관행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속 문화에 편승하여 쾌락을 추구하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부정과 불의로 성공을 향해가던 발걸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타락한 문화와 제도, 관행, 그리고 욕망을 부추겨 인간성을 말살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사탄의 권세에 맞서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의 거룩하신 하느님만을 믿고 주님만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이 땅에 미슈파트와 쩨다카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버리고 믿으며 따라가는 이 모든 과정이 회개이고 이렇게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교만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난 안검사가 공평과 정의의 거룩하신 하느님을 알아가면서, 옛사람이 행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바로 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한 아이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필요한 것인데, 한국교회가  그렇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의 신자회장을 하시던 분이 하셨던 고민이 기억납니다. 신자회장은 정형외과 보철구를 제작 판매하는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종합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을 만나 제품을 세일즈하는데 그 의사가 제품을 써주는 대가로 5000만원 상당의 RV차량을 요구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서울의 유명한 대형 교회의 성가대장으로 섬기는 안수집사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자회장은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성가대장으로 봉사하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집사가 일터에서는 관행이라며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모습에, 그런 관행을 인정하고 타협하면서 영업을 하는 자신에 대해 괴로워했습니다. 결국 그 직업을 내려놓고 지금은 가난하지만, 자유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교회에 가거든 아내와 아이들 손 꼭 잡고 이렇게 말해 주기 바란다.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조 모 씨가 자기 아내 도도녀와의 불륜으로 패소 판결을 받은 강 모 변호사에게 보낸 일침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전도는 교인 하나를 늘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과 정욕과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에 맞서 공평과 정의의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하도록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욕망을 부추기는 타락한 세속문화와 그 배후에서 사탄이 역사하는 세상 속에서 세례의 언약대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중보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세상과는 다른 대안적이고 대조적인 문화를 누리며 배워가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제가 존경했던 옥한흠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길거리 지나가다가 예쁜 여자를 보면 음욕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세요? 안 그러면 이상한 거죠. 생겨야 정상이지요. 제가 목사라고 그런 마음 없는 줄 아세요? 저도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동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죄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겁니다. 이 차이를 알아야 참된 교인이 되는 것이예요."


눈먼 돈을 보면 갖고 싶고 예쁜 여성을 보면 음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이기는 싸움을 하는 게 그리스도인입니다. 물론 넘어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서로 격려하는 게 교회라는 공동체의 존재 목적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향유의 영성, 노동의 영성, 자족의 영성, 연대의 영성. 이러한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실천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안적이고 대조적인 삶이 세상을 향한 빛이고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전도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전도란 하느님의 다스림으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전도하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전도자로 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전도당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근방 동네에도 가서 전도하자”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그 날 새벽에 하셨던 일이 기도였던 것입니다. 마르코 1:35, 다음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욕망을 부추기는 타락한 세속의 가치와 나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마귀의 유혹에 여지없이 쓰러지고 맙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열병으로 앓던 베드로의 장모를 일으키신 예수님이 우리도 일으키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제자로 살아가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의 말씀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 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2018년 여러분 모두,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로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전도자로 살아가는 제자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그를 위해서 먼저 기도로 자신을 전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 떨쳐 일어나게 됩니다. 가족과 이웃과 마을에 나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전도자로 우뚝 서는 우리 교회가 될 것입니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 묵상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성시종 신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다.


나의 부귀 명예 권력을 위하여

기도를 싸구려 부적으로 삼지 않으며,

생명 정의 평화 나눔 섬김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실천할

흔들림 없는 다짐과 의지 북돋우려

하느님과 쉼 없이 이야기 나누면 되니까.


나 살기 위해서

죄 없이 멀쩡한 사람 쓰러뜨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짓누르지 않으며,

가던 길 잠시 멈추어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면 되니까.


내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어울리고

내 말 잘 듣는 사람만 한데 모아

옹고집 골목대장 노릇 하지 않으며,

비록 내게 천덕꾸러기 같을지라도

나를 원하는 사람 외면하지 않고

아낌없이 품에 안으면 되니까.


나만의 편안한 쉼과 여가를 즐기려

가난하고 억눌린 벗들에게서

등 돌리고 피하지 않으며,

더불어 살아야 할 벗들을

몸과 마음으로 정성껏 보듬기 위해

이기적인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하면 되니까.


나를 치켜세우며

소유욕, 지배욕, 권력욕의 노예로 삼으려는

화려하지만 더러운 가면을 뒤집어쓴

마귀의 무리들과 놀아나지 않으며,

나 하나 힘없이 쓰러질지언정

한 치의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악의 세력들의 민낯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단호하게 맞서 쫓아내면 되니까.


내게 편안한 곳에서

나와 친밀한 사람과 어울려

내 삶의 즐거움을 쫒지 않으며,

나를 나눔으로써 섬겨야 할 사람을 찾아

하느님께서 나를 보내시는 곳으로

지체하지 않고 길을 떠나면 되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싶다.

아니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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