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나눔

하느님은 왜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나요?

by 분당교회 2017. 8. 29.

하느님은 왜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나요?


아픔과 고통은 자연의 모든 순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첫째, 아픔과 고통은 지구의 구조에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지각의 지질구조판이 흔들리며 지진을 일으킵니다. 태풍과 홍수, 가뭄은 매년 지구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둘째, 이는 생명의 주기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죽습니다. 고통과 질병은 자연에서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셋째, 아픔과 고통은 인간 공존이라는 현실의 일부분입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추가적인 고통과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간에서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서로에게 놀라울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악과 고통이 주된 문제 중 하나인 이유는 하느님이 전능하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랑이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개 다음과 같은 난제로 진술됩니다. 하느님이 전능하시다면 하느님은 고통을 없애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완전한 사랑이라면 하느님은 고통을 없애고자 바라실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존재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전능한 동시에 완전한 사랑이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신정론 theodicy 의 문제라 합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두 가지 답변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 답변은 곧바로 이성에 말하며, 다른 한 가지 답변은 가슴에 호소합니다. 이성에 말하는 답변은 창조의 목적이 모든 인간적 필요가 충족되는 전원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삶 가운데 사랑의 중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와 함께 보내는 삶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또 우리는 여러 가지 이견과 도전에 대처해야 하는 공동체 의 구성원으로 태어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아닌 미워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며 미움에는 고통과 상처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렇게 창조하신 것은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랑이 이토록 큰 가치가 있음을 세상이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이러한 이성적 답변의 문제는 우리가 읽고 텔레비전에서 보는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에 직면할 때 너무나 불합리하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에 호소하는 답변보다는 가슴에 호소하는 답변이 보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악과 고통의 비극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궁극적으로 성 금요일이라는 답변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우주의 창조주가 달리시어 죽어가셨다고 믿습니다. 요점은 간단합니다. 어떻게든 악과 고통을 허락 하셨다면,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인간 존재의 비극과 요구에도 관여 하셨고 온전히 참여하신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성 금요일은 끝이 아닙니다. 부활주일이 따라옵니다. 이로써 우리는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언제나 희망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부활은 찾아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언제나 길은 있습니다.  


성공회 선교정신 THE 5MARKS OF MISSION

  1.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2. 새 신자를 가르치고 세례 주고, 양육합니다.
  3.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합니다.
  4. 불의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5.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지구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