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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기도하시는 예수님

by 분당교회 2017. 8. 21.

2017년 8월 20일 연중 20주일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오 14:22-33

기도하시는 예수님


0. 지난 주간 살충제 계란으로 소란스러웠습니다. 매일 계란을 한 두 개씩 먹는 저로서는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유익만을 위해 피조물을 존귀히 여기지 않은 죄악에 대한 현재적 심판이라 생각했습니다. 성공회 선교정신 5번째,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며 지구 생명의 회복에 유지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유기농 먹거리를 이용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입추가 지나면서 날씨가 많이 시원해 졌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저로서는 얼마나 좋고 감사한지요. 지난 주일에 전세계교회가 한 마음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도하며 예배를 드려서인지 남과 북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호전되는 것 같아 이 또한 감사합니다. 


2. 오늘 복음은 오병이어 기적이야기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큰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손수 군중들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립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다”하고 소리칩니다.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이내 베드로는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께서 “오너라” 말씀하시자 베드로도 물 위를 걷습니다. 거센 바람을 보자,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살려달라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시며, “왜 의심을 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3. 오늘 복음이 주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왜 산으로 들어가셨습니까?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이유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은 자신이 살아가는 목적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길을 막고자 하는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네가 왕이 되어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유혹!” 이미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 기도할 때 물리쳤던 유혹입니다. 하느님 앞에 홀로 머물러 주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세우는 기도만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엘리야를 보십시오. 주님 앞에 홀로 머물렀을 때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5.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기도란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뜻에 순종하기까지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 전날 밤 게쎄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이렇듯 올바른 기도는 주님을 뜻을 전제로 합니다. 성경을 통해 알게 되는 하느님의 성품과 속성,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기도의 삶을 회복시킵니다.  


6. 제자들을 재촉하여 보내신 이유도 이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기적을 행한 스승 예수로 인해 우쭐했을 것입니다. 군중들로부터 유익을 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예수는 ‘억지로’(‘재촉하여’의 또 다른 뜻입니다) 배를 태워 군중과 격리시킨 것입니다. 유혹을 주는 세상으로부터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도 격리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피정이라고 합니다. 예수원을 가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7.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재촉하여 보낸 이유를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는 유익을 누리고 싶은 욕망으로 소란스러웠을 것입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는 제자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미지인 것이죠. 새벽 네 시, 제자들이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오십니다. 


8. 성경에서 바다는 무질서와 혼란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란 바다로부터 땅을 분리시키면서 질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홀로 머물며 주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맞춘 예수님은 혼돈과 무질서를 가져오는 욕망의 바다를 밟고 걸어가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삶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삶입니다. 


9.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욕망의 눈이 그들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몇 달 전에 설교했었습니다. “나다”라는 말은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I am who I am. 나는 나다.” “나는 여기에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는 하느님이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나타내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입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알아차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10. 예수님을 알아본 베드로가 이내 소리칩니다. “주님이십니까? 그렇다면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고 싶은 갈망입니다. 거룩에 대한 갈망의 외침이 기도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갈망이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혼란과 무질서를 이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따라가십시오. 


11. 예수님이 “오너라.”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물을 밟고 걸어갑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눈에는 거센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이내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물에 빠져버립니다. 바람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 고정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혼돈과 무질서라는 바다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12. 예수님은 ‘살려 달라’ 외치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부르짖는 우리의 외침이 기도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로는 오늘 서신에서 말씀합니다. 로마 10: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리라.”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13.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의심을 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의심이라는 말의 원어는 ‘디스타제인’으로 “나누어진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나누어진 마음은 두려움에서 온 것입니다. 두려움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볼 때 오는 것입니다. 투명한 유리판 위를 아기가 기어가는 실험을 했습니다. 아기는 바닥이 환히 보이는 유리판을 기어가지 못합니다. 유리판 건너편에 엄마를 서게 했습니다. 아기가 엄마를 보는 순간, 엄마만을 바라보며 기어갑니다. 기도는 엄마만을 바라보는 아기처럼,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떼제 찬양이 기억나실 겁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봅니다. 사랑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14. 오늘 복음을 통해 기도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까지 주님 앞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세상을 이기며 살고 싶은 갈망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시간과 공간을 갖는 피정이 기도입니다. 주님의 이름늘 부르는 간절한 부르짖음이 기도입니다.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15. 그렇다면 올바른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누리게 되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 32절과 33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6. 32절,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정화-조명-일치로 나가는 감사성찬예배가 기도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인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면 혼돈과 무질서의 바다는 잠잠해 지는 것입니다. 그 삶에 평화가 회복됩니다. 


17. 33절,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말하였다.”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예배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고 예배자로 서게 됩니다. 


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라는 말은 ‘나는 내가 되려는 나일 것이다’(I WILL BE WHO I WILL BE)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영광스럽고 사랑 자체이신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기쁨과 빛, 사랑스럽고 생기가 넘치며 자유를 가져오는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살펴보았듯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 되십니다. 


19. 그래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즉 당신의 이름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그리고 이렇게 끝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기도하는 사람이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자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20. 기도에 관한 좋은 글이 있어 읽어드립니다. 

  “ 돌아보면 혼자인데, 기도하니 하느님께서 동행하십니다!

⛪  돌아보면 가진 것 없는데, 기도하니 천국이 나의 것입니다!

⛪  돌아보면 나약한데, 기도하니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  돌아보면 사방이 막혀 있는데, 기도하니 하늘 문이 열려있습니다!

  돌아보면 세상이 막막한데, 기도하니 영원한 영생과 생명입니다!

  돌아보면 내가 한 것 같은데, 알고 보니 하느님이 하신 겁니다!“

  

21. 오는 결실의 계절, 기도하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자로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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