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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예수님의 마음

by 분당교회 2017. 8. 7.

2017년 8월 6일 연중 18주일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오 14:13-21


예수님의 마음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 기적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예수님이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한적한 곳을 찾아 가게 된 이유는 세례자 요한이 참수형을 당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사촌 형입니다. 예수는 회개운동을 전해하던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의 운동을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참수형을 당했다는 소식에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예수님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한적한 곳은 기도처를 상징합니다. 하느님 앞에 머물며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을 것입니다. 엄혹한 박해 앞에서, 자신이 전개하고 있는 하느님 나라 운동의 전열을 가다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행로를 알아낸 사람들이 육로로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니 여러 동네에서 온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라도 닿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기꺼이 맞아주십니다. 그들이 데려온 병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고쳐주십니다. 루가복음을 보면,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배를 타고 한적한 곳을 찾아온 예수님의 원래 계획은 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온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다 내려놓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다 채워주셨습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이런 하느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55:1-3,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 없이 술과 젖을 사서 마셔라. 2 그런데 어찌하여 돈을 써가며 양식도 못되는 것을 얻으려 하느냐? 애써 번 돈을 배부르게도 못하는 데 써 버리느냐? 들어라,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맛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름진 것을 푸짐하게 먹으리라. 3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로 오너라.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


가르치고 고치시다 보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개역성경으로 ‘빈들’이라고 번역된 ‘외딴 곳’입니다. 남자만도 오천 명,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하면 족히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녁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을 다 흩어 보내자고 합니다. 군중들이 알아서 동네에 들어가 밥을 사먹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책임지겠다는 말입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 흩어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황당한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원어로 보면, 아주 작은 빵 조작이고 아주 작은 물고기를 말합니다. 어린아이의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른 한 명의 식사꺼리도 되지 않는 작은 양입니다. 이 빈들에 가진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데 뭘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는지 하는 원망과 탄식 같은 표현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자들의 한계입니다. 수많은 군중들을 보니, 군중들을 책임지시겠다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한계 말입니다. 상황만을 보며 창조주이시며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손에 오병이어가 들려졌습니다.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제자들이 다시 그것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남은 조작을 모으니 12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마치 우리가 드리는 성체성사와 같은 이미지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성찬의 전례 말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바로 이런 하느님을 알기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당신께서 손만 벌리시면 살아 있는 모든 것 원대로 배부릅니다.”


오병이어 기적이야기의 교훈을 오늘의 본기도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하느님, 성자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새 힘과 용기를 주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아멘!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14절,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근 수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예수님의 측은지심 말입니다. 


이 표현의 헬라어 원어의 뜻이 바로 창자가 끊어 지는듯한 아픔을 느끼는 사랑입니다.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원숭이가 애를 태우며 새끼를 찾느라 창자가 끊어 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 만큼 원숭이는 모성애가 아주 강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가지신 마음이 바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이 아픔을 느끼는 사랑, 하느님의 사랑, 헤세드입니다. 영어로는 COMPASSION이라고 합니다. COM ‘함께’, PASSION ‘아파하다.’ 함께 아파하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군중들을 환대하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으로 영혼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육체적인 배고픔도 만족시켜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이 마음을 지닌 자입니다. 오늘 서신에서 사도 바울로는 이 마음을 지녔기에 자신이 죽어도 자기 민족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님이 우리 각 개인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은 주님의 마음을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 안에는 주님의 마음, 측은지심이 차오르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많은 사건과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가 공관병을 하인이나 노예처럼 부린 사건입니다. 언제든지 호출하면 달려오게끔 전자 팔찌를 채우고, 온갖 잡일을 다 시키며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일입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병이 자살까지 시도했었을 까요? 


박찬주 장군 부부의 갑질 사건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갑질을 행한 박찬주 장군이 장로라고 합니다. 박찬주 장로 부부가 보여준 신앙이 병적으로 보였을까요?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아주 모범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장로부부가 보여준 갑질은 우리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기는 기복주의와 성공주의가 부추기는 번영신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라, 성공과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자신이 주인인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수단일 뿐입니다. 이를 캘리포니아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우상 숭배를 가르치고 부추기며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한국교회를 심판하고 계십니다. 유력한 목회자들이 법정에 서지 않습니까? 교회들이 얼마나 조롱을 받고 기독교가 쇠락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하느님은 주님의 마음인 측은지심으로 세상의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을 섬기는 교회들을 세워가고 계십니다. 


오병이어처럼 초라해 보이는 우리 대한성공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주님 손에 들려져 이 민족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측은지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습니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사랑을 먹고 그 사랑으로 나를 세워가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오늘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섬기는 작은 예수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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