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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잔인한 달’과 부활

by 분당교회 2015. 4. 6.

‘잔인한 달’과 부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T.S. 엘리엇 <황무지>에서

왜 4월은 잔인하다고 했을까요? 그것도 보통 잔인한 것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달, 인생의 모든 날들이 잔인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시인 엘리엇의 눈에는 4월이 가장 잔인하게 보였습니다. 겨울엔 모든 것이 긴 잠에 빠져듭니다. 부끄럽고 추한 것들도 눈으로 감추어주고 잊게 해줍니다. 그런데 다시 봄이 오면, 잠에서 깰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무기력과 나약함을 이겨내야 하는 일은 귀찮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라일락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일상의 나약함과 안일함을 벗어던지는 싸움이 필요합니다. 머물러 있던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피처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애써 봄이 오는 것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운명에 몸을 맡기며 안락과 편안함에 젖어 타락에 빠집니다. 소생과 부활을 위한 몸부림을 거절하는 황폐한 정신과 영혼이 지배하는 세상에 꽃이 피기 때문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황무지라는 시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 죽고 싶어.’

로마 신화에서 쿠마에 무녀는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로서 아폴로 신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무녀는 자기 손에 있는 먼지의 숫자만큼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폴로 신은 이를 허락했는데, 문제는 그녀가 장수를 청하면서 그만큼 젊음도 달라는 청을 잊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고 늙어 메말라 들어서 조롱 속에 들어갈 정도로 되었고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 하냐고 물었을 때 죽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죽음보다도 못한 살아있는 황무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유럽의 정신과 문화는 황폐화 되었습니다. 의욕도 없고 물질문명에 사로잡힌 인간의 영혼은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시인 엘리엇은 이를 황무지로 보았고 기독교 신앙과 정신의 회복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한국의 4월 역사는 무척이나 잔인합니다. 동학혁명, 제주도 4.3사태, 4.19혁명, 그리고 작년의 세월호 참사까지 이어지는 역사는 실패한 혁명과 학살과 참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한국의 4월에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다운 강산에 핏빛이 물들어 더욱 처연하고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부활의 최초의 증언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기에 어두컴컴한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빈 무덤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두가 잠들은 새벽을 깨운 그의 정신과 사랑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주님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잔인한’ 외면과 무기력과 배반을 극복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부활의 현장을 보게 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또 한 번의 ‘잔인한’ 세월을 맞이해야 했는지 모릅니다. 부활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또는 진실을 외면하고 덮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죽음의 권세가 영원하리라고 믿는 사람들, 또는 하느님의 말씀보다 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증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잔인함’을 극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되었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마치 겨울의 긴 잠을 깨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무너진 양심과 신앙과 영혼을 회복하는 꽃을 피워야 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5일 부활 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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