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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의 종말

by 푸드라이터 2013. 8. 5.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의 종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4일 연중 18주일 설교 말씀)


   사람은 모두 다 행복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만드는 것일까요? 쟁취하는 것일까요? 법정 스님은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복의 근원을 물질에서, 그것도 소유에서 찾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느 호스피스 간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처음 도와준 환자는 중년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은 젊은 시절부터 세계일주가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벌어다준 적은 월급 중에 일부를 저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쓰지 않을 결심이었습니다. 사회봉사단체에서 버려진 사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천 원씩 내달라는 요청도 단호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학에 합격한 시누이가 등록금을 꿔달라고 왔을 때도 냉정히 거절했습니다. 남편이 퇴직하면 함께 떠날 세계일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 한 푼도 헤프게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그만 암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악착같이 모은 세계일주 비용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이 벌어들여라. 그리고 많이 사랑을 베풀어라 - 존 웨슬리


   호스피스 병원을 운영하는 능행 스님이 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벼락이 떨어지데요. 내가 벼락에 맞을 줄이야. 내게 잘못이 있다면 정신없이, 열심히 돈 번 것밖에 없는데,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만 했을 뿐인데... 스님, 글쎄 돈을 쓸 데가 없네요. 이런 개 같은 일이 다 있네요. 세상에, 이런 일이... 그것도 나에게...” “거사님, 지금 당신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남은 것은 병들어 너덜거리는 육신뿐이네요.”

   어떤 부자가 밭에서 소출을 많이 얻게 되어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창고를 더 크게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지. 그리고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을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라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악착같이 재산을 모으면서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의 말로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종말이 비참한 것은 당장 그날 밤 죽는다는 것보다도 평생을 걸어온 인생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소유는 많았지만 한 번도 베풀지도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비울 줄 알 때 진정으로 크게 채워지는 법이라 했습니다. 무엇에 집착하고 소유해서 가두려 하면서 괴로워지고 죄가 생깁니다. 삶의 가치와 보람은 무엇을 소유했느냐보다는 얼마나 베풀었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작은 것을 쌓아놓고 세상과 생명을 잃는 것보다 작은 것을 비우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람은 물질을 떠나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의 소유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질은 활용의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보조 수단입니다. 물질을 어떻게 벌어 들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이 벌어들여라. 그리고 많이 사랑을 베풀어라.’ 사람 중에는 겉으로는 궁핍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겉으로 풍요롭지만 속으로 거지처럼 궁핍한 사람이 있습니다. 속사람을 보시는 하느님은 물질의 소유량을 보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활용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긴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행을 시작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신분과 직함이나 재물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것들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사랑하고 살았는가? 얼마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았는가? 그것이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는 일이며 하느님께 인색하지 않고 풍요롭게 사는 일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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