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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파송된 자

by 푸드라이터 2013. 7. 6.

파송된 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7일 연중 14주일 설교 말씀)


우리는 감사성찬례 마지막에 파송예식을 합니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거의 습관적으로 하는 예배의 마무리로 받아들여져서 성당 문을 나오면서 바로 잊기 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예배에서 그것도 자신의 이름도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쉽게 잊는 것에 무감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하자면 우리는 한 주간 일상생활을 이 한 마디로 시작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즉, 우리 교인들은 한 주간 동안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성당 문을 나서서 세상으로 파송된 자들입니다. 때문에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파송된 사람으로서 사명감과 목표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만한 어린 시절, 어느 날 큰 형님이 문방구 좀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부리나케 달려가 문방구 문을 드르륵 열었을 때 주인아저씨가 ‘뭘 줄까?’하고 묻는 소리에 갑자기 멍청하게 아저씨의 얼굴만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도대체 내가 뭘 사러왔지? 문방구에 다녀오라고 해서 심부름 오긴 왔는데 도무지 뭘 사가야 되는지 얘기 듣지도 않고, 돈도 받아 오지 않은 덜렁댐에 몹시도 당황하고 자책했습니다. 물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꿀밤과 더불어 놀림을 받고 다시 문방구까지 달려갔다 와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심부름을 보내신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는 ‘그래, 수고했다. 너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심부름 보내신 분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도 않고 자기의 뜻대로만 맺은 열매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품 안에 품고 오래오래 머물러 있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면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떠나라!’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다닐 때는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맡은 소임을 흩으러 버릴 잡담으로 길거리에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로지 각 가정마다 평화를 빌며 병자들을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는데 충실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전도자, 파송된 자들이 지켜야 할 삶과 봉사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주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청렴하게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 모든 신자들의 사명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손에 쥐어 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적게 가지라고 하십니다. 복음의 전파는 물질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소명과 더불어서 능력과 권세였습니다. 그 능력과 권세는 우리의 순수한 믿음과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향기입니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시인 도종환)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는 퍼지게 되어 있고 그 향기가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이웃을 논쟁으로 이기는 것보다도, 물질로 매수하는 것보다도 영혼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그래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심부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는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과를 자랑하면서 교만과 독선으로 죄짓지 말고 순수하게 하느님의 일을 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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