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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한 여인의 눈물

by 푸드라이터 2013. 6. 17.

한 여인의 눈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16일 연중 11주일 설교 말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얼마나 흘렸는지 예수님의 말을 적셨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서러워서, 또는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보통의 눈물이 아님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적어도 그 눈물은 거짓 눈물이 아님을 우리는 금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억지로 웃어 보일 수는 있어도 눈물은 쉽게 짜내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복받쳐 오르는 감격이나 슬픔, 진실이 없다면 그렇게 철철 흐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악어는 그 큰 입으로 먹이를 삼키고 나서 찔끔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이고 가증스러운 위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연인의 눈물 속에 담긴 사연은 무엇이고, 그가 쏟아 부은 진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우리는 이 광경을 바라 본 바리사이파 사람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텐데...” 그러니까 이 여인은 죄 많은 여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혼자서 큰 인생의 큰 짐을 짊어지고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깊었을 것이고, 자신을 내어 맡기고 속에 고인 앙금을 풀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믿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부끄러운 죄와 과거를 쏟아 놓아도 안심할 수 있는 구세주로 확신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가서는 것을 꺼려했고 접촉하는 것은 더욱 경멸할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따스한 가슴의 소유자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으로 갔습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하는 말씀을 드려보고자 예수님 앞에 엎드렸지만 자신도 모르게 회개의 눈물, 거듭남의 눈물, 진실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것은 죄의 찌꺼기로 더럽혀진 자신의 과거와 가슴을 깨끗이 씻는 정화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쯤이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삶의 전환을 맞이할까요? 하느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맑은 눈물을 쏟으며 하느님의 용서를 구한 적이 언제일까요? 주로 누구를 용서하려고 한다거나, 누구누구는 용서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한 번도 하느님 앞에서 투명한 가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눈물이 있을 수도 없고 감동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감동이 없는 세상, 회개와 용서가 없는 세상은 메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기계가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얻는 동시에 너무 귀중한 것을 잃고 살아갑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따스한 인간미, 순수한 고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것들을 고백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분명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가 깊을수록 받는 은혜도 깊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빚에 대한 탕감으로 비유했습니다.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적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보다 훨씬 더 감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죄라고 하는 빚을 탕감 받아야 합니다. 용서를 체험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고, 세상을 하느님의 역사로 뒤집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법입니다.

구약성서 열왕기에서는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아합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예언자 엘리야를 보고 “저 원수 또 나타났네!”하면서 질겁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심판이었고 그제서야 아합은 뉘우쳤습니다.

심판은 죄 때문에 오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여러 번 주십니다. 그 회개의 때, 만남의 때, 구원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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