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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부활2주 강론초 <마르코복음의 핵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20.


부활2주: 

                                                  마르코복음의 핵심


초대교회는 오늘날 신약에 배열한 순서와는 약간 다르게 마르코-마태오-루가의 순으로 복음서를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각 복음서와 해당 공동체의 신앙수준이 다르고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깨닫고 만나는 예수님이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의 단계를 거쳐야 마태오 수준으로 깊어질 수 있고 루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전체의 순환과정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전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초대교회로부터 ‘복음서 체계적으로 읽기’의 전통을 이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편화된 타교파의 성서접근 및 설교와는 달리 성공회는 3년의 순환과정을 통해 복음서를 조직적으로 읽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마르코복음을 통해 만나고 깨달아야 하는 예수님의 신비는 무엇일까요? 이 복음서 전체에서 중요한 고백 두 가지가 나옵니다. 총 16장으로 된 마르코에서 중간이라 할 8장에는 베드로의 고백(“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과 말미 15장에 등장하는 이방인 백인대장의 고백(“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마르코복음은 숨 가쁘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치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는 마르코의 신앙공동체가 이러한 예수님을 경험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치유와 형통, 소위 축복을 경험했기(혹은 하고자) 때문인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주류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며 그런 의미의 구원자(그리스도는 ‘구원자’란 뜻) 고백으로 이끌려 합니다. 8장의 베드로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8장의 베드로는 수난과 십자가로 거듭나는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수난이 닥치면 달아나고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교회 다녀서 좋은 꼴 본 게 뭐 있다고!’ 툴툴대면서 말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도무지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오는 게 마르코복음입니다. 이들은 닥쳐오는 자기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을 수난의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는 길로 자각하고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깊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정작 마르코복음에서 그 수준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사람은 이방인 백인대장(얼굴 흰 백인이 아니라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장교^^)입니다.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절규하며 철저히 버림받은 채 죽는 모습에서 그는 자아가 완전히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신비를 깨닫습니다. 마르코복음은 길을 묻는 사람에게 이 수난과 십자가의 도(道)로 안내하는 복음입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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