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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8년 3월 23일 (부활주일) 강론초 (마태 28:1-10 부활하신 예수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3. 24.

마태 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3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 4 이 광경을 본 경비병들은 겁에 질려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 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7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알려라. 나는 이 말을 전하러 왔다."

8 여자들은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고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갔다. 9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께서 그 여자들을 향하여 걸어오셔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가까이 가서 그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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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쁨과 소망으로 축복합니다 (마태 28:1-10) 

기쁜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쁘고 행복해야 합니다.

참혹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자신을 위해 우는 부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 하신 주님의 깊은 사랑을 기억합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맞으며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며 동시에 부활을 통해 생명을 얻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길 “하느님은 인간이 머리 속으로 지어낸 관념의 투사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그 말이 옳다고 인정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십자가에서 박살난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걸었던 전능하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무력하고 비참하고 허망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도 머리 속 관념에 매달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경험 속에서 하느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자국 못자국 창자국 선명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믿음의 눈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시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길 “하느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세상의 불행과 고통은 어인 일이냐?”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그렇다, 세상은 본래 악한 것이고 현실은 부조리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동조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침묵을 다른 의미로 깨닫습니다. 우리의 탄원을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아무런 응답도 없으신 하느님의 침묵은 우리를 더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부활사건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침묵은 무심한 방관이 아니라 우리의 깊은 고통과 고독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 자체라는 것을! 그 사랑을 신뢰하며 우리는 의연히 불행과 고통을 이겨 나가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입니다.

주님의 부활사건은 그 길이 승리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요, 기쁨과 행복의 길임을 알려줍니다.

때로 우리는 외롭고 지치고 수치스럽고 패배처럼 보이는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는 주께서 바로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음을 기억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200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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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체험하는 부활 (마태 28:1-10) 

기쁜 부활절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신앙이고 우리는 모두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은 부활은 어떻게 믿으십니까? 부활을 어떻게 경험하셨고 어떻게 전하십니까?

중요한 그만큼 부활에 대하여는 깊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부활은 죽으신 주님의 육신이 다시 소생했다는 신화가 아닙니다. 한 번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사실로 믿으라는 것이 부활신앙의 본래 의미는 아닙니다.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해는 사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우리와 만나주시는 인격이요, 우리와 대화하시는 영으로서, 살아계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부활은 바로 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현이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입니다.

부활은 제자들이 추리해내거나, 상상하거나, 환상을 보거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사건은 제자들의 직접적인 체험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시신이 소생했다는 점이 부활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까닭은,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만나보았기에 부활을 믿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보게 되었지, 반대로 육신의 두 눈으로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은 후에 다시금 죽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이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솔직히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꾹 참고 부활을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기특하기는 하지만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억지로 믿어야 하는 교리이기보다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을 통해 누려야 하는 “주님의 현존”입니다. 부활은 하늘을 체험하는 경험, 곧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입니다.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죄와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죄를 안타까워 하시고, 고통을 아파하시고, 죽음을 비통해하시는 그런 하느님을 만나고 의탁하고 사랑하는 경험입니다.

기꺼운 십자가의 순종과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성부 하느님의 일으키심을 받은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200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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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새로운 권위와 지혜로 진리를 가르치셨고,

놀라운 권능과 사랑으로 병자를 고치시며

하느님나라를 전하신 분,

우리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려주신

외아들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뜻밖에도 힘없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분의 빛나던 지혜와 당당한 권위도 무색하게

십자가에 달려 강도들 사이에서 조롱과 모욕과 수치를

당하며 비통하게 죽어 무덤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슬프고 두려웠습니다.

낙심했고 절망해서 그곳을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습니다.

엄청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습니다.

 

그 분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살아계신 그분을 만나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 우리는 모두 그 분을 뵈었습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 분의 모습을 보았고

그 분의 못자국까지 만져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예수를 살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진리인 것을,

그분의 십자가 그 사랑이 확실히 우리를 구원한 것을,

그 어떤 죄와 죽음의 세력도

예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토록 진실하고 의로운 수많은 증인들이 있는데도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야말로 어리석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누리고 증언합니다.

우리 죄로 슬프고 아프신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살아계신 영으로 만나 주시고

사랑을 속삭여주시고 용서와 평화를 허락하시고

인생의 사명을 밝혀 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시며

늘 함께 동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2002.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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