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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위대한 초대

by 분당교회 2020. 3. 8.

2020년 3월 8일

사순 2주일 설교 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요한 3:1-17

 

 

많이 힘든 가운데 또 한 주가 지났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보고 싶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 악수하고 같이 밥 먹으며 수다 떠는 일상이 그립습니다.

 

그 일상에는 우리가 드리던 주일 공동체예배도 있습니다. 교구 방침에 따라 성단에 모이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주일인데, 코로나로 인해 그 이전부터 공동체 주일예배에 한 달 정도 성당에 못 오셨던 교우들도 많으십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예배를 중계하지만, 우리 성공회 예배는 매 주일 성체와 보혈을 영하는 성찬예배이기에, 성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그리우실까요? 

 

그런데 안타까운 소식을 또 전합니다. 성공회 서울교구는 앞으로 2주일 더, 성당에서 주일공동체예배를 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공동체이기에, 그 무엇보다 교회의 공공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드리는 개인예배로 하느님과 더 깊은 교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대구 경북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뉴스를 통해 짐작하지만, 서대구교회 박용성 부제님의 편지를 받고는 우리 교회적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교회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긴급구호헌금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대구 돕기 특별헌금에 동참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곳으로 가서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는 없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열심히 섬기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특별히 방역당국과 공무원, 의료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이 난국을 잘 이겨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외쳐볼까요? “대구 경북 힘내라!  대한민국 힘내라!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사이파 사람이고 유대인들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리사이파라 함은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최선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지도자라 함은  학식과 열심이 남달랐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 앞장 2장을 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성전 정화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 있던 장사꾼들의 좌판을 둘러엎으시고 그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예수는 반사회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와 어울린다는 것은 그와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는 거리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니고데모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둔 밤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만, 니고데모의 내면에는 구원의 확신도 없고 평화도 없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요한 3:2,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예수님은 그 어떤 인사치레도 하지 않으시고 돌 직구를 날리십니다. 

  요한 3:3,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 이 말씀은 “너희들이 대망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나라는 ‘새로 나야만’ 들어가는 나라다.”는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새로 나야 한다고?” 다시 질문합니다. 

  요한 3:4,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동일합니다. 

  요한 3:5,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새로 난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노텐’이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위로부터, 더 높은 곳으로부터,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 이 일을 했던 존재가 이것을 다시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다시 생명을 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잠시, 요한복음이 쓰여 질 당시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이었던 헬라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헬라 철학은 ‘위, 하늘, 영’은 거룩한 것이고 ‘아래, 땅, 육체’는 더럽고 천한 것이라고 보는 이원론입니다. 

 

‘아래, 땅, 육체’를 벗어나 거룩한 곳, ‘위, 하늘,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죽음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를 기꺼이 마신 이유도 이런 세계관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계관이 기독교에 들어와 형성된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영지주의는 성육신을 부정하고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하느님이 아니라는 ‘가현설’을 주장하는,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대표적인 이단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위기 사태를 초래하고 반사회적인 작태들이 드러나고 있는 신천지가 바로 이 흐름에 있는 것이죠. 영계, 종말, 14만4천, 영생불사 등만을 주장하는 이원론으로,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이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새로 나면, 위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면,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고 경험하고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니고데모는 묻습니다. 

  요한 3:9,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니고데모의 질문은 모든 인류의 질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새로 날 수”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나온 답이 그 유명한 요한 3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천천히 암송해 볼까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성경 66권에서 가장 빛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성경의 호프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호프 다이아몬드란 인도에서 발견된 사파이어 빛 보석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이 말씀만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도 충분합니다. 

 

“하느님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는 벌주고 심판하는 무서운 신이 아닙니다.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고 헌신합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세상’을 위해서, 즉 당신과 나를 위해서, 모든 인류를 위해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외아들’은 ‘한 명의 아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로 “모노게네스”라고 하는데, “유일한”이라는 뜻의 “모노”와 “종족, 동류, 아들”이란 뜻의 “게네스”가 합쳐진 형용사입니다. 성서에서 거의 부모 자식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한 종류의 아들, 동일한 종류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하느님 자기 자신과 동일한 아들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 말씀은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 자신이 오셨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위해 하느님 자신이 오신 걸까요?

 

그 내용이 지난 주일에도 강조했던 재의수요일부터 사순 3주일까지 드리는 성체후기도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자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과 경건한 삶의 모본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경건한 삶의 모본”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모노게네스’, 동일한 종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필립보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14:9,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수님은 “희생제물”이 되시고자 오셨습니다. 희생제물이란 죄인을 대신해서 죽는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바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1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왜 자기 목숨을 바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자기 양을 위하여”, “위하여”는 번역된 헬라어 “히페르”“대신”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을 대신하여, 당신과 나를 대신하여, 하느님을 배반한 세상을 대신하여 죽는 희생제물로 오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과 함께 하느님의 정의가 가장 완벽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십자가입니다. 

 

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정의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기에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당신 안에 두시고 하느님께 그 죄를 처벌해 달라고 자원하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말씀대로입니다. 

  53:6,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제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새 신자가 세례를 받게 되어 사제는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있었습니까?” 새 신자는 “예”라고 답했습니다. 사제는 똑같은 질문을 다시 했는데, 새 신자도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사제는 왜 “예”라고 대답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새 신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저의 죄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히페르’, ‘대신’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모두도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은총을 아는 사람은 걱정이나 두려움에 매이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외아들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에,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 8: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새로 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네, ‘새로 나는’ 일은 우리를 위하여 경건한 삶의 모본으로, 희생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이 놀라운 은총을 믿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구약의 스토리를 들려주십니다. 

  요한 3:14-15,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구리뱀 이야기는 민수기 21장에 나옵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이 에돔 지방을 피해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홍해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러자 야훼께서 불 뱀을 보내어 혼을 내십니다. 이에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하느님이 내리신 처방이 바로 ‘기둥에 달아놓은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약초를 바르거나 다려 마시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안수기도해 주면 사는 것도 아닙니다.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내 안에 사시며 죽었던 내 영이 살아납니다.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생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서신에서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4:5,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나를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며 하느님을 더 알고 싶어 성경을 통해 그 분을 알아갑니다. 예배드림이, 기도드림이 기쁨이 됩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늘 유혹은 있는 것이고 때때로 실족하는 육체 가운데 살지만,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느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받게 되는 구원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의 실체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를 누리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 선물은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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