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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상통케 하시는 성령

by 분당교회 2019. 6. 9.

2019년 6월 3일 성령강림주일 설교/말씀

김장환 엘리야 사제 

 

 

제대에 달라진 것? 부활초가 사라졌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승천일에 치우는데 요즘은 성령강림주일에 부활초를 끕니다. 부활하시어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이 이제는 성령으로 오시어 사랑의 불꽃으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세요?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요? 

 

성경을 보면,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하늘의 예배를 기록한 묵시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묵시록 5:12-13, 12 그들은 큰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곧 온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이, "옥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 찬양과 영예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얻으신 영광입니다. 필립 2:8-11,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경배와 찬양은 절대 권력 로마 황제만이 받던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수님께 예배드렸다는 것은 당대 서슬 퍼런 제국의 권력자, 로마 황제가 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가 왕이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부활승천신앙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고백이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권력이 왕이 아니다. 맘몬이 왕이 아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며 주님이시다는 고백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느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낙심하거나 절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슬퍼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기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여기서 ‘누군가’가 바로 승천하신 예수님입니다.

 

Photo by  Andrew Seaman  on  Unsplash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하실까요? 우리의 소원성취 문제해결을 위해서 기도해 주실까요?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침내 우리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성취해 가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만을 예배하고 하느님의 뜻만을 구하며 일용한 양식을 누리고 서로 사랑하며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십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십니다.

 

지난 9일간 “하느님 나라의 확장과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릴레이 금식기도 한 것은 바로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한 거룩한 일입니다. 참여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속적으로 하느님 나라 확장과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중보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지난주일 박찬비 학생과 분반공부를 하며 이 질문을 던졌더니 “다시 오시려고 승천하셨다”고 답하더군요. 맞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역사의 종말에 악과 죄를 심판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시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이렇게 심판주로 재림하시는 것과는 다른 양태의 오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다음 구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14:18,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이것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다시 오심을 말합니다. 요한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다른 협조자가 성령님이십니다. 여기서 "다른"이라는 말은 "같은 종류의"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another Christ라고 하고  예수님의 영이라고 합니다. 사도 16:7,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 지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성령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협조자라는 말은 그리스 원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함께 나란히 불려오는 자"로 “위로하는 사람, 용기를 주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the Helper!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오늘 성가대가 영성체 특송을 준비한 노래가 김도현님의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양입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 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예수님이 협조자 성령으로 오시어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 안에 계시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저는 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기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모임을 하든지 새로운 만남과 상황 속에서 성령님을 바라보고 의탁합니다. 성령님이 도와 주셔서 주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사시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능력과 은사를 주시는 겁니다. 지난주일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루가 24:49,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복음의 속편인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오늘 2독서 사도행전의 말씀은 바로 이 약속이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9일간 기도하며 기다리던 120여명의 신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은 문을 열고 거리에 나가 부활의 증인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 증언을 듣고 새로 신자가 된 사람들이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너희는 힘을 받아 ...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힘 = 두나미스 – 다이나마이트.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이 이 능력을 주십니다. 

 

두 번째로 성령님은 우리가 증언하는 예수님을 닮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죠. 갈라 5:22-23,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우리는 다 인격적으로 모가 나고 부족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면 매일 매일 조금씩 변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오늘 성체 후 기도가 바로 이 내용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그 은총의 이슬로 우리 마음을 적시어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세 번째는 코이노니아입니다. 고후 13장 13절에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친교로 번역된 헬라어가 상통, 교제, 일치 등의 뜻을 갖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입니다.

 

연중주일에 드리는 성체 후 기도가 바로 이 기원입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도우시어 사랑 가운데 상통하며 주님이 명하신 일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이 명하신 일이란 선교이죠. 우리 성공회선교정신 5MARKS의 첫 번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한다.’ 이 사명을 이루려면 먼저 우리가 사랑 가운데 상통하며, 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고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오늘 서신 사도행전 2장을 계속 읽어 보면, 성령의 능력을 받는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세례 받고 교회가 탄생합니다. 그 공동체의 모습이 2장 끝에 소개 되는데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45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지니 2장 끝 절 4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인생들은 모여서 하느님을 반역하는 일만 도모합니다. 오늘 1독서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며 하느님께 도전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세상에 드러내며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저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총화가 코이노니아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이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공동의 유익(고전 14:12)을 위한 것입니다. 섬김을 위해서 능력과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격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공동체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은사로 섬기고 사랑으로 섬기는 가운데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영성체 특송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시어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하느님 나라를 비전으로 품고 그 나라를 미리 맛보며 그 나라를 확장해가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코이노니아!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작년 우리 교회 표어가 무엇이었죠?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복음 공동체” 

 

그래서 우리는 에페소서 5장 18절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교회는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하느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보람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카피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그 아름다운 삶!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성가 314장을 부르길 원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진정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양합시다. 하느님이 여러분을 사랑의 불꽃, 성령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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