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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지금! 돌아오라!

by 분당교회 2019. 3. 25.

사순 3주일

김장환 엘리야 사제 설교 말씀 


지금! 돌아오라!

 

예수님께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이 빌라도에 의해 학살당한 소식입니다. 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죽은 이들과 가족들에게는 알 수 없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인생의 의문점 중에 하나입니다. 왜 이런 고난이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3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신명기적 고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불순종으로 인한 고난을 말합니다. 사실 개인적인 고난이나 사회적인 참사로 인한 고난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묵시적 고난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박해하는 상황 속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기꺼이 순교까지 감내하는 신앙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셋째는 욥의 고난입니다. 쓰나미 지진 등으로 죽음을 당하거나 고난에 처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고난은 하느님을 부인하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고난이 하느님을 더 깊게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 중의 한 분 인생사가 그렇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셋째를 출산했는데, 3일 만에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십 수년째 식물인간으로 있습니다. 


그 분이 쓴 “난 당신이 좋아!”라는 책 표지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해서”라는 시구처럼, 죽음 같은 질병 앞에서 아픔도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배우게 되었다. 고통은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찾게 했고 이전에 내가 몰랐던 하느님을 알게 했고 결국에는 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했다. 찾아온 고통을 극복하는 법만 가르치는 현실에서 고통을 품는 법을 배웠다. 서두르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법 또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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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서는 다 알 수 없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이유가 어떠하든,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장기용 신부님 이임 직전 세례를 받으시고 냉담하신 안권욱(토마스) 교우의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안부 문자를 드렸는데 아내분이 보내신 답신 내용입니다.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인한 급성폐렴으로 중환자실 치료하였으나 폐가 살아나지 않아 3개월 만에 이식받고 지혈이 안 되어 세 번의 수술을 더 하였는데 아직 깨어나질 않고 있습니다. 격리실에 있어 면회 안 되구요. 회복되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주한 어거스틴 교우도 그렇고, 이렇게 고난 중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힘들어 하시는 가족들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무릎으로 하는 중보기도가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무고한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줄 아느냐?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당대 사람들은 이렇게 무고하게 죽는 것이나 질병들도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조상들의 죄로 인한 벌로 받아들였습니다. 현대인들도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일에 예배 안 드리고 놀러갔다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주일성수를 범하는 죄를 져서 그랬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런 죽음을 보면서 회개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 가운데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난 받는 이들을 보며 죄를 운운하는 판단과 정죄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라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얼마나 하느님 앞에서 죄인인지 오늘 서신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광야에서 끊임없이 죄를 범합니다. 우상숭배로, 음행으로, 주님을 떠보는 불신앙으로, 불평으로.. 그리고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며 맘몬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갑니다. 자주 음란한 생각에 잡히고 실제로 음행을 범람합니다. 불신앙으로 주님을 떠보며 너무나 자주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죽음이고.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현재적으로도 그 죄의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지금 당장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겁니다.  

  루가 13:3, 5,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이사 55:6-7, 6 야훼를 찾아라. 만나주실 때가 되었다. 그를 불러라, 옆에 와 계신다. 7 불의한 자는 그 가던 길을 돌이켜라. 허영에 들뜬 자는 생각을 고쳐라. 야훼께 돌아오너라. 자비롭게 맞아주시리라. 우리의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루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유산을 미리 챙겨 아버지 집을 떠나, 방탕한 생활 끝에 거지가 된 둘째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을 기다리며 매일같이 동네 어귀에 나와 있던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달려와 껴안고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줍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만 하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사랑의 아버지 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바로 알지 못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후회를 회개로 여깁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후회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돌아봐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말기 암 환자들이 ‘껄껄껄’하며 돌아가신다고 하죠? “더 사랑할껄, 용서할껄, 나누고 베풀껄!” 후회가 많은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만, 그저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돌아보았으면 돌이켜야 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대한성공회 선교 130주년을 준비하는 2019년 사순절 표어인 “돌아봄, 돌아옴”이 바로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송나라 진덕수(眞德秀)가 경전과 도학자들의 저술에서 심성 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집한 책인 심경에 “돌아볼 줄 안다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회개가 무엇인지 잘 알게 해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에 대한 오해도 있습니다. 회개를 ‘전적인 돌아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재산의 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착취한 것은 4배로 갚겠다는 자캐오처럼, ‘전적으로 돌아서는 일회적 사건’으로 회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회개란 돌아보아 자신이 하느님을 떠난 삶임을 깨닫고, 돌이켜 크게 U자를 그리며 하느님께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에는 실패와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때마다 다시 돌이켜 한 걸음씩 내딛는 것입니다. 이를 베네딕트 수도회에서는 “지속적 회개”라고 합니다. 


지속적인 회개에는 묵상과 기도가 절대적입니다. ‘렉시오 디비아’로 묵상할 때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한 걸음 내딛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령님께 요청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성찰기도’를 드릴 때, 감사한 일들은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힘이 되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일들은 하느님께 돌아서는 발판이 됩니다. 



렉시오 디비나와 성찰기도를 꾸준히 하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회개의 여정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기 직전 주일에 렉시오 디비나, 의식성찰기도 특강을 했던 이유입니다. 


오늘은 사순 3주일입니다. 이제 사순절이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이라도 ‘렉시오 디비나’와 ‘의식성찰기도’를 드리며 한 걸음씩 내딛는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살아간다면, 하느님은 사랑과 생명과 지혜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어, 보다 새로운 존재로 부활절의 기쁨을 만끽하게 하실 것입니다. 


1독서 말씀 몇 구절을 읽어드리며 마칩니다. 

이사 55:1-3,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 없이 술과 젖을 사서 마셔라. 2  그런데 어찌하여 돈을 써가며 양식도 못되는 것을 얻으려 하느냐? 애써 번 돈을 배부르게도 못하는 데 써 버리느냐? 들어라,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맛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름진 것을 푸짐하게 먹으리라. 3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로 오너라.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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