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나눔

성공회 교우들은 고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by 분당교회 2018. 11. 18.

성공회 교우들은 고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공동기도서를 만든 잉글랜드 종교개혁자 토머스 크랜머가 처음에 핵심 성사가 두 개가 아닌 세 개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세례와 성찬에 더해 고해가 핵심 성사에 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 개인의 죄를 하느님 앞에 고백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러나 크랜머의 기도서는 공동체 예배에 기반을 둔 고해를 강조합니다. 곧 모든 회중이 감사성찬례와 아침기도, 저녁기도에서 죄의 고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공동체적 참회는 감사성찬례의 일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전례 안에 나누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성체 전에 “주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 감당치 못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원문은 “우리는 자신의 의로 이 거룩한 식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식탁 아래 떨어진 부스러기도 주울 가치도 없으나 주님은 항상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되어 있다. “Prayer of Humble Access”라고 불리는 이 기도는 영국 성공회 및 미국 성공회 공동기도서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대한성공회 공동기도서를 비롯한 세계성공회 다수 교회는 로마 전례에 따라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이라는 마태오의 복음서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대한성공회 공동기도서의 표현을 살렸다.).

토마스 크랜머


대부분의 성공회 신자가 경험하는 참회의 표현은 이처럼 공동체의 예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개인이 하는 고해의 전통 또한 유지합니다. 기도서에는 자신이 지은 중대한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고 용서의 선언을 듣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고해성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와 마찬가지로 성공회 사제는 고해자의 신뢰를 존중하고 고해내용을 발설하지 않을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사제는 용서의 선언을 한 후 고해자의 통회로 이어지는 순간에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21세기를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은 개인 고해에 익숙하지 않고 이를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리 치료와 상담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며 건강한 정신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고해는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백함으로써 이를 보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죄는 용서받았다”라고 하시자 평화와 치유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죄의 용서는 한 사람을 온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성공회 교우들은 개인 고해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해는 강력한 영적 도구이며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성사예식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 고해에 대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하는 것을 권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입장을 취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에게 고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신앙/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림절 신비와 신앙  (0) 2018.12.04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주리라!  (0) 2018.11.26
대한성공회를 위한 기도  (0) 2018.11.11
관구의 의미와 역할  (0) 2018.11.11
감사한 죄  (0) 2018.11.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