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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교회는 시대의 예언자!

by 분당교회 2018. 7. 16.

2018년 7월 15일 설교문

김장환 엘리야 신부 

교회는 시대의 예언자!


80년대 대학을 다닌 저는, 예언자 아모스를 참 좋아했습니다. 암송하며 자주 나누었던 말씀이 5장 24절입니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아모스와 같은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선포한 메시지의 내용은 회개와 심판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1독서 아모스서의 8절을 보면 “다림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기준입니다. “나 이제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한가운데 드리웠다. 더 이상 이스라엘을 용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고자 세운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영역과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뜻이 ‘하느님이 다스리신다.’ 다른 의미로는 ‘오직 하느님께만 순종한다.’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 원리인 미슈파트 쩨다크 헤세드가 이루어져 샬롬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통치 원리인 미슈파트 쩨다크 헤세드가 아모스에 나오는 ‘다림줄’입니다. 


사람은 그가 엎어지는 대상이 그에게 주인이고 신입니다. 이스라엘은 바알에게 엎드렸습니다. 풍요와 번영을 바라는 욕망은 그들을 바알에게 엎어지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엎어지시나요?


이스라엘은 바알을 숭배하다보니 하느님의 통치원리인 공평과 정의를 따르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 죄악을 일삼았습니다. 아모스 5장을 보면 이스라엘  범한 죄악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10절, 이스라엘은 성문 앞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 말하는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12절, 죄 없는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10절과 12절에 나오는 ‘성문 앞’이란 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재판을 주관하는 권력자들이 이런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사법적 정의인 미슈파트가 무너졌습니다. 


11절, 이스라엘은 힘없는 자들을 마구 짓밟으며 그들이 지은 곡식을 거둬갔습니다. 8장 4절부터 10절까지는 성경의 기록된 제목이 ‘빈민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입니다.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가짜 저울로 속이며 등겨까지 팔아먹었습니다. 힘없는 자, 빚돈에 종으로 삼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 종으로 부려 먹었습니다. 분배적 정의인 쩨다크가 무너졌습니다.


미슈파트, 제다크가 무너진 이유는 그들의 마음에 헤세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으니 오직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느님을 무시하며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을 범하면서도 이스라엘은 하느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배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하느님께 복을 빌러 나온 또 다른 우상숭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21-23, 21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22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23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이렇게 공평과 정의가 무너진 시대를 향해 하느님이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심판을 외치게 하셨습니다. 오늘 1독서 아모스 7장을 보십시오. 


“9절, 이사악의 신당은 쑥밭이 되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폐허가 되리라. 나는 칼을 들어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리라.” 


17절, 바로 그 때문에 야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바로 이 성읍에서 몸을 팔고 네 아들딸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농토는 남이 측량하여 나눠가지고 너는 사로잡혀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겠고 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혀 고국을 등지고 떠나가게 되리라.'"


‘여로보암의 나라’란 북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솔로몬이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음으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가르셨습니다.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부족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신 북이스라엘을 통해, 이스라엘에 기대하셨던 하느님의 나라를 이뤄 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 역시 동일한 죄악으로 하느님을 떠났습니다.


하느님이 아모스를 보내시어, 회개와 심판을 외치게 하신 이유는 하느님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를 계속 이어갈 나라를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아모스 9:11,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틈이 벌어진 성벽을 수축하고 허물어진 터를 다시 세워 옛 모습을 되찾아주리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도 예언자입니다. 일찍이 세례 요한은 회개를 선포하고 요단강에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성전 제사를 통해서 회개를 표현하고 죄 사함을 확인했습니다. 세례도 원래 이방민족이 하느님을 섬기는 유대인으로 개종할 때 받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회개의 표시로 물세례를 받으라 함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통치를 벗어나 살아가는 이방민족과 같음을 지적했던 것이고, 강도의 소굴로 변한 성전체제를 반대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권력을 향해서도 외쳤습니다. 헤로데 왕을 향해 결혼의 부당함과 비도덕성을 질타했습니다. 마르코 6:18, “요한이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누차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분명하게 근친간의 결혼을 금하고 있기에 말씀을 대언해야 하는 예언자 세례요한은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레위기 20:21, “제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추한 짓이다. 그것은 제 형제의 부끄러운 곳을 벗긴 것이므로 그가 후손을 보지 못하리라.” 


요한을 죽인 사람이 헤로데왕입니다. 성경에 헤로데가 많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헤로데는 예수님 탄생 때 아기들을 다 죽인 헤로데 대제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원래 아라비아 아렛다 공주와 결혼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이혼했습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부인이 못생겨서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이복동생의 부인이었던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헤로디아는 족보상으로 안티파스의 조카딸이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 외침으로 인해 목이 잘리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듯 참된 예언자는 어떠한 박해와 불이익을 당해도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성품에 따라 불의와 부패를 고발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짓예언자도 있었습니다. 오늘 1독서 아모스서에 나오는 벧엘의 사제인 ‘아마시야’같은 사람입니다. 벧엘은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로 성소가 있었습니다. 아마시야는 여로보암왕의 신임을 받는 종교 종교지도자입니다. 


아마시야는 하느님이 다림줄을 내리시어 주시는 말씀을 전하는 참예언자를 모함합니다. 이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왕권의 평안과 국가 질서의 안정만을 축복해주는 역할만 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거짓예언자들이 더 맹위를 떨쳤습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 독일의 모든 교회들은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거짓예언자들이었습니다. 본 훼퍼 목사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고백교회가 히틀러를 반대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에 입각해 히틀러를 암살하는 계획까지 세웠었습니다. 이들이 참된 예언자입니다. 오늘날 본 훼퍼 목사님은 우리 성공회의 성인으로 존경받습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그 전쟁을 일으킨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성공회 신자여서 미국성공회 의장주교에게 축복기도를 받으러 왔었다고 합니다. 미국성공회는 기도 요청을 거절하며 불의한 이라크 전쟁을 즉각 멈추라고 직언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부시는 빌리 그래암 목사에게 가서 축복 기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언서의 기준으로 보면 그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이 거짓 예언자인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떤가요? 한국은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의, 사회적인 타락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하느님의 다림줄에 비추어 보면, 미슈파트 쩨다크가 무너진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 속에서 많은 한국교회는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복만을 빌어주고 교회의 성장만을 추구하며 불의한 권력자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시대의 거짓 예언자 역할을 했습니다. 실상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우리 성공회가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고 이단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인정받는 교회로 존재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나라의 원리에 따라 선교를 감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80년대 나눔의집을 중심으로 빈민선교를 해오고 있고 87년 6.10만세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한 것, 이후로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를 대변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조금이나마 감당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공회 선교정신 네 번째의 실천입니다. “불의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폭력을 반대한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도 계속 시대와 역사 앞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더 깊어져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2독서로 에페소서를 읽었습니다. 에페소서 2장을 보면, 하느님을 떠난 인생들(그리스도 밖에 있는 인생들)이 사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 살고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 육정이 이끄는 대로 살고 악령의 지시대로 산다’고 합니다.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이지만, 무신론과 실천적 무신론이 만연한 우리 사회는 그간 사법적인 정의는 무너진 채,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하여 외로움과 무의미에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기만 합니다.  


이런 우리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 백성 삼으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어 자시고자 하느님이 행하신 일이 오늘 읽은 2독서의 말씀입니다. 헤세드의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어 미슈파트와 쩨다크를 행하지 않는 그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매주일 드리는 감사성찬예배는 이 헤세드의 은혜를 되새기며 깊게 하는 전례입니다. 전심으로 예배할 때  그 사랑에 감동하고 감사가 깊어집니다.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하느님만을 사랑함으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참된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전례가 선교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참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시대를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다림줄로 지금의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헤세드의 다림줄로 보면, 난민을 외면하는 시대의 이기주의가 보입니다. 쩨데크의 다림줄로 보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 갈등 가운데 있는 가진 자들의 기득권이 보입니다. 미슈파트의 다림줄로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여전히 작동하는 불의가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아모스처럼, 세례요한처럼 하느님의 다림줄로 시대를 바라보며, 고난과 불이익이 있을 지라도 공평과 정의를 외치는 이 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용기 있게 이 시대를 향해 외치기를 원합니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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