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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하느님의 초청을 전하라!

by 분당교회 2017. 10. 16.

2017년 10월 15일 연중 28주일 설교말씀 

성공회 분당교회 김장환 엘리야 신부

마태오 22:1-14

하느님의 초청을 전하라!


지난 주일 설교의 제목이 “하느님의 비전을 이루라”였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바로 예수의 비전인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에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고 바라보고 살아가게 하고자 여러 가지 비유로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해 줍니다. 대표적인 비유가 혼인잔치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혼인잔치처럼 기쁨, 즐거움, 행복, 사랑, 축복 등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영국 우스타라는 도시를 방문했는데 성바나바교회 신자회장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그 부부가 새벽 1시에나 집에 온다고 집 열쇠를 주시더군요.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는데, 혼배성사를 드리고 나면 파티를 열어 늦게까지 포도주를 마시고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기 때문에 늦게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가 이제 비로소 한 몸으로 연합하게 되는 기쁨의 자리! 그 일치를 축하하는 축제의 자리가 혼인잔치입니다. 이렇게 기쁨이 넘치는 혼인잔치와 같은 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던 인생들이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며 기쁨과 감사로 사는 삶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성가 328장, 기쁨이 넘치는 주님 나라, 성도들 그곳에 함께 모여 / 즐거운 가락과 맑고 고운 노래로 하느님 은혜를 찬양하네.



하느님은 이 땅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공동체로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서신은 어떻게 해야 교회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비유로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22:2,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본문을 보면, 임금의 주된 관심과 일은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입니다. 임금은 이미 초청장을 발송한 사람들에게 종들을 보내어 재차 초청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응하지 않습니다. 3절,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임금은 또 다른 종들을 보내어 3번째로 초청합니다. 4절,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칫상도 차려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임금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 할 일들만 합니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임금을 무시하고 임금이 주는 축제의 기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모습이었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을 향해 간절하게 돌아오라고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하느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까지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8절 이후는 신약의 스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고 합니다. 종들은 명령대로 만나는 사람은 다 데리고 와서 잔칫집은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는 거듭 거듭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안에, ‘초청’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또 초청과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4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 9절, “청해 오너라.”  


하느님을 떠나 자기가 주인되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외침은 ‘돌아오라’ ‘초청’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끝내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때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심판으로 죽어가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태 22:7, “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초청에 응답하고 돌아오면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초청을 거역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엄위하신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 6:23,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면,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도 심판을 받습니다. “예복”이란 로마서 6장 23절에 따르면, ‘주 그리스도 예수’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을 누리며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 “예복”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교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르코 16:15,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들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종들처럼 나가서 초청하는 것입니다. 전도란 이렇듯 사람들을 예수님께 초청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 필립보가 같은 고향 사람 나타나엘에게 가서 말합니다. 45절에 “그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반문하는데, 필립보는 “와서 보라”고 나타나엘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초청했습니다. 



이렇듯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친절과 사랑으로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 ‘와 보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나도록 중보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1독서의 하느님과 하느님을 떠나 있는 백성 사이에서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 모세처럼, 우리 친구들이 초청에 응하고 예배와 공동체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구원의 사건이 일어


결실의 계절 이 가을에, 우리 모두가 우정 가운데 있는 가족과 이웃을 초청하고, 그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함으로,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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