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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8년 4월 20일 (부활 5주일) 강론초 (요한 14:1-1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19.

요한 14:1-14

1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3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6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8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9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무슨 말이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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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요한 14:1-14) 

“오직 예수!” 라는 말을 저는 싫어합니다.
정확히는 그 말을 다른 사람 들으라고 내세우는 것이 싫습니다.
저라면 교회간판이나 전도지 등에 “오직 예수”라는 말을 쓰지 않겠습니다.

확신 없이 뜨뜻미지근한 신앙이라구요? 꼭 그런 것이 아님을 믿어주세요.^^
“오직 예수!”라는 말은 남에게 강요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 양심에, 심장에 깊이 새겨야 하는 말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예전에 “내 탓이오” 운동이, 그 말을 자신의 운전대가 아니라 자기 차 뒷범퍼에 붙이고 다니는 바람에, 결국 “네 탓이다(네가 인정해라)”운동이 되었었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은 배타적, 독선적으로 예수님의 우월한 위상을 주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무엇보다 주님께서 걸으시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설명입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아버지께 돌아가는 길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리석음이요, 죽음이요, 저주요, 실패라고 하는 그 길이 바로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그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표현합니다. 주님은 바로 제자들과 우리들도 주님이 가신 그 길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맥락상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말씀은 부처나 마호멧이나 단군 따위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그런 수준의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다”는 그 놀라운 신비의 차원을 제자들이 깨달아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참으로 알고 일치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빌립보의 질문은 바로 오늘 저의 속마음입니다.
“빌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주님의 이 말씀은 제 마음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그렇군요, 주님! 저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으며 사제까지 되었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뵈옵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제 마음은 예수님의 그 십자가 길이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믿지 못하고, 또 다른 길, 더 편하고 확실한 기적의 길을 하느님께 구하고 있는 것이군요.”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제 마음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
부활하시어 영으로 제 마음에 와 계신 당신이
바로 저의 주님이십니다.
오직 예수!
나의 주님, 나의 전부여!”✠(2008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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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나자렛 예수”는 고유한 이름이지만 “주님”은 우리의 고백이 담긴 호칭입니다. “주님!” 하고 부르는 것은 다시 말해 “저희는 신뢰와 순종으로 주님을 따르는 종이요, 제자입니다”라는 고백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신 것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아버지이신 성부 하느님과의 완전한 사랑의 관계 속에 사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들도 역시 하느님과 그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하느님의 나라”라고 표현하시며 그 하느님 나라가 이 땅위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시고 그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삶, 곧 하느님 나라의 삶에 대해 가르치시고, 몸소 이적과 십자가로 그 나라의 표징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길, 진리, 생명이란 말은 우리들과 성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우리끼리 이 땅에 어울려 사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 아버지 집에는 머물 곳이 많다”는 주님의 말씀을 단순히 사후에 우리 영혼이 갈 저 세상이 있다는 뜻으로만 이해하시는데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의 삶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차원으로 살아야 하고 또 살 수 있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믿음은 죽은 후에 영혼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길(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살기 위해서, 우리 삶 전체가 하느님께 이르는 삶의 여정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유일한 “길(스승)”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여정 자체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며 기쁘게 감사와 찬양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보여주셨고, 그 길을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십니다.
이 땅에서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비워서 성령으로 채우며, 갈등과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참아 견디며 걷는 길입니다. 자기 몫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이웃을 돌아보며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마지못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진리로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억눌린 노예로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자녀로 하느님 앞에 살아가며 각자의 자유를 사랑으로 다시 봉헌합니다. 나날이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고, 그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누리면서 우리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2005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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