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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나눔

성공회 교우들은 왜 삼위일체를 믿나요?

by 분당교회 2019. 6. 16.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은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교리에 대하여 이견을 가질 때에도 교회는 철저하게 삼위일체 신앙에 머무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교리가 추상적이고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셋이라 말하고, 셋이 하나라 말하는 당혹스러운 주장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고유의 하느님 이해를 말이 되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을 입은 영원하신 하느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만난다고 믿습니다. 다른 말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라고 물어보신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나자렛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을 바라보며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오직 예수의 삶을 통해, 모든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종교는 하느님께서 스스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때만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슬림은 하느님의 말씀이 쿠란이라고 믿습니다. 유대교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토라Torah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의 생명 안에 위치시킵니다(엄밀히 말해서, 쿠란에 해당하는 그리스도교적 개념은 성서가 아니라 육신이 되신 영원한 말씀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서는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장으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결코 ‘시작’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영원성의 일부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말씀해 오셨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유대교인들과 무슬림들은 토라와 쿠란이 영원의 과거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경전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창조보다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도 유사한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육신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께서는 영원한 말씀의 계시입니다. ‘성부’는 만물의 근원을 설명하며, ‘성자’는 하느님의 교류하시는 속성을 나타냅니다. 자녀가 부모의 많은 부분을 나타내듯 말입니다. 성부 하느님의 창조주적 속성은 만물을 유지하고 존재하게 합니다. 성자 하느님의 계시하고 구원하는 속성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며, 우리가 완전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럴게 보면 창조와 계시가 모두 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창조는 대략 137억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약 2,000년 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서는 과거 하느님의 활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세 번째 속성으로 성령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주도면밀한 성서 연구와 인간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성서는 계속하여 하느님의 이러한 세 가지 속성이 움직이고, 연결하며, 상호 연관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마태 3:13-17 참조)에서 우리는 예수의 사명에 대한 성부 하느님의 거룩한 승인과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는 성령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이유는 하느님의 이러한 삼중적 역사하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를 믿는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유일신론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이슬람교와 유대교가 그리는 영원한 과거의 모습은 창조주 곁에 쿠란 혹은 토라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 토라와 쿠란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일부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유일성을 보호하기 위해 하느님의 두 가지 속성이 한데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성부와 성자 하느님이 한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느님의 쉼 없는 역사하심에 대하여 생각이 이르자 성령 하느님을 중요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세 가지 속성은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한 이유는 교회가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가 정당함을 변호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종파도 있습니다만 대다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시라는 전제 아래에서만 비로소 그를 예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실제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기에 삼위일체 교리는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그는 하느님이셔야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이 어떻게 당신의 복잡성 가운데 교회의 경험과 관계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내용은 다소 이론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난해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성공회 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포함해 다른 여러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성공회 신자가 되는 기쁨 중 하나는 교리의 내용이 와 닿지 않는다고 정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하느님이 진노하지 않으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공회 신학의 중심에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본성에 대한 헌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합니까?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활동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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