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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가두어 둘 수 없는 것

by 분당교회 2016. 3. 28.

가두어 둘 수 없는 것


부활의 최초의 증언자는 막달라 마리아이었습니다.

예수를 지극히 사랑한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어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배반하고 도망 간 것을 생각하면 그의 신실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합니다.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어 간 줄로 알고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막 달려 온 제자들이 무덤을 확인할 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예수를 만납니다. 예수는 더 이상 울지 말고 형제들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합니다. 


빈 무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현장입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말리는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예수의 시신이 누워있던 그 자리는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고 사랑하던 이들에게는 절망의 자리이며 비통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어있다고 하는 것은 절망과 슬픔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절망과 슬픔을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던 사람들은 순교의 현장에서도 누구를 저주하거나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 루벤스)


그런데 빈 무덤은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의 죄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가두어 두었던 자리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인간은 예수를 죽임으로서 자신들의 죄를 가리려고 했습니다. 죽이면 끝난다는 생각으로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하셨고 무덤은 비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과 생명을 가두어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빈 무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른 닫아버린 판도라 상자에는 ‘희망’이 남아 갇혀 있다고 하지만 부활하셔서 무덤을 나온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과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압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비록 고통스럽고, 버림받은 것처럼 여겨지고,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과 조롱을 참아내신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겨냈으니 항상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는 드라마는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해피엔딩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삶이 해피엔딩을 넘어서서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심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 주는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둠은 빛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 빛이 비록 작은 촛불이라 할지라도 우주의 어둠을 삼킬 수 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부활 신앙이 연약한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에 퍼졌다고 하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어둠 속에 살지 않고 빛 속에 살게 합니다. 죄 속에 살지 않고 구원의 문을 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죽음들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고 매장하고 위장하는 비정한 부모들, 아니 생명과 사랑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조차 없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독버섯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것에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애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음의 문화를 창궐하게 합니다. 자살률 세계 1위에 출산률 최저 1위가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죽음의 문화에 익숙하고 그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전환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죽음의 문화는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죽이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니까 대량 살상무기도 만들고, 원수 진 사람들을 살해하고, 귀찮으니까 죽여 버립니다. 괴로운 일이 있으면 죽어버리면 그 괴로움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만, 부활 신앙은 끝나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느님 나라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7일 부활대축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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