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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685

2007년 9월 1일(토) 강론초고 ( '열심'보다 중요한 '감사') '열심'보다 중요한 '감사' 저는 겁이 많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 저런 일에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많습니다. 예전에 대학 졸업후 1년을 그냥 놀았습니다. 세상에 나가기가 겁나서요, 그리고는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험한 세상에 비하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가요, 신학교는. 생각대로 안온하긴 했지만 현실은 분명 ‘빌어먹는’ 삶이었고 이대로 평생 빌어먹는 인생이 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은 참 우울하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는 “빌어먹는 삶”을 기쁘게 누릴 줄 알게 되었고 그 일에 얼마나 교우들의 크나큰 사랑이 뒷받침되는가, 그 근저에 얼마나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는가를 깨닫고 있습니다. 만일 “너 이만한 처우를 해줄터이니 이만한 실적을 내라”는 식의 요구가 교회공동체로부터 제게 주어진다면.. 2007. 9. 4.
2007년 8월 31일(금) 강론초고 ( 종말을 거룩하게) ‘종말’을 ‘거룩’하게! ‘종말(終末)’은 ‘시간(時間)’의 문제 같지만, 실은 ‘가치(價値)’의 문제입니다. ‘거룩’은 나를 구별(區別)하여 지키는 노력 같지만, 실은 관계(關係)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순진해서 지난 1999년 7월에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실제로 무척 두려워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든 종류의 시한부 종말론을 다 헛소리, 개소리^^로 알지만요... 종말은 이 세계가 우연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치)로 충만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겁니다. 무슨 의미가? 바로 그 의미가 문제입니다. 저는 그 의미의 문제가 바로 등잔과 함께 준비해야 하는 기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행위에는 그 내용이 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용 없는 신앙생활.. 2007. 9. 4.
2007년 8월 30일(목) 강론초고 (사목자로 사는 일) 사목자로 사는 일 나는 행복한 사목자다. 사목 자체에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마냥 해피하다.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 교우들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교우들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나름대로 공부하고 기도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내 일이다. 우리 교회, 우리 교우들은 나의 면류관이다.^^ 그런데 행복한 사목자인 나는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 아니라 실은 무척 게으르고 악한 종이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사목을 했더라면, 말씀 그대로 “종말론적인” 태도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이 세상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교회와 교우들을 섬겼다면 아마도 지금의 세배는 더 사목적 열매를 거두었을 것이다. (이것도 혹시 겸손을 가장한 교만은 아닐까?^^) 왜 게으르고 악하게 지내느.. 2007. 9. 4.
2007년 8월 29일(수) 강론초고 (세례자 요한의 참수) 세례자 요한의 참수어떤 사람을 원하려면 그의 살아있는 “온 몸”을 원해야지 달랑 “머리”만 원하면 안된다.^^ 어떤 이의 부분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를 해체하여 죽이라는 것과 같을 지 모른다. 이 본문에 관한 어느 분의 묵상에서 “세례자 요한의 참수는 바로 신앙이란 우리의 머리(=자기생각)을 잘라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참으로 기발하고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탄복했으나, 역시 내가 묵상한 것이 아니어서 내겐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도 든다.) 예언자는 자기 생각, 자기 신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이다. 죽을 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경지는 모른다. 옳은 일, 바른 말 하기를 제대로 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내가 대부분의 세상 .. 2007. 9. 4.
[설교]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 _ 루가 13:10~17 살아계신 하느님 안에서의 안식과 회복 (루가 13:10-17) 8월 26일(연중21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일하고, 하느님께서 쉬셨으니 우리도 쉽니다. 삶의 요령은 어쩌면 이렇게 평범하고 단순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은 안식일을 어기는 자는 죽여야 한다고 서슬이 시퍼랬습니다. 왜 그럴까요? 안식일을 무시하는 일을 하느님께 대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십 계명의 제 4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1,2,3계명의 ‘하느님’께 대한 계명과 5계명이하의 ‘인간들 사이’의 계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안식일 계명은 바로 하느님과 인간사이, 인간과 인간사이, 인간과 자연사이의 화해와 회복을 보장하기.. 2007. 8. 23.
[설교] 불을 지르러왔다, 시대를 분별하라 _ 루가 12:49~56 믿음은 말씀이 우리 안에서 불 타는 것 (루가 12:49-56) 8월 19일(연중20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믿음이 좋다는 것을 주관적인 확신의 강도가 쎄다는 걸로 이해한다면 이는 매우 얄팍하고 가벼운 판단이라 하겠습니다. 물 론 예수님은 사람들의 믿음을 눈여겨 보시고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8:13 외)고 하셨습니다. 이른바 '적극적 사고방식(긍정적 신념)'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말씀들에 근거하여 긍정적인 믿음이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건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처럼 단순히 환경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통하여 사고방식과 삶의 입장과 태도를 결정합니다. 하 지만 믿음은 우리 머리 속의 믿음이 아니라, 하.. 2007. 8. 18.
[설교] 재물을 하늘에, 항상 준비하라 _ 루가 12:32~40 모든 일에서 ‘하느님 사랑’을 보는 믿음 (루가 12:32-40) 8월 12일(연중 19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히브리서 11장은 별명이 “믿음章”입니다. “믿음이 무슨 소용일까?”에 대하여 성경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주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준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네 어린 양떼들아, 조금도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교우 여러분, 이 말씀이 힘이 되세요? 마음에 와 닿으시나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 하나요? 경제적 어려움, 자녀교육, 부부관계, 인간관계, 승진, 사업, 오해받음, 늙어감, 병고, 죽음 ... 세상살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그 모든 두려움에 하느님의 “하늘 나.. 2007. 8. 12.
[설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_ 루가 12:13~21 부자도 누려야 할 영원한 생명 (루가 12:13-21) 8월 5일(연중 18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예수님께서 부자(富者)를 적대시하고 멀리하셨다고 보는 것은 부자들하고만 친하셨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원칙은 한마디로 “구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를 전한다” 는 것 외에는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물 론 “부자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그 말씀도 “하느님께서 모든 부자를 거절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부자는 하느님을 거절한다”는 의미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는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찬양을 비웃게 되고, 대신 “돈은 나의 힘, 아쉬울 .. 2007. 8. 2.
[설교] 주님의 기도 _ 루가 11:11~13 기도 ! 마법의 도구 아닌 은총의 통로 (루가 11:1-13) 7월 29일(연중 17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의 뿌리요 줄기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열매있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기도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뜻에 맞추어 하느님 자녀로서 세상 속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는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되새길수록 깊고 깊습니다. 하느님의 아버지되심과 아버지의 하느님되심, 살아계신 하느님의 하느님 나라, 일용할 양식을 얻고 나누기, 죄를 깨닫고 죄를 용서받고 죄를 용서하기, 유혹을 살피고 조심하고 물리치기, 이 내용들은 우리가 인생을 뜻있고 기쁘게 살기위해 구해야 할 절대로 필요하고 참으로.. 2007. 7. 28.
[설교] 마르타와 마리아 _ 루가 10:25~37 참된 환대(歡待)는 경청(敬聽)입니다 (루가 10:25-37) 7월 22일(연중 16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가령 하루 종일 일한 일꾼들에게나, 한 시간 일한 일꾼에게나 똑같이 대우한 ‘포도원주인의 비유’(마태 20:1-16)가 대표적입니다. 오늘의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그 의미가 알쏭달쏭해집니다. 우리가 선입견과 경험에 비추어 이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 대개 마르타는 애써 남을 위해 일하고 봉사하는 이타적인 인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마리아의 태도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도리어 마르타를 나무라시고 마리아를 .. 2007. 7. 21.
[설교] 착한 사마리아 사람 _ 루가 10:25~37 “올바른 관계”로서의 사랑 (루가 10:25-37) 7월 15일(연중 15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율 법학자의 이 질문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율법을 어떻게 읽었느냐”고 반문하시자 곧장 훌륭한 답을 내어놓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너무 싱거운 예수님의 응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전혀 별개의 다른 “영적 지혜”를 들려주시지 않습니다. 그저 율법의 정신을 진심으로 실천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이 .. 2007. 7. 21.
[설교] 세례자 요한의 출생 _ 루가 1:57~66, 80 예수님을 따라 걷는 하느님 나라의 길(루가 1:57-66,80) 7월 1일(연중 13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세주)이심을 믿는 이들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시(啓示)이지만 그 계시는 단지 머리로만 인지하면 되는 무슨 ‘정보’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그 계시에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마르9:7)”는 명령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계시의 명제는 반드시 믿는 이들의 ‘고백’과 ‘추종(追從)’이라는 실제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루가복음은 우리 고백의 내용과 추종의 동기에 대하여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의 “저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는.. 2007.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