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685

2007년 11월 18일 (세계성공회 평화대회 평화주일) 공동설교문 (요한 20:19-23) 묵시 21:1-81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읍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읍니다. 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3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읍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 때 옥좌에 앉으신 분이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 2007. 11. 18.
2007년 11월 18일 (연중 32주일) 강론초 (루가 21:5-19) 루가 21:5-19 5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6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7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9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날이 곧.. 2007. 11. 18.
2007년 11월 11일 (연중 32주일) 설교 (루가 20:27-38 부활에 대한 토론) 루가 20:27-38 [부활에 대한 토론(마태오 22:23-33; 마르코 12:18-27)]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읍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30 둘째가 형수와 살고 31 다음에 세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읍니다. 32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읍니다. 33 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었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읍니까?" 34 예수께서 이렇게 .. 2007. 11. 11.
2007년 10월 21일 (연중29주일) 설교 (루가 18:1-8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 루가 18:1-8 [과부와 재판관] 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2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 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 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읍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4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 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 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5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 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6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고약.. 2007. 10. 19.
2007년 10월 14일 (연중28주일) 설교 (루가 17:11-19 나병환자 열 사람)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믿음! (루가 17:11-19) 오늘 루가복음은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하셨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서가 진짜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 기적 자체의 대단함이 아니라 그 기적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천형(天刑), “하느님께 저주받았다”고 여겨지던 나병환자들의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는 탄원은 정말 절박한 간구였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사제들에게 몸을 보여라” 하신 말씀은 아무런 조건 없이 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치유의 은총을 내리셨음을 뜻합니다. 나병이 치유된 것을 판단하고 다시 공동체에 복귀하도록 하는 권한이 사제에게 있었기에 사제에게 보낸 것입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병이 .. 2007. 10. 12.
2007년 10월 7일 (연중 27주일) 설교 (루가 17:5-10 믿음의 힘, 종의 의무) 믿음의 힘은 은총의 힘 (루가 17:5-10)"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의 청은 곧 우리들의 청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르코 복음 8장에서 비슷한 청원을 봅니다. 악령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하자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고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아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지요. 이는 고백과 겸손이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청원입니다.그런데 그에 비해 오늘 루가복음에서 제자들의 청원은 약간 불순합니다. 왜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까? 우리 경험에 비추어 제자들의 마음을 짐작해보.. 2007. 10. 6.
2007년 9월 30일(연중26주일) 설교 (루가 16:19-31 부자와 라자로) 사랑과 존경을 여러분에게! (루가 16:19-31)무슨 카피같은 제목을 일부러 생뚱맞게 달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들려주신“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짐작을 뛰어넘으려...^^)이 대목을 근거로 사후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어 ‘천국과 지옥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는 것이다’등의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어째 좀 ‘넌센스’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역시 부자와 가난한 이의 관계가 핵심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부자가 받은 심판은 단지 부귀했다는 것이 이유가 아니겠지요.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부자가 자기와 같은 시대와 사회를 살아간 거지 라자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연민도, 책임의식도 갖지 않았던 게 문제입니다.. 2007. 9. 30.
2007년 9월 25일(화/추석) 추석 성찬례 설교 (감사와 나눔의 명절) 추석 감사성찬례 설교감사와 나눔의 명절기쁜 명절 추석입니다.푸른 하늘에 한가위의 밝고 둥근 달빛이 가득한 것처럼우리와 모든 이들의 마음에도 풍성한 주님의 은총이 가득차기를 기도합니다.추석절은 본래 햇곡식과 과일을 거두고 감사하는 축제입니다.신에게 정성을 바치고, 조상을 기억하고, 모두가 함께 노고를 달래고 기쁨을 누리는 때입니다.인간이 살아가는 일, 생존을 영위하는 일은 사실 팍팍하고 고단한 일입니다. 명절은 그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고 기쁨을 더하는 날로서 중요합니다.명절이 되면 그리스도인이 있는 집안에서는 제사를 지내느냐 마느냐로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생각하면 실은 그리 심각하게 대립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우리가 지금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제사는 유교식의 제의입니다. 그런데 유교가 보편화되기 전에.. 2007. 9. 24.
2007년 9월 24일(월) 강론초고 (가진 줄 알고있는 착각을 벗고) 가진 줄 알고 있는 착각을 벗고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성공회의 신자이고 사제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자기이해와 긍지는 알고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문제는 “내가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고 있는가” 이다. 내 안에서 성령의 불이, 사랑의 불이 빛과 열을 내며 타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잘 닦인 거울같이 맑고 투명하여서 말씀과 성사의 사랑과 진리를 반사라도 하고 있는가?나는 사실 겸손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수준으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빛없는 그리스도인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겸손한 척 하는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자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가 그러할 뿐이다. .. 2007. 9. 23.
2007년 9월 23일(연중 25주일) 설교 (루가16:1-13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 슬기로운 청지기로 살기 (루가 16:1-13)오늘 약삭빠른 청지기에 대한 비유 말씀을 듣노라면 잠시 혼란스럽습니다. 횡령죄에다 배임죄까지 범한 청지기가 도리어 칭찬을 받다니요? 그러나 오늘 비유의 초점은 청지기의 ‘책임감’이 아니라, 그의 슬기로운 ‘판단과 처세’ 입니다. 주인 입장에서 믿을만한 청지기는 아니었지만, 그가 청지기직분을 이용해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덜어주며 자기를 위한 환심도 사고 주인의 덕망도 살린 일은 참 지혜로왔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청지기’에 비유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우리는 ‘소유하는 권리’로서가 아니라 ‘관리하는 책임’으로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소유를 자랑하는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주인이신 하느님의 것을 함부로 낭비하고 빼돌린.. 2007. 9. 22.
2007년 9월 22일(토) 강론초고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주님)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주님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셨는가?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이 대답은 일종의 스포일러(spoiler)^^다.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한 신비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 했던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내리신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추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비밀이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과 성령강림을 깊이깊이 생각한 후에 다시 이 대답을 채택하기로 하자. 오늘 복음서의 비유를 말씀하신 우리 주님, 예수님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신 분이다.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시면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어떤 방편으로, 어떤 능력으로, 어떤 지향으.. 2007. 9. 21.
2007년 9월 14일(금) 강론초고 (십자가 구원의 본질) 십자가 구원의 본질십자가는 나를 위한 구세주의 죽음이었다. 십자가에 흐르는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한다. 오늘도 나는 피 흐르는 십자가 밑에서 나를 돌아본다. 이런저런 상념들은 자유롭다. 너그러이 보아주시길...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바로 나...누구를 위해서? 또한 나 ...내가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못박았는데 무슨 구원인가?나의 구원은 결국 알고 사는 것이다. 오늘 내가 사는 일은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과 그 희생은 사랑이고, 사랑이어야 하고 사랑일 수 밖다는 걸!나는 남의 희생을 당연시했고 태연시 했고 속으로 냉소했고 경멸했다.힘으로 또는 속임수로 그 희생을 조장하려 했다. 나의 희생은 두렵고 어리석고 피해야 할 일로 여겼다. 나의 구원은 결국 묻고 사는 일이다.나는 누구를 살리.. 2007.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