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공회 영성

웨스터호프는 “결국”(in the end) 성공회를 하나로 묶는 것은 공동기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매일의 일상생활을 강조한다. 다른 별난 체험의 자리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하느님과 관계를 깊이하고 참된 자신을 만나고 타인과 피조세계와 만나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기도와 일상생활이라는 두 요소를 언급하면서 웨스터호프는 성공회 영성 이야기를 시작한다. 개인의 사적기도와 초자연적 체험을 영성생활의 초점으로 올려놓는 것은 적어도 성공회의 특성은 아니다. 어반 홈즈도 말했거니와 성공회는 일상성을 소중히 여기는 영성을 갖고 있다. 본디 성무일과의 의의가 그러하듯 공동기도는 자칫 무의미한 일상의 의미를 일깨우고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

(1) 성공회 영성은 전례적이며 성서적이다(Liturgical/Biblical).

매일 드리는 공동기도는 성공회 영성의 뿌리다. 기도서에는 네 개가 나오니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그리고 밤기도다. 얼른 생각해봐도 다른 교파에 비해 정형화된 의식을 통해 영성을 기른다는 특성이 드러난다. 웨스터호프는 성공회신자는 대개 기도서의 정해진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하는 것 말고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기도는 그리 편치 않아하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는 기도서로 드리는 전례적 기도란 성서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 성공회는 매일 의식적이고 정형적인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 감사, 회개, 봉헌, 대도(혹은 중보기도)와 청원을 드리는 전통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주일성찬례를 빼놓고 매일의 공동기도란 거의 유명무실하다. 매일의 전례를 통한 영성배양이 성공회의 길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성공회적인가? 게다가 신앙의 근본을 성서로 세우되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의 맥락에서 성서를 해석하게끔 의도한 것이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의 기도서다. 그 기도서로 드리는 성공회 전례를 종교개혁의 개혁대상이었던 비성서적 중세교회의 전례인 양 비판하는 착시현상마저 엿보인다. 먼저 알고 이해한 다음 비판하는 것이 지적 에티켓이다. 중세가 라틴어를 몰라서 성서와 예배에 문맹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성공회전통과 유산을 이해하지 못해서 오는 문맹도 만만찮다.

(2) 성공회영성은 공동체적이다(communal).

성공회는 늘 공기도가 사적인 기도보다 앞선다. 전자가 후자를 빚는다. 그래서 개인기도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회는 기도가 개인적이고 사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이런 연유로 해서 기도서를 통해 굉장히 폭넓은 시야로 기도하는 대도(代禱)를 중시한다. 사실 기도서란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훈련하는 책이다. 그래서 기도서다. 그리고 전례력(혹은 교회력)을 따라 같은 주제, 같은 초점을 갖고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 웨스터호프는 영성생활을 사적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성공회영성에 “반하는 것”(antithetical)이라고 단언한다.

성공회는 무엇을 판단할 때 초대교회 전통에 호소하는 특성이 있다. 공기도를 사기도보다 앞세우는 것도 초대교회적 특징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유다교의 매일 세 번 드리는 공동기도의 전통에서 탄생한 초대 그리스도교도 매일 두세 사람 이상이 모여 함께 드리는 기도가 핵심이고 개인기도는 거기서 파생되는 걸로 보았다. 물론 개인기도와 공동기도는 서로를 세워주고 채워준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공동기도에 더 무게를 실었다. 기도생활, 영성생활을 나와 “내 영혼의 구세주”의 일대일 관계에 두고 교회도 그 배경이 되어주는 역할로 이해하는 방식이란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에서 등장한 지 얼마 안 되는 것이다.

성공회는 의회로 모였을 때도 무언가 회의를 통해 결정을 할 때도 늘 기도서를 통한 예배를 드린다. 본디 성공회기도서란 기도와 예배의 맥락에서 성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찾자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늘 간극이 있게 마련이라지만 현실에서는 이 예배가 요식행위로 전락하기 일쑤다. 예배드리면서 일껏 함께 성서를 듣고 하느님 앞에 서있는 공동체임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회의는 전혀 별개다. 각자의 입지와 이해관계가 하느님의 뜻을 대신한다. 그래도 애써 기억하자. 모였을 때 공동기도는 본론에 앞선 전단계가 아니라 전체과정을 감싸는, 하느님의 마음을 찾는 식별의 톤을 마련하는 시간이다. 이렇듯 성공회는 성서해석, 기도와 식별을 공동체전례 안에서 하려는 영성을 갖고 있다.

(3) 성공회영성은 성사적이다(Sacramental).

성사의 정의는 “내적이며 영적인 은총을 외적으로 보이게 드러내는 표지”다. 웨스터호프는 성공회에는 두 개의 큰 성사(세례와 성찬례), 다섯 개의 작은 성사(견진, 혼배, 조병, 화해, 성직서품)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개신교는 두 개의 성사만 인정하고 천주교는 칠성사 즉 일곱 개 성사를 다 인정한다. 성공회는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으로 구분해 양편을 다 수용한 셈이다. 그런데 사실 2성사냐 7성사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웨스터호프는 성사의 목적에 밑줄을 친다. 성사를 드림으로써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더 의식하고 자각하게 되는데 그것이 성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웨스터호프는 우리 성공회 신앙은 성사와 같은 상징 혹은 상징적 행위가 풍부한 전통임을 말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성사와 상징이 결국 매일의 생활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혹은 안에서) 살게끔 하려는 것임을 기억하면 성공회영성의 특성은 더 뚜렷해진다. 성공회는 비일상적이고 초자연적, 영웅적 행위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영적의미를 더 강조한다. 그래서 성공회영성에는 기둥 위에서 초자연적 수행을 한 은수자들보다는 부엌에서 일상활동을 하며 영성을 드러낸 로렌스 같은 이가 더 모범에 가깝다. 성공회영성의 이러한 일상성 강조는 다시금 초대교회적 특성과 맞물린다. 성 어거스틴은 304가지 성사를 언급했다고 한다. 결국 일상의 모든 것이 성사 즉 ‘거룩한 일’이 되게 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하느님 홀로 거룩하시니 빨래하고 일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과 더불어,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면 그 일이 곧 성사가 된다. 교회의 예식으로서 성사는 다 이 목적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2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3) 전통

존 웨스터호프가 “전통 혹은 고대성”(tradition or antiquity)라고 언급한 점부터 짚고 들어가자. 성공회가 “전통”이라 할 때 고대 즉 초대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그 표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성공회의 전통 운운할 때는 19세기 말엽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성공회 신자들이 경험한 내용을 의미하기 일쑤다. 즉 초대교회가 아니라 조부모, 부모 세대의 한국 성공회를 의미하는 말이 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 성공회가 말하는 전통이란 고리타분한 것, 무겁고 생동감 없는 것과 동의어다. 그러나 성공회가 성서-이성-전통을 말할 때 전통이란 그리스도교 역사 중에도 초대교회를 의미한다는 점부터 기억하면서 혼동을 피하기로 하자. 초대교회 처음 다섯 세기는 역사상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응집력 있게 일치했던 시기다. 성공회는 이 시기의 신앙과 성서해석이 널리 일치하고 받아들여진, 그런 의미의 보편성(가톨릭)에 주목한다.

신학 작업을 할 때 보통 보편성, 연속성, 반향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생각한다. 보편성이란 구성원들의 경험을 얼마나 보편적으로 반영하느냐는 기준이다. 연속성이란 이전의 신학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느냐는 기준이다. 그리고 반향성이란 작업의 결과 사람들이 얼마나 거기 호응하느냐는 기준이다. 보편성을 공시성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연속성이란 통시성의 기준이고 소위 가톨릭성이란 공시, 통시적으로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톨릭을 정의할 때 “언제 어디서나 받아들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처음 다섯 세기란 어느 때보다도 신학 작업에 있어 보편성, 연속성, 반향성을 확보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적 신앙을 드러낸 시기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회가 어떤 신학적 작업을 할 때 초대교회의 전통에 호소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성공회의 개혁가들이 성공회 확립을 변호할 때 자주 등장한 것이 초대교회로 돌아감이라는 기준이었다.

성공회가 전통이라 할 때 초대교회 처음 다섯 세기를 염두에 둔다는 말은 이 시기는 성서해석에 있어 일치감과 응집력이 존재한 때로 본다는 말이다. 즉 전통이란 앞선 사람들이 성서를 놓고 이성적 숙고작업을 해서 그 의미를 밝힌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와 상황에서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할 때 앞선 사람들의 해석을 참고하는데 이것이 전통이다. 그런데 초대교회 처음 다섯 세기는 해석에 있어 일치했던 시기이므로 우리에게도 소중한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와 전통은 엄밀히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면 성서 안에 이미 전통이 들어 있다. 우리는 예컨대 신약성서에서 바울로의 서신들을 그대로 성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바울로 역시 전통에 기대면서 말하고 글을 썼다. 바울로 사도가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하고 말할 때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이란 전통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 전승을 의미한다(1고린 15:3). 그러니까 바울로만 해도 어떤 전통에 입각해서 성서의 의미를 밝히고 하느님의 뜻을 찾은 것이다. 이렇듯 성서 안에 이미 성서-이성-전통의 요소가 같이 들어 있음을 자각하고 밝힌 점이 성공회 정신의 훌륭한 특성이다.

한편 웨스터호프는 전통이 그저 성서해석의 역사만이 아님을 짚는다. 바울로가 기댄 구전을 접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어딘가? 바로 예배라는 맥락이다.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구전을 접하고 또 전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예배 즉 전례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빛에서 구약의 율법과 전승을 해석하고 하느님의 뜻을 식별한 공동체의 경험이 몹시 중요하다. 그래서 성공회는 성서를 교황 같은 고위성직자만 해석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지만 동시에 개인이 멋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도 보지 않았다. 다만 공동체로 모여 예배드리는 전례의 맥락에서 풀이하고 받아들이는 해석의 공동체성을 중시했다. 이것은 아마도 ‘공동체 검증 혹은 반증의 원리’라 부를 만한 것으로 오늘날 영성을 논함에 있어서 거짓영성을 식별하는데 중요하게 부각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웨스터호프는 인간이 무오할 수 없듯 전통도 그렇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서도 전통도 부단히 재해석되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통에 참여한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성공회는 이 전통을 부동의 무엇이기보다 계속 살아 변하는, 유기체의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전통은 화석처럼 죽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공동체가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무엇이다. 이렇게 부단한 대화와 재해석의 여지란 동시에 관점의 차이와 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공동체는 서로 대할 때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고 오래 참으면서 사랑으로 서로 수용하라는 바울로의 권고를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라는 구절은 최근 세계성공회 내의 갈등과 긴장을 다루면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성서말씀이 아닌가 한다(에페 4:1-3).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2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즘 성공회묵주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곱 개씩 네 묶음인 성공회묵주의 모양이 갖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성공회묵주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원 모양이 됩니다. 이 원은 시간의 수레바퀴를 상징합니다. 태어나서 우리가 걷는 인생 여정 특히 영적순례의 여정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네 개의 십자구슬이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선을 그으면 십자가 모양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는 순례의 삶을 나타냅니다.

본디 교회력이란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을 네 개의 정점으로 해서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배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생애의 주요사건을 거기 상응하여 기억하고 묵상하게끔 한 것이지요. 대림, 성탄, 공현, 사순, 성주간, 부활과 성령강림의 절기들을 태양력의 네 정점을 수레바퀴의 축으로 해서 한 바퀴 돌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여정을 묵상하며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전례력이란 이렇듯 그리스도교 수행체계라 할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동지(冬至)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로부터 사흘 뒤 죽은 듯 멈춰있던 태양이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고대인들은 이때를 빛이 세상에 탄생하는 날 그래서 세상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때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볼 때 이때는 성탄을 기념하고 묵상하기에 적절한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은 춘분(春分) 즉 낮이 밤보다 길어질 무렵 그래서 빛이 어둠을 이기는 때에 배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 절기는 하지(夏至) 즉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고 밝은 때에 배열하여 묵상한 것입니다.

1) 대림절: 대림절은 성탄절 4주 전에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베들레헴에 탄생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기간이면서 또한 종말의 때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의 절기입니다.

2) 성탄절: 오늘날 성탄절은 12월 25일을 기점으로 12일간 지속되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물론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화육하셨음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성탄과 성육신이란 주제는 과거의 어느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여정에서 우리 내면에 하느님 생명이 탄생하여 우리 또한 하느님의 거처요 성전이 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 공현절: 공현절은 빛이 어둠을 뚫고 나와 세상이 알고 또 보게 되었다는 의미의 절기입니다. 1월 6일부터 시작되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직전 화요일까지 이어집니다. 빛을 따라온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 예수님의 세례 및 가나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 등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모두 빛이 세상에 들어오면서 때 벌어지는 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어둠과 무지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일어날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4) 사순절: 재의 수요일에서 성지주일에 이르는 40일이 사순절입니다. 빛이 드러나면 어둠의 저항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순절은 이러한 어둠의 저항과 반격을 경험하는 절기입니다. 영적 순례의 여정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겪는 일입니다. 우리 내면에서 하느님 생명이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면 안팎의 어둠이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우리의 수난을 마련합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어떻게 어둠과 맞서고 빛을 따르는 대가를 치르는지 묵상합니다.

5) 성주간: 성지주일 및 고난주일로 시작되는 한 주간입니다. 수난복음을 읽는 주간이며 성목요일(혹은 건립성체일), 성금요일, 성토요일로 이어집니다. 어둠과의 투쟁이 절정에 달해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과는 달리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죽어도 죽지 않는 하느님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생명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이 성주간입니다.

6) 부활절: 부활절은 부활전야부터 시작해서 50일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핵심 절기이며 매주일은 작은 부활절로 지켜지는 셈입니다. 예수님처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어둠과 죽음에 감싸이나 그것은 마치 고치처럼 우리에게 변화된 새 생명,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한 생명을 말없이 준비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부활 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발현하는 것을 기념하고 묵상합니다.

7) 성령강림절: 어둠을 뚫고 솟구친 빛이 마침내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하나로 연합할 때 많은 생명의 선물이 쏟아지니 교회의 탄생이요 성령의 은사입니다. 부활절 후 50일이 지나 성령강림일이 되고 이후는 성령강림 후 주일 혹은 연중주일이 되어 교회력에서 가장 긴 기간이 됩니다. 성령강림일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사람 위에 부어져 우리 또한 그분처럼 성육신한 존재 혹은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세상의 죄와 분열을 없애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합니다.

일곱 개씩 네 묶음으로 이루어진 성공회묵주에서 태양력의 네 정점을 놓고 돌아가는 교회력의 일곱 절기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동서남북 네 방향을 다 포괄하고 지수화풍의 네 요소를 다 포괄하는 의미를 기억하는 것도 성공회묵주가 갖는 상징성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한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빛과 어둠,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자랑과 수치를 모두 하느님 자비 안에서 담아내어 통합하여 온전해지는 의미를 기억하기로 합니다. 한편 인간경험의 전체성을 존중하는 성공회 영성다운 의미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2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3-2 이성

성공회가 16세기 종교개혁에 동참하면서도 “오직 성서”라는 구호를 따라하지 않고 “이성”과 “전통”을 더하였다. 개혁파가 강조하는 성서나 로마교회가 강조했던 전통(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나 이미 이성의 역할이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이때 이성이란 인간이 자기 경험을 돌아보고 숙고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성서든 전통이든 이성과 무관하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 처음부터 성공회가 가진 눈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성서 자체가 애초의 기록을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되 앞선 해석을 참고하면서 기록한 것이다. 성서-이성-전통이라는 세 요소는 늘 삼위일체처럼 함께 작동하게 마련이라는 방법론적 성찰을 통해 성공회는 종교개혁 당시 서로 대립하는 양편을 품을 수 있는 넓은 울타리를 마련한 것이다.

웨스터호프는 성공회가 이성이라고 할 때 사물을 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즉 논리적 분석이나 추론 이상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아는 능력, 그래서 경험을 기도하면서 성찰하는 능력, 소위 ‘관상적 성찰’(contemplative reflection) 같은 것을 더 강조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그림은 이와 같다. 자기 시대의 경험과 새로 얻은 지식에 비추어 성서와 전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하는 모습. 거꾸로 성서와 전통에 비추어 자기 경험과 지식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는 모습. 이것이 성공회가 이성을 말할 때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그림이라 하겠다. 웨스터호프가 굳이 짚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 그 긴장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불안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불안의 저주를 피한 것 같은 지도자와 교회의 가르침은 각광을 받는다. 성서의 이름으로든 전통, 이성의 이름으로든 쉬운 답, 단호한 가르침은 일단 안정을 주는 것 같지만 작은 삶의 굴곡, 경험만으로도 사상누각처럼 무너진다. 성공회 정신은 늘 대화하고 식별하는 긴장관계를 기꺼이 감수하고자 한다. 그래서 가끔 성공회는 뭘 믿는지 모르겠다는 불평도 듣지만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을 갖게 하는 것도 성공회풍의 미덕이다.

흔히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음을 강조하는 개신교 영성은 인간의 이성도 불신하는 경향으로 흐른다. 그래서 은총도 인간과 무관하게 하느님의 주권적 개입으로 “저 밖에서” 다가오는 타자(他者)적인 걸로 강조한다. 반면 인간이 타락했으되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라는 로마가톨릭적 관점은 은총도 인간 내부의 덕성과 성향을 제대로 작동하도록 “내 안에서” 돕는 것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앞의 입장이 아예 고장 나 멈춰버린 시계라면 뒤의 입장은 비록 삐걱거리면서 잘 안 맞을지언정 작동은 하는 시계와 같은 차이가 있다. 성공회는 어느 입장에 더 가까울까? 웨스터호프에 따르면 후자 쪽에 가깝다. 즉 인간의 이성은 타락으로 해서 약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고장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면 하느님의 진리를 식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과 기능을 갖고 있다.

웨스터호프의 설명은 이성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무엇이기보다 은총의 도우심을 입을 때 제대로 역할 할 수 있는, 즉 은총에 의존적인 이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회는 성서를 자기 상황에 비추어 알아들으려는 이성적 해석 작업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은총의 맥락 안에서, 그것도 공동체가 검증하고 인준한 성직자(주교의 안수로 상징되는)가 이끌고 공동체가 서로의 오류와 극단성을 거르고 조율하는 공동체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한편 기도 안에서 묵상하듯, 하느님과 관상적으로 일치해서 직관적으로 파악하듯 작동하는 이성이란 머리 중심의 지성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그래서 어반 홈즈라는 성공회 신학자는 성공회가 말하는 이성이란 “신비주의적 이성”이라고까지 말했다. 웨스터호프의 “관상적 성찰”에 상응하는 말이다. 윌리엄 컨트리맨이 “성공회 영성은 시적 상상력”이라고 했듯 시적으로 파악하는 이성이기도 하다. 어느 쪽으로 봐도 메마른 이성주의(rationalism)와는 거리가 먼 것이 성공회의 이성이해다. 그러므로 “성공회는 이성적인 교회”라는 말로 성공회가 이성주의에 지배되는 분위기 교회인 듯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건 다만 왜곡된 현실일 뿐.

한편 웨스터호프는 이성주의도 이단이지만 지성은 부정하면서 감정과 정서만 쫓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도 이단이라고 말한다. 늘 포괄적인 성공회는 이성을 말할 때에도 지성과 정서, 직관을 다 포괄하면서 이해한다. 그런데 하물며 이성의 중요한 한 기능인 지성을 박탈할 리가 없다. 사실 감정적 경험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자라 해도 성공회 복음주의자들은 늘 지적인 면모를 보인다. 존 웨슬리만 해도 말을 타고 다니는 전도여행 중에도 늘 책에 코를 박고 말을 탔다고 한다. 그러니 성공회는 이성적이라면서 가슴중심의 영성을 부인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반대로 지성을 외면하는 것 역시 성공회에는 낯설다. 이것만 기억하자. 성공회는 전체성을 존중한다. 이성을 말할 때도 이성의 모든 기능(지성, 감성, 상상력 등)을 존중하여 그 중 어느 것도 제외하려고 들지 않는다.

정리하면, 성공회가 이성을 말할 때 성서나 전통과 분리해서 이해하지도 말고 더 우월한 것으로 이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교회가(개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마음을 식별하려 할 때 성령과 은총의 도우심을 입어 성서와 전통을 해석하는 역할을 수행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기도와 예배라는 은총의 맥락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열매는 성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2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성서

웨스터호프는 굳이 그리스도교는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이지 책의 종교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란 기록된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이다. 다만 우리가 이분에 대해 알고자 할 때 관련된 기록이 성서 특히 복음서에 들어 있기 때문에 성서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구분은 성서문자주의가 팽배한, 그래서 성서의 문자기록을 거의 우상처럼 그대로 신봉하는 한국의 풍토에서는 특히 기억해 둘 만하다. 성서에 기록된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면 우리는 성서와 끝없이, 늘 새롭게 대화할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인격과는 부단히 만날 수 있을 뿐 어떤 식으로든 박제(剝製)해서 손아귀에 쥘 수 없다. 성서가 우리 신앙과 진리의 근거라고 말할 때 이 긴장관계를 애써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웨스터호프는 이 대목에서 기도서 말미의 “신앙의 개요”(catechism)에서 “성서” 항목을 언급한다(우리나라의 현행 2004년 기도서는 미국 것을 그대로 옮겨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다). 왜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느냐 하면, 비록 사람이 쓴 책이지만 그들은 성령의 감화를 받았으며 하느님은 오늘날도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무척 중요하다. 성공회 기도서의 교리는 성서를 “사람이 쓴 책”으로 말한다. 비록 그들이 하느님께 감동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성서를 기록한 저자들이 시대와 문화, 상황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해석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시대와 문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해석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서의 기록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가 왕왕 성서 문자주의로 떨어지는 현실에서 성서-이성-전통이라는 삼중 잣대를 마치 삼위일체처럼 말해온 성공회는 태생부터 성서 문자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성공회의 신학자 마커스 보그가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성서의 문자-사실주의적 해석이라는 신앙의 옛 패러다임에 맞서 성서의 역사-은유-성례전적 해석을 내세우는)에 성공회는 처음부터 근접해 있다.

“성서가 곧 하느님의 계시”라고 말하는 것과 “성서에 하느님의 계시가 들어있다”고 말하는 것은 같지 않다. 계시를 정의하면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심”이다. 성서는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만나고 경험한 개인과 공동체들이 남긴 기록이다. 즉 그 기록에는 하느님의 계시가 “들어있다.” 그러나 그 문자적 기록 자체가 계시인 것은 아니다. 웨스터호프는 성서 자체가 앞선 사람들의 기록을 자기 처지에서 숙고하고 묵상하며 때론 인용하고 때론 은유적으로 해석하고 때론 수정하기도 하면서(신약은 한 마디로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재해석하고 전통적 해석을 수정하고 의미를 확대한 기록이다), 해석하고 또 해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소위 “정경”(正經)으로 확립한 성서도 그걸로 해석이 멈춘 것이 아니라 살아 흐르는 강물처럼 애초의 상황과 그 안에서 문자기록이 가졌던 의미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또 후대에 전하리라는 것이다. 웨스터호프가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성공회는 성서도 전통(성서해석의 역사로서)도 어느 때고 멈추는 바 없이 계속 살아 생동하는 걸로 보는 셈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서 성공회는 어느 해석이나 관점이 최종완결판이라고 보는 법이 드물다. 여기서 성공회 영성의 한 특성인 ‘임시성’ 혹은 ‘잠정성’(provisionality)이라는 특성이 우러나온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의 삶과 죽음, 부활에서 하느님이 결정적으로 자기계시를 하셨다고 믿는 신앙이다. 성서는 바로 그 인격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면 복음서는 성서기록 중에도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우리가 주일 성찬례를 드릴 때 다른 책은 다 앉아서 듣다가도 복음서 낭독에 이르면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주일 독서의 배열 역시 복음서를 중심으로 구약과 서신을 골라 읽는다. (구약은 그리스도 사건의 예표 즉 미리 드러냄, 신약서신은 1세기 교회가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적용함이라는 의미로. 그러다가 연중주일로 들어가서는 구약 전체를 읽으려는 구도 때문에 이 연관성이 좀 무너진다.) 성공회가 구약과 신약, 복음서를 다루는 방식이 성서기록이란 죄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가리키고 만나게 하는 데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식이다. 그 기록들이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은 아니나 그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복음서는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에 경전으로서의 지위가 남다르다.

성서의 모든 기록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직 간접으로 증언하는 기록으로 본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 성서 신구약에 부여하는 통일성이라 하겠다. 하지만 성서가 성령의 감화를 받았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인간이 쓴 책으로 본다면, 그래서 시대와 상황, 문화의 제약을 받는 인간들이 남긴 해석의 기록들이라고 본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성서란 상당한 불연속성이 존재하는 경전이다. 신약만 보더라도 메시지도 다르고 심지어 서로 충돌하는 해석도 많다. 성서 자체가 다양한 견해를 담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역사, 특정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 소위 ‘역사적 해석’이 필요한 이유도 거기 있다. 어찌 보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교회의 위계 피라미드 상위층만이 성서해석권을 독점한 이유, 그렇게 해석해서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자리한 “전통”을 더 내세웠던 이유도 성서의 이러한 쉽지 않은 성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무나 성서를 해석해서는 안 되리만치 성서는 위험한 책이다. 이에 대항해 종교개혁은 성서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끌어내렸다. 개혁의 극단적 입장은 개인이 누구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회는 여기서도 중용(어중간함이 아니라 양극을 포괄, 통합한다는 의미에서)의 입장을 취한다. 즉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맥락에서 함께 경험적으로 알아듣는 것, 그래서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고 마음으로 수용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것이다. 사실 성공회의 기도서란 성서를 예배의 맥락에서 새기려는 목적이 핵심인 책이다.

성공회도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 마찬가지로 성서를 가장 소중한 경전으로 삼는 교회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회도 성서 전통에 속한 한 부분이라는 점을 웨스터호프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가 성공회는 성서지상주의(성서 말고 다른 지식은 필요없다는)나 성서의 문자사실주의적 해석(즉 성서의 기록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성서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하느님이 문자 하나하나를 친히 쓰셨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같은 입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아마존 북스토어에 따르면 많은 독자들이 여기 밑줄을 그었다. 아마 성공회란 교회의 특성이 이 문장에서 일목요연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성공회는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서 과학의 지식을 따르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다. 성서의 창조이야기는 우주의 의미와 종국적 귀의처를 밝히는 것이지 과학적 사실을 밝히려는 기록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의 모든 율법적 명령이라도 시대적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당연하게 본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뭘 먹어라 마라 하는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 이 점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신의 말씀이라는 입장에 더 많은 어려움을 낳는다.

다양성과 상이함을 끌어안는 전체성 존중의 성공회 영성답게 성공회는 얼핏 불연속성에 가까우리만치 상이한 견해를 담고 있는 성서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전체 맥락과 무관하게 어느 부분만 확대해석하는 식(많은 이단이 그렇게 해서 등장했다)을 피한다. 그리고 적어도 그 구절이 전체를 요약하거나 반영하는 게 아니라면 한두 구절에 근거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많은 성경공부 교재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성공회 기도서는 우리가 성서를 전체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읽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읽도록, 또 개인이 홀로 읽지 않고 공동체로 모여 공동체의 검증과 승인을 거친 성직자(주교의 안수로 표현되는)가 이끄는 예배의 맥락에서 알아듣고 해석하도록 이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2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론: 성공회다움을 찾는 것이 분파적?

성공회 신자들 중에는 성공회다움을 말하면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넓은 지붕을 말하면 그만인 것을 왜 편협하게 선을 긋느냐는 것이다. 성공회, 천주교, 침례교, 순복음 할 것 없이 경계 없이 넘나들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무경계가 오히려 성공회다움 아닌가까지 말한다. 그러나 일견 가슴 넓어 보이는 이 무경계의 평등주의엔 함정이 있다. “지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적이기만 해서는 오히려 세계적일 수 없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코스모폴리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결국 미국적인 것을 소비하는 모습을 왕왕 드러내듯 무교파의 너른 가슴을 말하는 이들이 결국 다른 교단의 문화를 성공회 내에서 주창하고 소비하는 이들이 되고 만다. 성공회다움을 말하는 것이 편협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자신이 경험했거나 지향하는 어느 교단의 색깔과 문화를 성공회에 채색시키려는 문화적 첨병 구실을 부지불식간에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훈련국(이전 선교교육원)에서 발행했던 「성공회 신앙의 이해」는 존 헨리 웨스터호프(John H. Westerhoff)가 1994년에 출판했고 1998년에 개정판을 낸 A People Called Episcopalians의 일부를 번역한 책이다. 절판되어 새로 낼 필요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덜렁 번역만 하기보다는 저자와 우리 한국 성공회의 현실 사이를 질문과 대답으로 매개하며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번역한 책들의 내용이 왜 우리 현실에서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쉽게 와 닿지 않는 상황이 많음을 고려한 것이다. 애초의 번역 역시 신학생 시절 본인의 작업(마지못한)이었던바 이제 10년 넘게 사제직을 수행한 마당에 새롭게 해설하고픈 책임감도 느꼈다. 존 웨스터호프 신부는 본디 미국 UCC(the United Church of Christ)교단의 목사로 십 수 년을 일한 뒤 성공회 사제가 된 이다.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콜롬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히 교파를 넘나들며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500여 개의 글과 34개의 책을 출판한 다작가이기도 하다. 성공회의 교리교육(Catechism)과 신자양육(formation)에 관심이 많은 교육가요 사목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웨스터호프는 서문에서 교회일치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사회든 교회든 용광로(melting pot)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과일바구니(fruit basket) 모델이라는 것이다. 용광로가 이전에 무엇이든 묻지 않고 녹여냈듯이 교회들도 교파와 전통을 묻지 않고 비슷한 점은 강조해도 서로의 차이는 애써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교파를 바꾸게 되는 건 순전히 이사나 결혼 같은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지 심각하게 어느 교회의 특성과 전통을 고려한 판단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전에 자신에게 익숙했던 교단의 사고방식과 스타일, 문화를 부지불식간에 새로 속하게 된 교회에서도 찾거나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웨스터호프가 말하는 이 대목은 현실로 우리 대한성공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새롭게 성공회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성공회의 색깔을 덧입기보다는 이전 속했던 교파의 색깔과 관점으로 성공회를 “개혁”하려 들기 일쑤인 것이다. 영성신학에서도 식별을 할 때 어떤 이가 이 집단에 “속하러” 왔는지 “구하러” 왔는지 살피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다. 누가 성공회에 와서 이 교회 같지 않은 교회를 보다 자신이 경험했던 교회 비슷하게(예컨대 보다 천주교 비슷하게, 혹은 침례교 비슷하게) 만들고자만 할 뿐 성공회의 전통과 유산에 의해 자신이 양성(formation)되려고 들지는 않는다면 진지하게 “하느님이 당신을 이곳에 부르신 것이 맞는지” 물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웨스터호프의 책이 90년대 중반에 쓰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과 약 15년 정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대략적으로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어떤 문화적 흐름이나 강조점이 그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지도층들이 미국 등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되어 영향을 주기까지의 시간차가 그 정도인 탓이리라. 그렇게 볼 때 일치와 연합을 용광로 이미지에서 과일바구니 이미지로 바뀐다는 흐름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고방식의 변화와도 맞아떨어진다. 십 수 년 전부터 미국의 교회들은 교파간의 개성과 전통을 묵살하는 것이 오류며 혼란과 정체감 상실 속에 오로지 경쟁만 남아 오히려 교회일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듯이 한국에서도 한 박자 늦게 비슷한 각성이 일고 있는 것이다. 교회일치운동의 미래는 각 교파가 고유한 색깔과 정체성을 견지한 채로 더불어 아름다운 과일바구니를 이루듯 하는 데 있다. 이때 사과는 사과다워야 하고 포도는 포도다워야 한다. “사과도 포도도 아닌 것이”는 그 과일바구니의 미와 완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과일바구니 모델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사실은 초대교회가 이미 그렇게 다양했고 지금도 한 교단을 들여다보면 그 모델이 엿보인다. 웨스터호프가 지적하고 있듯이 천주교도 단색이 아니라 예수회, 베네딕트, 프란시스, 갈멜 등 다양한 색깔의 영성이 제 고유색을 드러내면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성공회 역시 복음주의, 앵글로-가톨릭, 자유주의 및 광교회파가 제 색깔을 있는 대로 내면서 하나의 과일바구니 혹은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속한 전통의 유산과 고유색을 좀 더 의식화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한 교회의 일치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전 세계 교회의 일치에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얘기일 따름이다.

웨스터호프는 서문 첫머리에서 미국 성공회 기도서의 기도문을 인용했거니와 나는 서문 말미에 우리 기도서 “교회일치” 기도문을 인용한다: “전능하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수난하시기 전에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신 것 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모든 지체들이 성령께서 이루시는 화해와 일치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2004년 기도서 107쪽) 그동안 획일적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사회의 경험 탓인지 우리는 하나 됨을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차이가 없이 똑같아지는 것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과일바구니를 생각하면 사과는 사과답고 수박은 수박 같아야 오히려 전체 과일바구니에 기여하는 것이다. 성공회다움을 얘기하는 것은 분파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실질적으로 에큐메니칼할 수 있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셋으로 구별되나 하나이듯 성공회는 성공회답게 구별될 수 있을 때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다른 교회들과 상통할 수 있다. 성공회는 출발 자체가 영국의 교회는 영국다워야 진정하게 가톨릭교회의 일원이 되는 거라는 자의식을 가졌다. 즉 가장 지역적이 됨으로써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의 성공회도 가장 성공회다울 때 그리스도교의 하나 됨에 기여할 수 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2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목: “성공회의 전통”
대성당 사순절 강좌  /  이주엽 신부(분당교회. 성공회대 영성신학 강의)
-------------------------------------------- 


사순절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성탄과 부활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사순입니다. 성탄 때 우리는 “성탄 축하합니다” 하는 인사를 나눕니다. 부활 때도 “부활 축하합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무슨 기념일을 축하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하느님의 빛과 생명을 내적으로 깨달았음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다만 성탄이 씨앗이라면 부활은 나무와 같은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씨앗이 싹이 터서는 온갖 비바람과 계절을 견디면서 큰 나무로 모습을 드러내듯 성탄은 사순을 통과하면서 부활생명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전례의 절기는 바로 그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탄의 빛, 성탄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은 존재선언입니다. 그렇게 우리도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맘에 드는 존재로 자각하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참 자기임을 깨닫는 것이 성탄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의식이 탄생했으니까요. 사순의 의미는 여기서 드러납니다. 사순은 광야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거기서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유혹의 본질이란 바로 “당신이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즉 세례의 존재선언을 흔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는 유혹의 음성을 줄곧 만납니다. 그런 유혹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각성하고 함께 견뎌내는 것이 사순의 여정입니다. 그래야 우리 안의 하느님의 생명 즉 영성은 씨앗에서 나무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 사순의 여정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로서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디 복음서란 한 신앙공동체가 자기네가 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한 기록입니다. 예컨대 마태오복음이라면 마태오의 공동체가 예수님 제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한 기록인 것입니다. 거기엔 70년 유다전쟁으로 성전으로 무너지고 난 다음 어떻게 가는 것이 하느님의 백성을 재건하는 길인가 바리사이파와 경쟁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도전과 희망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한국에서 이 작디작은 한 신앙공동체로서 대한성공회가 그리스도와 사순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 한 공동체로서 광야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 그 의미를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순절은 고독과 결핍,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광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광야라는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고독과 결핍이라는 단어도 무언가 우리 가슴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한 줌도 안 되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우리네 작은 교회는 돈도 자원도 인물도 좌우간 많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외롭고 결핍된 교단 같아 보입니다. 우리 안에서도 교단의 미래를 염려하는 많은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오늘 강의 제목이 “성공회의 전통”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한 목소리는 “성공회의 전통이란 구태의연하고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니 빨리 다른 교단처럼 되자”고 합니다. 또 한 목소리는 “성공회의 전통이란 것을 밖에서 듣고 그것 때문에 왔는데 와서 보니 그 실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한 공동체로서 우리 집단의식은 유혹의 음성을 걸려듭니다. “너희가 정말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맞아?” 하고 말입니다. 자기 정체성 혼란에 빠진 사람이 목적의식과 활력을 드러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 교단으로서 우리도 그런 혼란과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성공회의 전통이란 무엇입니까? 19세기 말에 전해진 선교사들의 유산인가요? 우리가 지난 한 세기 이상을 경험해 온 성공회가 성공회의 전통인가요? 도대체 성공회가 말하는 성서-전통-이성이라는 삼각 축은 무엇이고 그 안에서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클래식 앵글리카니즘 즉 고전적 성공회의 대답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우선 성공회개혁의 첫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크랜머(1489-1556)는 대륙의 종교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모든 진리는 성서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교황이 아니라 왕이 국가와 교회의 수장이 되는 게 맞다고 보았습니다. 성서에 교황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지만 경건한 왕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크랜머는 사실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영국 땅의 교회가 보다 순수하게 성서적이고 초대교회적인 모습을 회복하길 원했습니다. 여기에 성서-전통-이성이라는 성공회풍의 맹아가 들어 있습니다.  

존 쥬얼(1522-1571) 얘기를 들어보지요. 16세기의 경우 어느 세력이든 진리의 출처로서 성서의 권위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이고 누가 그 뜻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놓고는 크게 둘로 입장이 갈렸습니다. 하나는 로마교회의 입장으로 교회가 성서해석의 권한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때 교회란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성직자계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의 입장으로 개별 그리스도인과 공동체가 성령의 안내를 따라 성서를 해석할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로마교회는 1545년 이래 트렌트 공의회의 이름으로 산발적으로 모여 영국교회를 줄곧 이전에 없던 짓을 하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1559년 11월 26일, 영국에 돌아와 있던 존 쥬얼은 “도전하는 설교”(Challenge Sermon)라는 제목으로 로마교회를 향한 반격의 포문을 엽니다. 이 설교에서 쥬얼은 로마교회의 오류 스무 댓가지를 열거합니다. 대개는 미사와 관련하여 사제가 사적인 미사를 집전한다든지 평신도에게는 포도주는 주지 않고 빵만 준다든지 성체거양을 우상숭배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문제를 꼬집습니다만, 무엇보다 교황이 보편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주장, 평신도는 성서를 읽지 못하게 하는 것, 평신도가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 등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이 성서에도, 아직 분열을 경험하지 않았던 초기 6세기 동안 공의회나 초대교부들 저술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니 만약 근거를 댈 수 있거든 대 보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그러니 정작 “이전에 없던 짓을 하는 이단”은 로마교회가 아니냐고 공격한 것입니다. 

“변론”에서 쥬얼은 역사적 신경에 근거해서 영국교회를 옹호했고 삼성직(주교-사제-부제)에 대해 언급할 때도 성서 어디에도 한 주교가 다른 주교들 위에 군림해도 좋다는 증거가 없으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일 뿐 일개 피조물이 “귀에 달콤한 말을 노래하는 기생충들로 둘러싸이지 않는 한” 감히 자신을 그 위치에 둘 수는 없다고 공격합니다. 이어 사제의 결혼, 성찬례를 둘러싼 교리 등 성공회의 입장을 변론하면서 영국교회는 초대교회의 관습을 회복한 것이지 로마의 주장처럼 이전에 없던 것을 교회에 들인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로마교회야말로 성서와 초대교회에 없던 짓을 하는 교회라고 꼬집습니다. 역시 초대교회의 관습에 근거하여 영국의 교회는 지역의 시노드를 통해 스스로를 개혁할 권한이 있다고 성공회 개혁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일축합니다.  

대륙의 종교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존 쥬얼 역시 성서가 교회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믿을지 궁극적 출처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의 권한 역시 교황이나 주교들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의미가 늘 자명한 것은 아니라고, 따라서 해석이 필요하다고 짚는 점에서 극단적 종교개혁가들과 쥬얼은 차이가 있습니다. 쥬얼이 자꾸 초대교회 교부들이나 공의회의 해석에 기대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즉 어떤 해석이 분명치 않을 땐 그리스도와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해석을 보라는 것이지요. 그에게 중세교회는 “온갖 잡다한 무법”을 교회에 덧붙인 불순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믿을지 논란을 벌일 때는 성서와 더불어 초대교회가 성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성공회 사상가들은 늘 존 쥬얼이 명시한 이 논거 위에 자기 주장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존 쥬얼 이전의 토마스 크랜머도 성서와 초대교회 및 이성을 교회가 진리를 판단하는데 기반이라고 했지만 이를 원리적으로 명시한 인물은 존 쥬얼입니다. 한 세대 후에 활약할 성공회의 대표적 사상가 리처드 후커 역시 존 쥬얼 밑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오랜 교회나 대성당에는 쥬얼 당시의 관습을 따라 지금도 그의 변론을 설교강단에 줄로 매어둔 곳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로마 가톨릭)을 떠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나 사도들을 떠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네 교회와 우리 교회를 비교해보라 하십시오. 그러면 자신들이야말로 부끄럽게도 사도들로부터 멀리 떠났음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가 떠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변론」에서) 

훗날 존 쥬얼에게서 신학을 배운 리차드 후커(1554-1600)도 그렇고 랜슬럿 앤드류스(1555-1626) 등도 모두 ‘전통’을 처음 1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왜 성공회의 사상가, 영성가들은 초대교회를 중시했느냐 하면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어느 시기와 비교해 봐도 하나 됨의 응집력, 일치성이 돋보인 시기입니다. 교회 최초의 분열을 보통 6세기로 말합니다. 서방의 로마교회가 톨레도 3차 공의회에서 ‘필리오케’ 즉 “성자로부터”라는 구절을 니케아신경에 임의로 삽입함으로써 동방 쪽 교회들의 반발을 삽니다. 그러므로 6세기 이전, 처음의 5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일체감이 갖고 있는, 소위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퀄리티를 지닌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 가톨릭 즉 “언제 어디서나 일치하는” 이전의 “공번되다”는 표현 속에 담긴 의미입니다. 즉 초대교회는 성서해석과 신앙에 있어 가톨릭성이 존재했던 시기라는 것이고 성공회가 ‘전통’이라고 말할 때는 바로 이 시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전통-이성은 삼위일체처럼 ‘셋이나 하나’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성서가 우리 신앙의 최고 권위이나 성서는 의미가 자명한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상황과 경험에 맞게 의미를 발견하려면 이성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데 이때 해석과 실천에 있어 어느 때보다 응집성이 있었던 초대교회의 전통과 대화 나누면서 한다는 이 태도, 기풍, 에토스가 바로 성공회적 태도요 성서-이성-전통이라는 삼각 축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현실은 성서를 강조하는 쪽은 거의 성서 문자사실주의적 해석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근본주의와 “성공회는 이성적인 교회야” 하면서 무미건조한 이신론적 신앙을 얘기하는 듯한 입장과 “전통이란 영국 선교사들이 전해 준, 그래서 우리 조부모, 부모님 세대가 경험한 그 성공회”라는 입장이 각각 성서-이성-전통의 한 단어씩을 파편처럼 떼어들고 독백이 난무하듯 하는 현실로 보입니다. 사순절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침묵해 볼 수는 없는지 싶습니다. 자기주장과 고집, 입장의 소리를 접고 침묵 가운데 마음의 시선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돌려보면 “내가 왜 너희를 고독과 결핍의 광야에 보전해 두었는지 뜻이 있단다” 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이 올 때마다 거기 휘둘리며 콩 튀듯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유혹이 유혹인 줄 아시고 거기 응하길 조용히 거절하셨지요. 성공회라는 한 신앙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인 줄 확인하는 방법을 우리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데서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내가 나의 참 자기를 찾듯 성공회는 성공회다워야 할 것이고 이때 성공회가 말하는 전통이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임종호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80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간다는 오늘날
8백만의 성공회 신자가 있는 나라로서 전 세계 성공회 신자 열 명 중 한 사람은 우간다인입니다. 이 우간다, 나아가 전 세계 복음주의자와 성령운동파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도자가 페스토 키벤제레입니다. 우간다에 성공회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간 것은 1877년의 일입니다. 들어가자마자 신앙의 박해를 받아 1885년에는 세 명의 소년(11세가 최연소, 15세가 최연장)이 화형을 당하는 것을 필두로 제임스 해닝턴(James Hannington) 주교도 순교합니다. 이 세 소년이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본 어른 40여 명이 그날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간다의 첫 그리스도인 순교자로서 이 세 소년의 기념비가 캄팔라 근교에 있다고 합니다. 1887년 우간다 선교 10주년에는 100여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순교자들 대다수가 세 소년의 마을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순교는 그야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바꿀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증언입니다. 한국의 초기 순교자들처럼 이 우간다의 순교자들도 막 믿기 시작한 순수한 이들로 신학적 지식도 거의 없고 성경을 겨우 읽을 줄 아는 정도였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희한하게도 20세기 초는 여러 지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한국에서도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거니와 그에 앞서 1904년 영국의 웨일스 부흥, 1905년 인도 라마바이의 묵티 부흥,1906년 미국 아주사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1906-7년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페스토 키벤제레에게 영향을 준 신앙운동은 19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발로콜레(Balokole. “구원받은 자라는 뜻)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동아프리카의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르완다, 부룬디 등지에서 일어나서 동아프리카 부흥운동으로도 알려집니다. 18, 19세기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맥을 잇는 운동이면서도 동시에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주도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근본주의 운동이라 할 수 있고 매우 엄한 청교도적 윤리로 아프리카의 문화적 가치를 혁신했기 때문에 다분히 성공회 영성의 한 맥이라 할 수 있는 청교도 유산의 재등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성공회는 일곱 빛깔 무지개 교회라는 강연과 글에서 성공회 영성에는 고전적-가톨릭-청교도-복음주의-성령운동-앵글로가톨릭-자유주의라는 단층이 통합-혼재되어 있다는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여러 아내를 거느릴 뿐만 아니라 아내를 무슨 노예처럼 다루는 아프리카 문화에서 키벤제레는 동등한 배우자 관계를 설교하고 아내에게 잘못을 사과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재우는 여성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여하튼 성공회 복음주의의 아프리카 선교 성공, 동아프리카 부흥운동의 특징 등은 오늘날 성공회의 수적 다수라 할 아프리카 성공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런데 발로콜레 운동의 출발점은 1929922일 흑인 그리스도인 지도자 시므온 은시밤비(Simeon Nsibambi)가 백인 의사 조 처지(Joe Church)를 만나 함께 성령충만을 기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회심과 금주, 정직함, 엄격한 윤리와 용서를 강조하는 이 운동, 청교도 윤리와 복음주의 영성이 20세기 초 성령운동의 발흥을 타고 등장하는 이 운동은 주로 성공회 교회들을 중심으로 번져가지만 다른 교파들에게도 무척 큰 영향을 줍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세계성공회 내의 갈등은 이 청교도-복음주의-성령운동으로 이어지는 영성과 가톨릭-앵글로가톨릭-자유주의 진영의 영성과 빚는 갈등, 엘리자베스 1세가 성공회로 통합하려고 애쓴 청교도와 가톨릭의 후예들이 분열하는 걸로도 비칩니다. 이 갈등은 좀 더 소규모, 국지적으로 한 교구, 교회 내에서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는 출발점부터가 이 갈등과 긴장의 양극관계를 끌어안는 것이었는데 구심과 균형을 잃으면 이 양극이 분열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교회가 또한 성공회인 것 같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처음부터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갈 용의를 갖는 것이 성공회 영성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페스토 키벤제레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그는 열 살 때 세례를 받긴 했지만 전혀 신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고 전도자가 되는 건 더구나 꿈도 꾸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본인 표현으로 심각한 죄인으로 살며 하느님과 멀어지려 애쓰는삶을 살았습니다. 미션스쿨의 교사다보니 마지못해 주일에 교회는 나갔지만 동아프리카 부흥운동의 영성에 절은 설교자와 신자들은 늘 회심체험과 간증을 말합니다. 키벤제레는 이런 신자들을 광신자라 부르며 싫어했습니다. 훗날 그는 자기 인생이 머리는 크고 밑은 가느다란 팽이 같아서 팽이가 계속 돌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듯 일하고 놀고-먹고-마시고-자는 쳇바퀴를 반복하는 인생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194110월의 어느 날 늘 그렇듯 교회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분위기가 불편하면 내빼려고) 조카가 이틀 전 주님께서 자기에게 삼촌이 주님께 돌아올 것이라 하셨다며 회중 앞에 나와 간증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황한 키벤제레는 화가 나서 교회를 나와 버립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러 가는데 친구인 동료교사가 따라와서 세 시간 전에 나는 주님과 만났다네하면서 자신이 잘못한 세 가지를 용서해달라고 청합니다. 키벤제레는 집으로 돌아와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제가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니라면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마치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눈앞에 서계신 체험을 하며 키벤제레는 자기 죄가 그분을 못 박았음을 깨닫습니다.

회심한 이후에도 키벤제레는 교사생활을 계속하지만 완전히 다른 생활을 보입니다. 그리고 성서 이야기를 열정과 유머를 뒤섞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는 재능이 있어 평신도 설교자로도 이름을 얻습니다. 그리고 자기 죄와 잘못, 약점에 대해서도 솔직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는 가정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를 조직하는 일, 가끔 부흥운동 내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화해케 하는 일, 그리고 너무 율법적으로 남을 정죄하는 사람들을 자기 경험을 들어 겸손히 달래는 일에 열심을 냅니다. 평신도로서 자기 사역을 그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키벤제레는 1961년부터는 풀타임으로 전도사역에 헌신하려고 교사직을 그만두고 남아공의 백인사역자 마이클 캐시디(Michael Cassidy)와 동역합니다. 인종과 국가, 교파간의 장벽을 넘어 함께 사역하고 전도하는 그런 운동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1967년 성공회 성직자로 서품을 받은 이유는 성공회 교회들에 이 부훙운동의 불길을 전하기 용이하리란 매우 실용적인 판단에서였습니다. 훗날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빌리 그래함이나 월드비전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초대를 받지만 거절하고 성공회 성직자로서 부흥운동을 계속합니다.

1971년 회교신자인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일으켜 오보테 정권을 전복시켰을 때 처음에는 신앙의 자유와 국민선거를 약속했습니다. 수도 캄팔라에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춤을 추며 기뻐했지만 1972년 탄자니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이디 아민은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비록 탄자니아군은 몰아냈지만 아민은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잔인한 독재자가 되어갑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면서 탄압하고 지도자들을 공개처형합니다. 1977년 아민은 성공회 주교들을 불러 모읍니다. 1972년부터 키게지(Kigezi)의 주교가 된 키벤제레는 이 모임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 모임이 끝나고 모든 주교들이 귀가했는데 대주교 자나니 르움(Janani Luwum)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음날 아민 정부는 대주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사를 냅니다. 하지만 사진은 2주 전의 어느 교통사고 사진이었습니다. 캄팔라 성공회대성당에서는 시신도 없는 대주교의 장례식이 치러지는데 정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45백 명의 신자들이 운집합니다. 그러나 요주의인물로 정부의 감시를 받던 키벤제레는 그 장례식에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권유로 장례식 당일에 고산지대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국경을 넘어 르완다로 탈출한 것입니다.

마지못해 우간다를 탈출한 그날부터 이디 아민이 쿠데타로 축출되는 1979년까지의 2년 동안 키벤제레는 동아프리카 부흥운동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우간다 성공회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합니다. 그래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원하면 타국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아민이 물러나자 다른 피신했던 성공회 주교들과 엉망이 된 우간다로 돌아옵니다. 그때부터 생을 마감하는 1988년까지 9년 동안 화해운동을 벌이며 고국 재건에 헌신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영적해방의 심장은 예수님,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그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자유는 여러분과 나를 인간이게 하는 다른 면들을 무시하고 영적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나의 전체 즉 한 인간으로서 나의 권리, 존엄성, 소유, 안전, 자유를 다 망라하면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사회적 해방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큰 역동이 필요하니 곧 그리스도를 설교해야만 참된 자유는 일어납니다.” 대단히 보수적이고 심지어 근본주의적이라 해야 할 동아프리카 부흥운동의 기수에게서조차 성공회 영성의 성육신적 특성, 전인적 선교이해는 엿보입니다. 영적차원에만 관심을 갖는 보수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외면, 거꾸로 그 차원의 행동이 전부라는 행동주의의 병폐가 이 성공회 전도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점이 새삼스럽습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79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매들린 렝글은 아동 및 청소년 대상 소설로 우선 유명한 미국의 여류작가입니다. A Wrinkle in Time이라는 소설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Newbery Medal)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렝글은 선뜻 아동문학가라는 딱지를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판타지나 공상과학 분야 서가에도 렝글의 책이 꽂혀 있고 자서전, , 일반소설 분야에서도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에 관한 책들도 썼습니다. 이렇게 쓴 책이 50여 권에 달하는 다작(多作) 작가가 매들린 렝글입니다. 희한하게도 렝글의 선배격인 도로시 세어즈나 C S 루이스나 넓은 분야에 걸쳐 글을 썼다는 특징을 공유하며 당연한 얘기겠지만 독자층도 다양해서 아동과 성인을 망라하는 것을 물론 신자와 비신자들이 다 읽는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또한 무언가 인간경험의 여러 면을 포괄하고 존중하는 성공회 영성을 드러내는 특성이라 여겨집니다. 흔히 성공회는 큰 하느님’(Big God)을 믿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어느 교부의 말처럼 하느님의 원은 어디나 중심이고-즉 중심과 변두리로 나뉘지 않고-그분께는 먼 곳이 없다는 식이어서 인간 삶의 어느 구석이든 하느님 안에 있는 걸로 보려는 너른 시야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가 그러하듯 매들린 렝글의 작품도 어느 분야의 것을 보든 그리스도교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지요.

무엇보다 렝글은 이야기꾼입니다. 어떤 것을 명제로 진술하는 것보다 이야기로 담아낼 때 훨씬 풍성하고 다차원적이 됩니다. 명제적 교리로 복음을 말하는 현대교회와는 달리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명제는 머리만 자극하지만 이야기는 우리 존재의 여러 차원에 접속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의미를 열 사람에게 물으면 열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각자가 나름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고 모두가 옳습니다. 이야기는 듣는 이의 상상을 자극해서 의미는 듣는 이가 이야기와 하나가 되는 데서 우러나옵니다. 렝글은 하느님도 진리도 이렇게 모호한 듯해도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는 것이 훨씬 참되며 성서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시나 이야기처럼 모호하고 미묘하지만 의미의 다차원, 경험의 전체성을 포괄하는 접근이 성공회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 자체도 단정적인 교리는 별로 없고 하느님이 이렇게 하셨다 혹은 저렇게 하셨다 하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예수님도 자기 가르침을 교리가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내셨습니다.

렝글은 부유한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납니다. 몇 번이나 유산한 끝에 태어난 딸이라 렝글은 부모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부유층 부모는 이미 나름대로의 활동과 생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렝글은 상대적으로 외롭게 자랍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플로리다로 갔다가 외국에서도 오래 생활하는 등 가족의 이동경로를 따라 지내면서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렝글은 책을 벗 삼아 지냅니다. 그렇게 늘 책을 읽는 한편으로 글도 이것저것 써보는데 렝글이 처음 이야기를 지어 쓴 것이 다섯 살 때고 일기는 여덟 살 때부터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줍고 뻣뻣해서 어떤 선생들은 렝글이 멍청하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렝글의 양육방식을 놓고 늘 다툰 부모의 영향 때문에 앉지도 서지도 못한 엉거주춤함이 어린 렝글에게는 있었는가 봅니다.

여하튼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한 렝글은 뉴욕에 정착해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거기서 첫 책 The Small Rain을 내고 그 다음해 배우 휴 프랭클린(Hugh franklin)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배우 일이 끊기자 부부는 코네티컷 북서부의 2백 년 된 농가를 구입해 거기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편 렝글을 글 쓰는 일을 계속합니다. 여기서 딸 조세핀도 출생하고 몇 년 뒤엔 친구 부부가 사고로 죽자 그 딸을 입양해서 키웁니다. 이곳에서의 가족생활이 외롭게 자란 매들리 렝글에게는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렝글의 부모는 딸에게 원하는 뭐든지 하라고 장려하긴 했지만 문제는 늘 렝글 혼자 씨름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렝글의 글에선 늘 가족이 중요합니다. 렝글 자신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글쓰기도 접고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려 애썼습니다. 후일 여성주의자들이 렝글도 자신들과 같은 부류로 쳤지만 렝글은 남자도 전업주부도 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드러내서 말하지 않아도 렝글의 글에서 이런 면은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렝글 자신은 아동문학가란 호칭에 저항감을 표시했지만 그래도 렝글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건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소설이었습니다. 특히 A Wrinkle in Time은 어른들에게도 인기를 쓴 작품으로서 건강하게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시공을 넘나들면서 선과 악 사이의 우주전쟁에 관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초자연적 실재를 믿는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렝글은 과연 여러 초자연적 존재들을 이런 작품 속에 담습니다. 그런가 하면 당대에 막 등장하기 시작한 아인슈타인이나 플랑크의 새로운 물리학을 아동서적에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렝글이 여러 분야에 이야기를 쏟아낼 때 늘 성서가 자원의 광맥 구실을 합니다. 거기에 미드라시(구약에 대한 고대 유다인들의 주해서)까지 곁들이는 한편으로 현대과학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렝글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리저리 비벼 옛 이야기들이 현대판으로 새 생명을 얻고 다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렝글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성서적 메시지를 뜻밖의 장면과 상황에서 말하곤 합니다.

렝글은 성서가 깊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문자적 사실을 진술하는 책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성서의 이야기, 드라마, 시를 사실의 역사로 혼동하는 것은 사탄의 가장 교묘한 책략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문자주의는 하느님을 영 잘못 이해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결국 문자 자체를 하느님으로 삼는 우상숭배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시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성공회 영성은 이렇듯 성서 문자주의와는 늘 긴장관계를 이룹니다. 성공회가 성서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독사를 쥐고 독약을 삼키는 식의 열광적 신앙을 낯설어하는 이유, 성서도 성서지만 의미는 늘 성서를 읽는 사람의 경험과 만나는 맥락에서 다양하게 결정된다는 태도, 그래서 성공회의 늘 깊이 들여다보려는 듯한기풍은 성서를 이야기와 은유로 읽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우러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자 너머의 하느님과 제대로 관계 맺는 길은 시와 상징, 신화와 이야기를 통해서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공회 영성가들에 유독 시인도 많고 이야기꾼도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모호함이나 신학적으로 결론을 선뜻 내리지 않는 태도를 흑백논리의 강한 고백적 신앙에 익숙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낯설어합니다. 물론 작가와 이야기꾼으로서 매들린 렝글에게 조목조목을 논리적으로 종결짓는 조직신학적 내용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호함과 결론유보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관계에 본질적이라 보았던 렝글의 이해는 그대로 성공회풍이라 할 수 있으며 성공회가 단일한 입장의 조직신학 혹은 교의신학을 잘 내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불안한 세상에서 유목민처럼 떠도는 현대인에게 불안을 벗어난 듯이 보이는 강한 주장과 교리는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아마도 근자에 근본주의의 부흥은 그런 각도에서 설명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날 선 교리와 배타성에 영혼을 베인 사람들은 렝글이 보여준 것과 같은 성공회 영성의 너른 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79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성공회의 영성가들 하면 대개 과거 영국의 성직자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99퍼센트 이상이 평신도이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여성입니다. 성공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게다가 오늘날 세계성공회 신자의 절반 이상은 아프리카 흑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이 아닌 미국의 평신도 여성이자 흑인인 버너 도지어는 20세기 이후의 성공회를 생각하기 좋은 이미지가 아닐까 합니다. 도지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평생 살면서 공립학교 교육에 이바지한 교사요 행정가입니다. 한편 성서연구와 성서세미나를 이끈 평신도 성서신학자이기도 합니다. 버너 도지어는 파킨슨씨병으로 20069188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워싱턴에서만 3대째 살아온 토박이 집안의 딸로서 도지어의 어머니는 경건한 침례교인이었고 아버지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회의주의자에 불가지론자로서 늘 교회의 위선을 비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양친부모에게 도지어는 경건함과 의심을 서슴지 않는 마음을 둘 다 물려받았습니다. 도지어 자신 후일 집안의 분위기를 멋진 혼합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 켄터베리의 안셀무스의 모토였듯이 성공회는 이성과 신앙의 통합을 늘 꾀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지어의 집안 분위기 자체가 다분히 성공회적이었다 할 것입니다. 도지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의 하워드대학(흑인 하버드대학이라 불리는 흑인 주류의 명문)에서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설교를 듣곤 했습니다. 도지어는 후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예수의 신성을 의문시하는 설교를 처음 들은 곳도 거기고 그러고도 채플이 무너지지 않더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곳도 거기였다. 아버지와 나는 그 설교들을 그냥 들이 마셔버렸다.”

도지어가 성서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되어 성서를 성탄선물로 받았을 때부터입니다. 당시 도지어는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이나 통독을 해보지만 별로 와 닿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도지어는 후일 성서란 책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부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평신도 설교자이기도 했던 도지어는 한 설교에서 성서는 대충 봐서는 아주 잘못 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체를 깊이 봐야 합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자신 성경공부와 세미나를 이끄는 사람이 된 데는 이런 경험과 이해가 작용했다고 봐야겠지요. 평신도가 자기 가정과 일터에서 사역자로 살아가려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는데 이 정체성이란 성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도지어가 볼 때 성서를 모르면서 이 세상에서 힘 있게 하느님 나라의 사목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룹이 성경공부를 할 때 도지어가 제시한 방식은 이러합니다. 여러 번역본과 주석을 준비해서 세 단계로 공부하는데 (1) 본문이 말하는 주요단어와 개념의 의미를 이해할 것, (2) 본문이 최초의 청중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탐구할 것 즉 그들이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이 본문이 그들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었을지 이해할 것, (3) 본문이 오늘 자신과 교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묵상할 것. 이때 (1)(2)의 단계에서는 정확한 이해를 추구해야 하겠지만 (3)의 단계에서는 그룹 구성원 각자에게 와 닿는 의미를 중시하고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하도록 조언합니다.

도지어는 성서를 법규집도 아니고 매일 매순간의 정답을 말해주는 책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성서를 그런 책이라면 거기서 나오는 신앙은 역동적이지 못한 죽은 게 됩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성 있는 인물들로서 자기 인생과 세상에 하느님이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나름으로 이해하고 거기 응답했던 사람들입니다. 거기엔 깊이 숙고하고 때론 잘못을 통해 성장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서의 문자적 기록을 절대화 하는 것은 성서문자를 신으로 삼는 우상숭배라고 도지어는 보았습니다. 성서를 이렇게 볼 때 신앙은 본질적으로 모호한 데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실재이듯 우리가 이해한대로의 신앙은 원래 제한되고 모호합니다. 그래서 도지어는 내가 오늘 아는 것보다 내일은 더 많이, 다르게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상상도 못했던 내일의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열라고 합니다.

도지어는 평신도 성서학자로서 성경공부 세미나를 이끄는 한편으로 평생 평신도의 권한과 사목을 대변해 온 인물입니다. 신자 혼자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신자를 준비시키기(Equipping the Saints)라든지 평신도의 권한(The Authority of the Laity), 형제자매들: 성서적 공동체를 회복하기(Sisters and Brothers: Reclaiming a Biblical Idea of Community) 등이 다 미국성공회가 귀하게 여기는 도지어의 저작들입니다. 도지어 자신이 제일 좋아한 책은 하느님의 꿈: 돌아오라는 부르심(The Dream of God: A Call to Return)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도지어는 종교지도자들이 영성만 말하고 사회정의를 외면하는 모습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신자들도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만 삼지 삶과 실천으로 따르지는 않는다고 꼬집습니다.

버지니아 신학교의 학장 마사 혼(Martha Horne)은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도지어는 평신도 사목이 무엇인지 일깨운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말과 글로써 평신도들이 세례 때 받은 권한을 갖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신앙을 따라 살라고 일깨운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도지어 자신 공립학교 교육에 이바지한 32년 세월을 접고 교회에서 성경공부 그룹을 이끌자 어떤 사람들이 도지어 여사가 사역을 시작했다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도지어는 얼른 아니, 사역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라고 받아쳤습니다. 평신도로서 자기 사목은 이전의 교육가로서 뿐만 아니라 성경공부 인도자의 역할로 계속되고 있을 뿐이라는 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때까지 일반적인 인식은 사목이란 그저 성직자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일반신자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지내면 그만이고 사목이니 사역이니 하는 것도 그저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거나 주일학교 교사가 되는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도지어에게 사목이란 모든세례 받은 신자들이 하는 것이며 대개는 교회 밖에서 하는 무엇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있은 일이 월요일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주일의 활동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도지어는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그 좋은 목소리를 성서나 셰익스피어의 운율에 젖은 버릇으로 맛깔나게 성서세미나를 했으니 얼마나 반응이 좋았겠습니까! 그런 목소리로 도지어는 평신도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하는 일이 곧 사목이 되어야 하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다만 연료를 재충전하는 것이라 외쳤던 것입니다.

평신도의 권한에서 도지어는 교회의 역사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이어야 할 교회가 제도요 기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느님의 꿈을 함께 꾸면서 신앙을 부정하는 이 세상에서 위협을 무릅쓰고 살게 하셨다. 그런데 교회가 기구가 되면서 기구가 늘 그렇듯 자체유지를 목적으로 삼는 기구로 전락했고 신앙의 모호함과 모험을 확실한 규범과 도그마, 완고한 조직으로 대체하고 만다...” 요즘은 성공회뿐만 아니라 많은 교파들이 모든 세례 받은 신자, 하느님의 백성의 선교라는 성서의 본래적인 개념,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이래 그리스도교 역사의 더 긴 세월동안 상실했던 이해를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설사의 치료가 변비가 아니듯 성직의 전횡을 성직의 무력화로 대응하는 것이 평신도의 권한회복은 아닙니다. 모두가 제3의 방향, 하느님의 백성의 선교로 어떻게 나아갈지 멈추어 생각해 봅니다. (이주엽 신부)


Posted by francischo yellowsub

트랙백 주소 : http://skhbundang.or.kr/trackback/79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