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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산에서 나와 봐야 산이 보입니다

by 푸드라이터 2013. 2. 3.

오늘의 말씀 : 산에서 나와 봐야 산이 보입니다

2013년 2월 3일 연중 4주일 설교 말씀 / 루가복음 4장 21절 ~ 30절

설교 : 장기용 요한 신부님 


지구 밖 우주를 처음 여행한 사람이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지구가 푸른 별이라고... 지구가 푸른별이라는 것을 우주밖으로 나가서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산속에서만 있으면 자기가 머무는 산이 어찌 생겼는지 모릅니다. 산에서 나와 봐야 산이 보이는 법입니다.


자기가 머물고 있는 곳에 안일하게 안주해서 그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본 세계만이 전부라고 믿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민이나 희망도 필요 없습니다. 플라톤은 이것을 보고 동굴의 우상이라 했습니다. 동굴에만 갇혀 지내던사람이 세상밖에 다녀온 사람이 하늘과 새와 나무와 냇물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으려는 현상을 두고 한말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예수, 요셉의 가족으로서의 예수는 보았지만 메시아로서의 예수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어도 보지 못하고 들려주어도 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께서 병 고치시는 것을 보고 ‘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사건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글쎄요. 몸이 불편하던 사람이 병이 나아서 더 탐욕적이고 더 많은 죄를 짓게 된다면 병이 낫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 병고침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보았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신기한 능력으로서 마술을 보았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고행할 때 사탄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을 실현해 보여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기적은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처음엔 ‘거 참 말 잘한다!’ ‘속이 후련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있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미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가까이 있는 사람 또는 물건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물과 공기는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 소중함을 잊고 함부로 다룰 때가 많습니다. 금은 없어도 살지만 물과 공기가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음에도 말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잊고서 멀리 있는 사람의 영광스러운 것만을 바라 볼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이러한 심리현상이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속으로 궁시렁 거렸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랑 별반 차이도 없는 주제에.... 뭔 잘난 척인지...’


고정관념 또는 편견에 빠진 사람들에게 진실을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절대화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근거도 없이 미워하거나 배척하는 경향이 있을 때는 차라리 대화나 소통을 포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루가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의 편협성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복음을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편협한 혈통주의나 율법주의에 빠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강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차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벼랑 끝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 했습니다. 모욕을 당했다는 것일까요?


신앙인에게 관습과 타성은 가장 경계해야 할 내부의 적입니다. 이들은 소리도 없이 표시도 없이 우리의 내면에서 정신과 영혼을 낡게 만들고, 굳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습관대로 타성대로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영적 각성에 게을리 하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으로... 정해진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 볼 생각도 없이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고 매도함으로서 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많은 것을 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하찮은 지엽적인 것들만 잘 알고 정작 알아야할 내면적인 세계나 희망같은 것은 나누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도 대화를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는 노력과 함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마음이요 사랑을 할 줄아는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From.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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