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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메시아의 취임사

by 푸드라이터 2013. 1. 27.

메시아 취임사

2013년 1월 27일 주중 3주일 설교 말씀 요약 

설교 : 장기용 요한 신부 


루가복음 4장 18절을 흔히들 예수님의 메시아 취임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구원 사역의 목표와 복음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 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 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님 의 은총의 해’는 ‘희년’으로서 40년마다 포로나 종살이 하는 사람들을 풀어주고, 모든 부채 가 탕감되고, 땅도 휴식을 취하는 해입니다. 그야말로 자유의 해이며 해방의 해입니다. 하느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인류의 이상의 실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정치 사회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 중에는 로마의 압제에 대항하여 해방 투쟁을 하고자 한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부자들과 기득권자들을 힐난하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뒤집어엎고 내 쫓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십자가는 당시에 정치범들에게 가하는 형벌이라고도 합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는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제국주의의 선봉장으로서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씻을 수 없는 오점도 남겨져 있지만, 교회의 저변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그리고 정의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과 구원 사역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빵’ 보다는 ‘말씀’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빵을 먹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예수님은 이들을 피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 할 때 군중들은 그를 왕으로 알고 환영했으나 예수님은 무기력하게도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 군중들은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를 처형하라고 외쳤습니다. 제자들도 배신하고 달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정치 사회제도를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했다면 군중들을 동원해서 혁명을 성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상적인 사회를 구상하고 구축한다 해도 ‘말씀’으로 인도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없습니다. 영혼의구원이없는 한 아무리 경제적인 부를 누린다고 해도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1995년 가을, 얼 쇼리스라는 교육학자는 거리의 청소년, 노숙자, 난민, 에이즈에 걸린 싱글맘 등 20여 명의 학생들을 놓고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합니다. 학교 올 차비도 없는 학생들에게 토큰을 나눠주면서 철학, 예술, 논리, 시, 역사를 가르치는 이 인문학 강좌에 대해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말도 안된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쇼리스가 확신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 던 것은 교도소에서 만난 고교 중퇴에 마약중독자인 비니스워커라는 여성 재소자 때문이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쇼리스는 묻습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비니스는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을 데리고 가 주세요.... 길거리에 방치된 그 애들에게 도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일자리나 빵, 돈보다도 갈급한 것은 영혼과 인격의 풍성함입니다.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세상을 힘들게 사는 모든 ‘불쌍한 사람들’ 아닐까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복음의 진수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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