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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주의세례묵상II-임종호신부

by 푸드라이터 2013. 1. 15.

주의세례묵상II-임종호신부


오늘은 주님의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고 일하시는 첫 걸음으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 즉 죄로부터의 용서가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와 그 표시 인 세례로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의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의식을 통해서 변화된 삶의 행실 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요. 이 회개의 세례는 당시 성전에서 제물을 바쳐 죄를 씻어야 한다고 주장 했던 제사장 중심의 성전종교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세세한 율법규정을 모두 철저히 지켜야 하 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지도했던 율사 중심의 율법종교에도 큰 변혁이었습니다.


세례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큰 관계의 변화가 생겼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이 새롭게 열린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큰 차이는 큰 장벽을 만듭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도 여러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과 학식과 재력과 혈연과 집안, 종교등등 많은 차이가 역시 사람들 사이에 장벽으로 쌓아올려집니다.


세례는 바로 그러한 장벽 한가운데 서로 소통하는 문을 크게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시면서 거기에 한 차원 더 깊은 이해를 더하셨습니다. 세례 자 요한의 하느님 나라는 일종의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하느님의 심판과 권위로운 통치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실존적이고 관계적인 하느님의 현존이요 사랑의 다스림인 것입니다.


지오투가 묘사한 주의 세례 성화 (스크로베니 예배당 소재)



요한의 세례가 회개를 통해 행실의 변화를 강조한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사랑의 불, 성령의 불을 통 해 인격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는 고난과 죽음의 세례와 깊이 연결됩니다.


“내가받아야할세례가있다.이일을다겪어낼때까지는내마음이얼마나괴로울지모른다.”( 루가12:50)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단 말이냐?”(마르10:37)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를 표현하신 말씀들입니다.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입문하는 성사입니다. 하지만 세례로써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 아니다 그 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팎의 모든 장벽을 허물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났음이 중요합니다. 불(火)의 세례라는 표현은 열광적인 황홀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세상을 불태워야 할 사랑과 진리의 불을 뜻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루가 12:49).


흙이 불을 통해 자기(瓷器)로 변형되듯이 우리의 동물적 인간성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 자녀의 성품으로 변화 되어 갑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우리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이들이 됨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아도취나 자기만족에 머물게 하지않고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 하느님 나라의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이끌고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례 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성령과 불로 받은 세례가 우리의 참된 기쁨이요 자랑이요 감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할 따름입니다. ✠  <임종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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