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아름답게 늙는 것, 아름답게 죽는 것

by 푸드라이터 2012. 12. 30.

생수의 강: 아름답게 늙는 것, 아름답게 죽는 것

(2012년 12월 30일 주보 중)


지난 주일 오후에 식구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라갔습니다. 그 앞서도 여러 차례 올라가긴 했지만 모두 중턱 아래까지만 그칠 뿐이였죠. 정상에 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소연이는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올라갔고, 나와 아내와 소연이 엄마는 단풍잎들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올라갔습니다.


단풍잎들이 서서히 끝물로 치닫고 있었을까요? 오색찬란한 빛깔을 뽐내고 있는 단풍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으니 말이죠. 제 힘에 못이겨 떨어진 잎들도 없지 않았고, 나무가 제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떨구어 낸 이파리들도 없지 않았죠. 그 생김새와 빛깔이 모두 달랐지만 저마다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름답게 늙는 것과 아름답게 죽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부천에 있는 기도원에서 두 차례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 인생목표를 새로 세운 것과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주제로 나눈 말씀이었죠. 물론 내가 은혜를 받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의 원장님이 살아 온 삶의 여정 때문이었죠. 70세를 바라보는 그 분은 20년 넘게 30명이 넘는 사람들을 양육했고, 해외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눈물과 사랑으로 돌보고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그들 모두가 이제는 자립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원장님의 건강이 예년만 못한 까닭이었죠. 그 순간, 인생에서 돈은 잃는 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는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도 좋지만, 남에게 폐가 되지 않고 자연스레 죽는 것도 더욱 아름다운 일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기계론적 사고에 젖어 살다 보니 소화불량이라면 당연히 음식 혹은 위장 자체에 문제로만 국한하려 한다. 그러나 소화불량 역시 몸의 문제인지 마음의 반응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빚어지는 마음의 문제가 쓰리쿠션의 파동을 일으켜 몸의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32쪽)


강용혁 선생의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똑같은 아픔을 호소하더라도 결코 동일한 병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말하죠. 사람의 체질이 소음인, 태음인, 소양인, 태양인으로 나뉘고, 똑같은 체질이라도 그 환경 때문에 다른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기계론적인 몸의 질병보다 관계론적인 마음의 아픔을 먼저 헤아린 뒤에 처방전을 내려야 한다는 것도 그 때문이었죠. 기도원 원장님이 몸이 붓고 팔다리가 쑤신 것도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겪는 스트레스 때문에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누리고 채워야 할 자신의 소중한 시간들을 너무도 소홀히 흘려보낸다. 그렇게 ‘끝을 모른 채’ 살다가 어느 날 가까운 사람이나 혹은 자신에게 죽음의 실체가 다가오는 순간 패닉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어떡하든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병원을 찾고 온갖 의료장치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뒷일 것이다. 너무 늦지 않으려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죽음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171쪽)


일본의 다카오(高雄) 시립병원 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사회복지법인 노인요양원 ‘도와엔’(同和園)의 진료 소장을 맡고 있는, 나카무라 진이치의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는 신체의 자연치유력이 희박하면 의사나 약이 사력을 다해 도와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말하죠. 의료인과 약은 조력자와 보조수단일 뿐, 개인의 면역력이 건강을 지키는 참된 비결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의사나 약에 기대지 않는 사람은 늙어가면 쪼글쪼글해집니다. 병원에서 약이나 링거를 꽂은 채 목숨을 연명한 사람들은 결코 그런 흐름을 따를 수가 없죠. 자연 속에서 따낸 과일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몸집이 줄뿐 골거나 썩지는 않죠. 농약을 치고 영양제를 맞은 것들만 곪아터질 뿐입니다. 그게 사람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뜻이죠. 시골에 있는 울 엄마만 봐도 환히 알 수 있는 점이죠. 병원이나 의약에 기댄 ‘연명치료’보다 자연사(自然死)와 재택사(在宅死)를 그가 강조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1-3)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입니다. 다윗은 자기 죽음을 내다보며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 것을 강조했죠.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돌보며 사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조한 십계명에 드러난 정신이자, 다윗에게 앞서 부탁한 명령이었고, 예수님께서도 강조(막12:30-31)한 바였죠. 인간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비결, 바로 그로부터 비롯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대에게 띄우는 쉰다섯 번째 ‘잎사귀 글’(葉書)입니다. 이번 엽서에서는 남한산성에 떨어지는 가을 낙엽들을 보며, 또 그토록 아름답게 늙어가는 기도원 원장님을 보며,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듯이(生死一如), 자기 죽음을 준비하는 자만이 이 땅에서 아름다운 생을 살게 되겠죠. 천국도 이 땅과 단절된 곳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날 때 맞이할 연장선의 관문이죠. 오늘도 그대 앞길에 성령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2012년 11월 18일

권성권/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담임목사. <100인의 책마을> 공동저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