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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7년 9월 11일(화) 강론초고 (예수가 '신화'가 아닌 까닭)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20.

예수가 '신화'가 아닌 까닭

몇 년 전에 “예수는 신화다” 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 책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계의 압력 때문에 절판되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과격한 주장의 내용이었지요. 초기 기독교의 시대와 지역을 살펴볼 때 지중해 연안에 보편적이었던 각종의 “신화”들과 그리스도교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읽어보면 공감이 가는 내용이 적지 않은데, 정작 문제는 그 사실관계 자체보다도 그를 통해 “예수는 신화다”라고 단정한 저자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독보적이고 유일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중요한 기반인데 예수님을 한낱 신화로 단정 지으면 따라서 그리스도교 전체가 인공적이고 허구적인 가공물에 지나지 않는가 하고 의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신앙고백을 통해 드러내기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이해가 중요한 것은 이 사도계승이 바로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가 단지 신화적인 가상의 인물이 아님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밤새워 기도를 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뽑아 사도로 세우십니다.

이들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당대에 빼어난 인물들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부에 세리에 혁명가에 수준도 수준이려니와 성향도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경험하고 고백했던 첫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경험과 고백을 자다가 환상중에 영계의 음성으로 듣고 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몸소 함께 경험한 이들입니다.

바울로 사도가 골로사이서에서 표현하는 대로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헛된 철학의 속임수”나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의 인격을 통하여 알게 된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는 고백이 바로 열두 사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적인 교회의 성도를 자부하는 우리에게 이 내용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열두 사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을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경험하고 고백하고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열 두사도들이 당대에 목숨을 걸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우리의 시대를 향해 담대하고 분명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기적의 힘을 바라서 저마다 예수를 만지려는 사람들입니까? 많은 이들이 그렇습니다. 신기한 기적을 바라고 나 중심의 기복을 원한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기적과 기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신앙고백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성을 어떻게(어떤 내용으로) 느끼게 되었는가”가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만능의 해결사이십니까? 자주 그리도 보이지만(주로 곤경에 처한 이들에 대한 그분의 조건없는 사랑과 자비 때문에...), 정작 그렇게도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일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아니, 도리어 “예수님의 신성, 그 분의 영광이 완전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십자가 위”라고 하는 사도들의 고백과 증언은 어찌된 일일까요?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완성을 믿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그 하느님나라의 처절한 실패인 동시에 하느님나라의 영광 그 자체임을 깨닫고 있을까요? 그 “불가능한 깨우침”을 ‘부활’의 체험으로 경험한 적이 있을까요? “완전한 사람이며 완전한 하느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는 주님의 영을 내 마음에 모셔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과 주님의 그 마음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이 관심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주제는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셨던 나자렛 사람 그 예수에게서 도대체 사람들과 제자들과 당대의 세력가(기득권자)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깨달았는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어리석고 모자랐던 그러나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열 두  사도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일생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고백하고 증언했는가를 깊이 살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고백과 증언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을 내용으로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이 시대의 사도로서 주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하여 전해야할 경험과 고백과 증언의 원형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다만 주님과 우리에 관한 모든 일은 철학적, 정치적, 신학적 논리로 밝혀질 성격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영적 눈뜸과 실천으로 가능할 일임을 되새기며 은총을 구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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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1일 감사성찬례 성서말씀

골로 2:6-15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7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그 터 위에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넘치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십시오.

8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9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10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11 여러분은 세속적인 육체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형식이 아닌 진정한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잘못을 저질렀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시고 우리의 잘못을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또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버리셨습니다. 15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루가 6:12-19

12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날이 밝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그 중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다.

14 열두 사도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와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혁명당원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후에 배반자가 된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 많은 제자들과 함께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안 지방인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더러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도 고쳐주셨다.

19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예수를 만지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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