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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7년 9월 6일(목) 강론초고 (예수님의 '깊이'에서 만나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6.

예수님의 ‘깊이’에서 만나자


10년 전쯤에 어느 교회에서 청년회 성경공부를 인도했었다.
지금 내 성경 공력의 80% 이상이 그 때 쌓여진 것이다.
(잘 배우려면 가르치는 일을 맡는 길이 제일 효과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쓸데없는 이론이 장황한 편이어서
그다지 재미있는 공부시간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겠다.
그래서인지 성경 공부 때마다 스스로 ‘평범’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던
한 청년이 어느 날 눈이 빤짝빤짝해서 나타났다.
그동안 무거웠던 입을 열어 이제 비로소
‘자신의 소명’. ‘인생의 의미와 삶의 자세’에 대해서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놀라 들어보니 나의 심오한(!) 강의를 통해서가 전혀 아니라
그 유명한 ‘다단계 합숙훈련’을 통해서 깨우친 것이었다.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하여 교회와 복음이
다단계회사의 선전만큼도 영향력이 없는 것인가
자괴감을 곱씹게 하는 경험이었다.

오늘 루가 복음은 예수님이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다.
다른 공관복음서는 그냥 “나를 따라오라” 하시니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갔다고 하지만 루가는 고기잡이의 신기한 일을 배경으로 삼았다.

성경에서 기적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하는 대단한 사건으로 여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실은 아니지만 그럴 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로 여기기도 한다.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 곁에 오셨던 그리스도’로 기억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예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으시는가에 관심을 두고 살필 일이다.

기적적인 능력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인가?
성경이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성경을 표면적으로 읽은 것이다.

성경의 기적이야기는 우리의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로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하고 유혹한 광야의 사탄이었고
하느님의 말씀 외에 내가 의지하는 능력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보시라 하고 조롱한 이들을 측은히 바라보며
의연히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었다.

성경의 기적이야기는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질병으로 저주하는 분이 아니시다는 믿음을 위하여
치유의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악마에게 넘기시는 분이 아니시다는 믿음을 위하여
축귀의 이적은 일어나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위하여
풍랑제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죽음으로 끝장내시는 분이 아니라는 믿음을 위하여
죽은 자 소생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루가가 전하는 고기잡이 기적은
제자의 길에 나서게 되는 베드로에게
마지막 한 몫을 잡게 해주시는 시혜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가게 될 베드로에게
밤새도록 일해도 한 사람의 신자도 얻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우리 부산교구의 사제들을 기억해주실 것, 그들의 수고와 참담한 현실과 희망을!)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라는 잊지못할 말씀을 들려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얄팍한 세상의 가치와 논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깊이와 수준으로 인생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보았는가?
그들 앞에서 서면, 그들과 함께 살아계신 하느님의 현존, 복음의 힘을 느끼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 교회는 과연 그런 힘이 있는가?
세상을 제 마음대로 살던 인간이, 우리 교회 앞에서,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죄인됨”을 느끼게 될까?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로부터 듣는 사랑의 말씀이다.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 사람도 전도해 본 적이 없다고?
괜찮다. 하지만 나는 과연 전도되었는가를 생각해보자.
어떤 동기로 어떤 계기로 어떤 내용으로 어떤 깊이로 전도되었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다른 이를 전도하게 될 것이다.

과연 나 자신은 진정 나의 깊은 곳에서 주님께로 낚여진 것인가?
우리의 깊음이 다른 이의 깊음을 부르고 만나게 되어있다.
너는 과연 누구를 ‘깊이’에서 만났느냐?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났으면 아! 그것이 사랑이요 기쁨 아니냐?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 부르심에 선뜻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지는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
그것은 지금이 아니라 마침내 우리의 묘비명에 쓰여질 말이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살았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의심과 방황과 회개와 깨침이 숨겨있으리라.

(복음서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모두 죽은 후에
그들의 삶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음” 한 줄 외에
달리 남길 것이 없는 삶임을 경탄하며 기록된 것임!^^)

우리의 소명이 “내가 세상을 구원해보겠다”는 '메시아 컴플렉스'는 아닐 것이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겸손한 우리 성공회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이리 고백하는가?
그러나 여전히 자비로운 주님의 그 말씀,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이 말씀을 우리의 깊은 마음에 새겨 기억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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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6일 감사성찬례 성서말씀

골로 1:9-14
9 우리는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게 되기를 빌어왔습니다.
10 또 우리는 여러분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1 또 우리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부터 오는 온갖 힘을 받아 강하여져서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12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루가 5:1-5
1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2 그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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