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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7년 9월 3일(월) 강론초고 (예언자의 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4.

예언자의 길

철 지난 쟁점이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개인영혼”과 “사회구조”중 어느 것을 대상을 하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성공회적인 답은 “둘 다” 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우리 성공회 사람들은 그 귀한 중도, 통합의 정답을 그만한 고민의 과정 없이 대충 머리로 내어놓고 만족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개인영혼에 대한 관심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기의 신원을 소멸하는 육체가 아닌 영속하리라고 기대되는 영적 실체인 영혼에서 확인하려는 시도입니다.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은 삶의 고통에서 비롯합니다. 절대로 공평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몫을 불의한 세상 탓에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우리들의 삶을 먼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만을 읽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올바로 읽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삶과 성경이 분리되면 우리는 구원을 관념으로만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죽어가는 존재로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데살로니카전서는 죽음을 위로하는 대표적인 성구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명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을 위해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교리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나라, 즉 내세(來世)는 우리가 죽음 후에 영혼이라는 실체로서 가게 되는 또 다른 세상은 아닙니다.
성경에 그러한 또 다른 세상의 존재는 언급이 없습니다. 즉 하느님이 태초에 “보시기에 좋게” 지으신 이 세상 외에 또 다른 영계를 지어내셨다는 이원론(二元論)적인 이야기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현세(現世)와 내세(來世)의 경계는 그러므로 우리의 생리학적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에고의 죽음입니다.
에고는 하느님을 모르는, 하느님을 거절하는 자기존재에 대한 확신입니다.
에고는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죽고, 성령 안에서 영으로 거듭납니다.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인의 회개입니다.

예언자는 앞일을 점치는 점쟁이가 아닌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전하는 이가 예언자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에고로서의 우리를 죽게 하고 영으로서의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진리의 힘입니다.

오늘 루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읽으시며 “성서의 이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는 이른바 “메시야 취임사”의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듣고 놀라서 칭찬하였지만 곧 예수님의 신원(身元)을 의심합니다. 우리 동네 사람인데...하고 말이죠.
그것은 그들이 예언자의 말씀 앞에서 자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경봉독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다시 살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말씀이 이 자리에서 나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내게 아직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말씀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저만치 성경 안에 적혀있는 어떤 이야기, 어떤 정보입니까?
나를 뒤흔들고 죄와 고통과 두려움의 나를 죽이고 살리는 역동적인 힘입니까?

자기 에고를 죽이기 싫은 이들은 구원을 자기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에고, 자기 중심주의를 포기하기 싫은 이들이 함께 동의하여 이룬 경쟁과 억압과 통제의 구조가 이 악한 세상의 본질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예언자를 벼랑에서 떠밀려고 합니다.

예언자는 그 불의한 세상의 한복판으로 말씀의 길을 여는 이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오늘” “우리에게” 예언자이십니다.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내세(來世), 생명의 나라에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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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3일 감사성찬례 성서말씀

1데살 4:13-18
13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살아 남아 있다 해도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결코 먼저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16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17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위로하십시오.

루가 4:16-30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17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23 예수께서는 "너희는 필경 '의사여,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어 나더러 가파르나움에서 했다는 일을 네 고장인 여기에서도 해보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하시고는
24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잘 들어라. 엘리야 시대에 삼 년 반 동안이나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온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지만 26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다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만 보내주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나병환자가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고쳐주시지 않고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만을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28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29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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