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메시아를 만났소!

by 분당교회 2017. 1. 15.

삼국지는 세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잔을 기울이며 뜻을 모았다고 해서 도원결의라고 합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는 서로 다르게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자고 비장한 결의를 하면서 의형제를 맺습니다. 정의로운 태평성대를 이루는 새 세상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그 뜻을 변치 않기로 합니다. 개인적인 안위와 권세를 위해 패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와 백성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원대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가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이 만남으로서 새로운 운명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 사람의 결의는 나라의 운명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선교 사역을 하면서 처음 하신 일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제자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때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입니다. 공관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바닷가를 걷다가 어부들을 만났는데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했더니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이 따라 나섰다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알아보았고, 같이 가던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미 이 제자들은 마음속에서 메시아를 찾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제자들이 예수를 만남으로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고기나 잡으면서 평생을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그렇게 살아갈 인생이었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교회를 세우고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새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녀들이 혹시나 사람 잘못 사귈까봐 늘 관찰합니다. 가급적이면 공부 잘 하고 선량한 친구 사귀기를 바라고 있지요. 친구 중에 혹시나 가정이 불안하고 비행을 일삼는 친구가 있을까봐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결혼 상대를 만날 때는 어떻겠습니까? 인륜지대사라 정말 신중하고도 신중하게 만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뭐 그렇게 신중하려고 해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겠습니다만... 어떤 문인이 말하기를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이렇다고 합니다. 마치 번개가 번쩍하는 것을 보고 아! 밝다! 라고 깨닫는 순간이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슨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면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잘 들리지 않게 됩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으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사람은 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어있습니다. 정말 내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서 아름답고 선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먼저 내 주위에 선하고 아름다운 생각과 마음과 행실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만약에 내 주위에 탐심이 가득하고 욕정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면 한번 깊이 자기성찰을 해봐야 합니다. 그저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만남이 지속된다면 문제가 많습니다. 진실한 만남은 시간을 죽이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주변도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사람들은 메시아를 갈망하면서 찾았던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진지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가치와 품격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무엇을 보고 저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무엇을 찾고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고 싶어 하고 누구를 찾는가를 보면 됩니다. 권세 있는 사람을 찾는 사람은 분명히 뭔가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이 있겠지요. 돈 많은 사람을 찾는다면 물질적으로 무슨 이득을 구하기 위해서이겠지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찾고, 누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처음 제자들은 메시아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어부들임에도 이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을 이루실 구세주를 갈망하면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만나서 이 분이 메시아이다!’ 라고 확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오신 분도 아니고,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행색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한 행색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보았소! 하고 증언합니다. 이 증언을 시작으로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 15,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의 심법(心法)  (0) 2017.01.30
인간의 무게  (0) 2017.01.23
홀연히 열린 하늘 문  (0) 2017.01.08
이름  (0) 2017.01.01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0) 2016.12.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