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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이름

by 분당교회 2017. 1. 1.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여 주인공 스카렛 오하라가 마지막에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말합니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기약하면서 암울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내비칩니다. 매일 떠오르는 해가 다를 수는 없지만 희망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병신년이라는 어감도 이상했던 2016년도 해가 기울고 2017년도의 해가 떠올랐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작년은 정말 다사다난 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이 안 될 만큼 엄청난 사건과 변화를 겪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의 이름이 매일 뉴스에 등장하면서 매일 충격과 반전 속에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름들은 어둠의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을 움켜쥐고 국가와 국민의 근본을 흔들었던 이름들이었습니다. 올해는 보다 희망적이고 평화와 행복을 주는 이름이 기억되기를 기대합니다.


매년 11일은 거룩한 이름 예수라는 축일을 지냅니다. 새해 첫날이라서 예수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이 이름으로 희망찬 새해를 출발하라고 만들어진 축일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고 여드레 째 되는 날에 성전에서 할례를 받고 이름을 예수로 지었다고 해서 이날이 예수라는 거룩한 이름을 기념하는 축일이 된 것입니다.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그래도 새해 첫날을 예수라는 거룩한 이름과 함께 출발한다는 것은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행적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름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아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흙에서 왔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동물과 식물의 지름을 짓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며, 그 대상을 지배한다고 하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노년에 아이를 낳으니까 웃었다고 해서 그 아들을 이사악으로 지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강물에서 건졌다고 해서 모세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서 백성들을 해방시키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아닌 나는 곧 나다.’라는 말씀만 들었습니다. 이 말씀의 자음을 연결하여 야훼라고 불렀습니다.


성서 속에서는 이름에 하느님의 목적과 그 사람의 소명을 담아서 바꾸기도 합니다. ‘아브람아브라함으로, ‘사래사라, 야곱이 이스라엘, 신약에서는 시몬이 베드로, 사울이 바울로 이름을 바꿉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을 때 신앙과 인생의 거울로 삼을 새 이름을 짓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구원 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름으로서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에 구세주로서 친구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이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악령들이 물러가고, 그의 이름으로 병자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고, 예수의 이름으로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갑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평범한 아기가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듯이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평범한 삶은 거룩한 삶으로 거듭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상적인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거룩한 백성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 가을에 몇몇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함께 진도 팽목항에서 성찬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설교를 맡은 한 사제가 참사로 숨져간 304명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를 때 갑자기 속에서는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몸이 떨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름을 부르던 사제는 목이 메어서 중간 중간 여러 번 끊어졌습니다


참사가 일어났던 봄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가을엔 어느덧 세월호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어느덧 우리 가슴 속에서 잊혀져갔던 그 이름들을 부르는 순간 물이 차오르는 배속에서 그리운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에 죽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요? 304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기억이겠지요. 작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숨져가 김○○군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엔 이렇게 슬픈 이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이름들 위에 예수라는 이름을 살며시 얹어봅니다. 큰 위로가 되기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 1,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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