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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홀연히 열린 하늘 문

by 분당교회 2017. 1. 8.

기독교인들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부모님으로부터 육신을 받아 태어나고, 두 번째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탄생은 신앙이 성장해서 하느님의 소명을 깨달아 복음을 실천하는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빠른 사람이 있고 늦는 사람이 있겠지만 원리는 비슷합니다. 이렇듯 신자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것이지 자기의 본성과 낡은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겉으로만 신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라는 장식물로 포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몇 세대를 걸쳐 교인의 문패를 걸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듭남의 체험과 그 기쁨이 없는 사람은 참다운 신자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인 어거스틴은 인간은 육신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죄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변화되면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주변 환경과 겉치장이 아무리 변해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영혼의 눈이 가려져 있는 사람은 가까운 주변에 진리의 보석이 빛나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과 은총이 내려져도 그 값어치를 잘 모릅니다.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볼 줄만 알지 사랑의 파트너로 볼 줄을 모릅니다. 또한 물질을 소유의 대상으로 볼 뿐이며 선행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오토가 묘사한 주의 세례 성화 (스크로베니 예배당 소재)


영혼이 무기력한 사람은 실패와 좌절이 왔을 때 고개를 들어 희망과 용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과 이웃을 불평하면서 쇠락의 길로 하염없이 빠져들고 맙니다. 영혼이 변화된 사람은 새로운 안목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전에 애지중지하면서 움켜쥐고 있던 것이 무가치한 것으로 보이고, 이전에 아무런 관계없이 보였던 사람이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렇듯 영적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지 속에 살면서 먼지를 묻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만, 비록 세상의 어지러움과 애환 속에서 살아가지만 천국의 소망과 그 기쁨을 안고 살아갑니다. 유한한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영원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생명을 누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받은 한 가족입니다. 예수님이 속해있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며,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찮은 세속의 권세와 영광을 가진 사람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든든한 빽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늘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신 분과 같은 생명을 가지고 한 가족이 되었으니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는 축복을 안겨주십니다. 하늘나라의 자녀로서 하느님께서 환영해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세속과 이기심으로 닫힌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 신동엽은 시대적 염원과 인간의 새날을 꿈꾸며 이런 시를 썼습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거짓 이념과 물신 숭배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먹구름이고 쇠 항아리입니다. 세례는 마음속의 구름을 닦는 거룩한 은총입니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포로수용소의 어느 벽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구름이 아무리 하늘을 가리어도 태양은 구름 위에 빛나고 있다.’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의로움이 결국 승리한다는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 희망이 우리의 삶을 존엄하게 만들고 하늘나라의 빛나는 광채를 품고 살게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느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녀, 내 마음에 드는 자녀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 8,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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