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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인간의 무게

by 분당교회 2017. 1. 23.

모든 사람은 심부름꾼입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우리 각 개인을 보내실 때는 뭔가 뜻이 있으셔서 보내주셨다는 것이지요. ‘아무개, 그대는 세상에 가서 내가 맡긴 일 좀 하고 오시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평생 그 심부름의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또 자기가 심부름 하러 세상에 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썩어질 것, 사라질 것만 평생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하느님이 맡기신, 부탁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나가는 과정입니다. 소위 믿음이 강하다는 것을 하느님을 잘 컨트롤 하는 능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하느님의 컨트롤을 잘 받아서 하느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 받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제일 괴로워하고 비참하게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0세기 초에 영국에서 장기 불황이 계속되고 실업자들이 늘어 날 때 윌리엄 템플이라는 캔터베리 대주교를 비롯한 영국교회에서 전문가들을 통해 조사한 결과였습니다. 거리에 홈리스들이 넘쳐나고 장기 실업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당연히 가난했습니다. 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럽냐고 설문을 했는데 그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아무도 나를 필요치 않게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돈을 달라거나, 먹을 것이 없으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돈이나 먹을 것, 입을 것은 직업이 있으면 해결될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확신이 없고 무익한 인간으로 취급당하는 게 고통스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잉여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한테 덤으로 얹혀 졌거나, 불필요하게 거추장스러운 인간 취급당하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들고 급기야는 구제할 수 없는 영혼의 파괴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청년 실업의 문제는 단순히 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영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 공동체에서 당당하게 한 일원으로서 기여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 보장제도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집과 쌀을 주는 것도 물론 너무나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만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1995년 가을, 얼 쇼리스라는 교육학자는 거리의 청소년, 노숙자, 난민, 에이즈에 걸린 싱글맘 등 20여 명의 학생들을 놓고 인문학 강좌를 시작합니다. 학교 올 차비도 없는 학생들에게 토큰을 나눠주면서 철학, 예술, 논리, , 역사를 가르치는 이 인문학 강좌에 대해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말도 안 된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쇼리스가 확신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에서 만난 비니스 워커라는 여성 재소자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 첫 만남에서 쇼리스는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그랬더니 비니스는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을 데리고 가 주세요.” , 돈보다 갈급한 것은 영혼과 인격의 풍성함이고 이것을 통해서 참다운 행복과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나 소유는 달라도 인간 영혼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란 위험에서 건져주고, 병환에서 치유해 주시고, 간절한 소원을 들어 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하느님의 더욱 깊은 사랑은 그런 차원을 뛰어넘어서 하느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귀한 일에 내가 쓰임 받는다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제자들이 나섭니다. 이 장면은 비장한 각오를 연상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희망을 주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는 무슨 자격을 따지거나 능력을 시험해보거나 하지 않으시고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라는 정말 귀한 능력과 사역을 맡기십니다. 인간의 무게는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만큼 쓰임 받느냐에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22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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