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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행복의 심법(心法)

by 분당교회 2017. 1. 3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이나 새해가 되면 누구나 이렇게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에 대한 갈망이 커서 그런지 이불이나, 숟가락, 담벼락, 복 주머니 등등에 복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 건강과 재물, 출세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현세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묘 자리를 잘 쓰고 제사를 지내는 등 돌아가신 조상을 잘 섬기는 것도 후손들의 복락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외적의 침략과 기득권층의 가렴주구가 극심했던 역사 속에서 백성들 안에는 현재적인 복락을 추구하는 심성과 가치관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고 오늘을 고단하게 살아야만 했던 가난한 백성들의 현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각박함 속에서 영원한 나라와 마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축복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하느님 나라의 헌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성경은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고 이 산상수훈을 잘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모든 재물을 농노들에게 나누어주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마음의 행복을 얻으려 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법은 마음의 법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시작한 산상수훈은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이런 식으로 모두 행동이나 환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에 관한 것들입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역시 마음속에서 정의와 평화를 갈망해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늘나라의 법은 심법(心法)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코시모 로셀리 Cosimo Rosselli) 


고대 중국에 한비자라는 사람이 법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강력한 법의 집행을 통해서 혼란한 세상을 통일하고 정의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통치자의 마음에 나라가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시스템으로 사회적 질서를 세운다고 하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을 주장했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였기에 사악하고 불의한 기득권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정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약자들은 법에 맞추기만 하면 되니까 억울한 일을 덜 당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가 사상에 충실했던 진나라의 상앙이라는 재상은 냉혹하게 법을 집행했기에 저자거리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이를 탐하거나 주워가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 이외의 모든 사상을 통제하고 책들을 불살라 버리기도 했습니다. 논어 맹자를 비롯한 왕도 정치와 윤리 사상을 제거하고 강력한 법으로 통치한 진 나라는 역설적으로 시황제의 죽음 이후에 급속도로 멸망과 분열을 맞이합니다. 백성들과 신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기보다는 법에 의한 강제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토록 법의 냉정한 집행을 주장하고 실천했던 한비자나 상앙은 그 법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법의 한계와 모순을 보게 됩니다. 요즘도 소위 법률을 잘 안다고 하는 법률가들이 교묘하고도 영리하지만 심성은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을 보면서 율법주의자들의 위선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의 법 없이 겉으로만 의로운 척하는 위선자들을 향해 엄중히 경고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라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 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흘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마태오 23:23-24) 이처럼 마음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은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행복의 심법이 없이 율법만으로는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인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도 없습니다. 행복은 어떤 외적인 조건과 환경이 충족되어서 만들어 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을 바라보게 되고 이내 결핍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조건이라는 것도 왔다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궁극적인 실재와 맞닿아 영혼이 기뻐 춤출 때 오래오래 우리 삶은 풍성해지고 품위 있는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29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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