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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기독교인의 윤리적 이상

by 분당교회 2017. 2. 12.

마태오 복음 51절부터 7장까지를 보통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는 이 설교는 성서중의 성서라고도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생활 윤리의 규범이자 영성생활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기도 하고, 인간의 품위와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스승들은 한 결 같이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요시했고 또 몸소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령 인도의 간디는 크리스천이 아니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
, 특히 이 산상수훈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간디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훌륭하나 크리스천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가 본 크리스천들은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오히려 탐욕과 폭력으로 인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 1930년 평화운동)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율법을 더욱 깊이 심화시키고 확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는 말씀대로 율법의 형식논리보다는 법 정신을 더욱 강조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법률을 지킨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개조한다는 편이 나을 듯 싶습니다.


오늘의 복음에서는
성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라는 네 가지의 명제를 읽습니다.


성내지 말라라는 명제는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더욱 심화시킨 말씀입니다. 살인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미움과 화를 내는 것이지요. 화를 내면서 사람들끼리 욕을 합니다. 당시에 심한 욕은 바보그리고 더 심한 욕은 미친 놈이라는 욕이었나 봅니다. 아마 예수님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내뱉는 욕설을 들으시면 생각을 달리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은 역시 십계명에 있는 말씀입니다. 실제 음행을 하는 것 이전에 그 생각자체를 버리라고 하십니다. 죄의 충동을 없애라는 말씀입니다.


이혼 문제는 그냥 합의 이혼이 아닙니다
. 소박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하는 이혼은 남편이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요구할 수 없습니다. 완전 불평등이지요.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 때입니다. 이 경우에 이혼장을 써서 주면 아내는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재혼의 길을 열어주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일까요?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율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같은 잘못입니다. 지금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아무개가 아내 아무개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좋다는 이혼장을 써 줍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결혼관이 아주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한 번 맺은 부부관계는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결혼의 신성함, 결혼에 대한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을 밝히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십계명 조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얼마나 거짓말들을 많이 하면 맹세를 하겠습니까? 서로가 서로의 말을 믿지 못하니까 맹세를 하지 않습니까? 그냥 하는 맹세도 아니고 하늘을 들먹이고 땅을 들먹입니다. 신을 들먹이고 교회를 들먹입니다. 그렇게 과장하면서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에 거짓말들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신뢰관계가 깨지면 항상 문서가 필요하고 공증이 필요합니다. 물적 증거로 남기지 않으면 다 헛일이 됩니다. 거짓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명령들을 보니까 정말 근본적으로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새로운 인간으로 바뀌지 않으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근본적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때문에 산상수훈에 비추어서 나의 윤리생활을 성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영성 수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 내 안을 비워야 기쁨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워지면 다만 순리대로 살아 갈 뿐. 집착하는 것이 있고 자기애가 강하면 그만큼 괴로움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과 시기, 질투가 일어나는 까닭은 남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안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017년 2월 12일,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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