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십자가에 달리신 '왕'

by 분당교회 2016. 11. 24.

십자가에 달리신 '왕' 


유다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위대한 왕이 등장하기를 학수고대 했습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왕은 화려한 왕관과 제의를 입고 권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왕은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며 원수를 무릎 꿇리고 복종케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국이 영원토록 세상을 지배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이런 왕에 대한 기대에 루가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응답을 전합니다. 그 왕은 바로 해골산이라는 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유다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 왕과 같이 위대하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단지 매우 불행한 사나이에 불과했습니다. 높은 권좌에 있지도 않고, 허리를 굽혀 충성을 다하는 신하도 없으며, 명령 한 마디에 복종하는 장군도 군사도 없습니다. 황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기는커녕 벌거숭이로 비참하게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굴복시키지도 않고 신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그 분 옆에는 강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들만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왕권은 매우 특이하며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왕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전지전능하고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그런 분을 원합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악한 자들을 벌주고 불치병을 낫게 하고 개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시는 그런 분을 기다립니다. 언젠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한테 ‘선생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듯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훗날의 보상을 위한 투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지도 않으셨고, 조롱과 비웃음 속에 숨을 거두시는 분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 분은 패배자이며 사형수에 불과했습니다.



(십자가 -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Andrea Del Castagno)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군중입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들의 침묵과 당혹감 속에서 그들 자신은 이 사건과 관련이 없으며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 없는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은 예수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하며 조롱합니다. 또한 군사들 역시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하며 빈정댑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고 그의 기적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모든 악을 물리치고 모든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셨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추앙하고 받들어 모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왕권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그 누구도 내치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용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왕을 보면서 우리는 개인 또는 인간 집단의 영광을 위한 열망이나, 정상을 향한 치열한 노력들이 다 무색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왕이며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야말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며 이것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 방법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곁에는 강도 두 사람이 양 옆에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예수님께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합니다. 이 한 마디는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고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죄 없는 분이지만 자기와 같은 죄인들의 고통 속에 함께 동행 하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임하면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소망이요, 기도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한 마디의 대답을 듣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무슨 근심과 걱정과 아쉬움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세상의 통치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왕의 모습을 보고서 깊은 반성과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은 그런 겸손과 희생을 사명으로 아는 통치자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 20,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의 외침  (0) 2016.12.04
기다림의 기쁨  (0) 2016.11.28
두려워 말라  (0) 2016.11.13
부활에 대한 토론  (0) 2016.11.06
행복의 깊이  (0) 2016.10.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