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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행복의 깊이

by 분당교회 2016. 10. 30.

행복의 깊이

1849 12월 러시아 세묘노프 광장에 칼바람이 부는 사형대 앞에 28살 청년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서 있습니다. 그는 반체제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형 집행관이 외쳤습니다. "

죽기 전에 5분 동안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혼자서 말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먼저 가족과 동료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 먼저 떠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 때문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너무 슬퍼하지도 마십시오.

집행관은 2분이 지났음을 알렸습니다. , 후회할 시간도 부족하구나. 난 왜 그리 헛된 시간 속에서 살았을까. 찰나의 시간이라도 더 주어졌으면... 그는 생각하면서 후회와 반성을 합니다. 그렇게 또 2분이 지나갔습니다. 다시 집행관이 마지막 1분 남았음을 알립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두려움에 떨며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황량한 광장에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매서운 칼바람도 느낄 수 없겠구나. 맨발로 전해지는 땅의 냉기도 느낄 수가 없겠구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겠구나... 모든 것이 아쉽고, 아쉽다... 그는 생에 처음으로 세상의 소중함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

, 이제 집행을 시작하겠소!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저 편에서 사격을 위해 대열을 이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그의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그 때 전령이 달려와 외쳤습니다. 멈추시오! 사형 대신 유배를 보내라는 황제의 전갈이 극적으로 도착한 것입니다.

사형을 모면하고 돌아온 그날 밤, 그는 동생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고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 수도 있었던 것을 조금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그에게 4년간의 유배생활은 가장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무려 5킬로그램이나 되는 족쇄를 차고서 창작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는 유배생활이라 그는 종이 대신에 머릿속으로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생은 5분의 연속이라는 각오로 글쓰기에 몰두했고, 인류의 모든 이들에게 영적인 각성과 감동을 주는 불후의 명작들을 집필했습니다. 

그의 작품, 죄와 벌에서 등장하는 소냐는 아주 고통스럽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신에게 감사를 하면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순수한 믿음으로 자기희생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라스꼴레니고프는 마침내 죄를 고백하고 그의 영혼에 점차 사랑과 감사의 빛이 들어오게 되는 스토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 앞에서 깨달았던 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표현되는 듯합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항상 결핍과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그리고 10대에는 죽어라 공부만 하느라고 행복하지 않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는 먹고 살기에 급급해 행복할 겨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중년이 넘어서는 다시 자식 걱정, 노후 걱정에 행복은 뒤로 밀쳐지고 맙니다. 이렇게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까닭은 행복을 밖에서 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안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의 비결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이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영혼이 이루는 기쁨입니다.

예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들에 핀 꽃들, 공중에 나는 새들은 우리들 삶에 작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찮은 것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들까지도 돌보시고 있음을 깨우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큰 변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나 사도 바울처럼 극적인 변화 체험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급격하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고 눈여겨보면서 신의 섭리를 느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부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과 행복한 것과는 다릅니다.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편안한 것도 역시 행복한 삶과도 다릅니다. 행복의 진정한 깊이는 감사하는 영혼으로 만들어집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 30일 추수감사절,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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