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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두 사람의 기도

by 분당교회 2016. 10. 24.

두 사람의 기도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우리는 기도함으로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살아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 앞에 서게 되며, 하느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구약성서에서 욥이 폭풍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때 자신이 티끌보다 못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문에 기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심과 집착과 교만을 버리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로 그 무엇인가를 채우기보다는 자신을 비우는 것, 이것이 영성생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만이 옳다고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한테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바리사이파 사람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 같은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칭찬에 굶주린 어린아이의 자랑처럼 여겨집니다. 하느님은 도대체 무엇을 그에게 줄 수 있을까요? 그는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기에 하느님의 자비가 불필요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예수 시대에 세리는 유다인들로부터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호화로운 주택에서 값진 옷을 입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언정 죄인으로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없으면 이 세상을 사는 것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우리는 우선 교만하고 위선적인 사람을 경멸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 앞에서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뒤에서는 그들의 진실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한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권세나 재물이 사라질 때는 어김없이 비난이 쏟아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까요? 여기서 죄인은 실정법상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기보다는 소수자로서 약자로서 부당하게 차별받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가령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성적 소수자나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전과자, 실업자, 노숙자 등등이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그들을 외면한다면 이 또한 교만과 우월주의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자비를 절실하게 구할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내가 얼마나 은총을 받으며, 또한 용서받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현존을 믿는 사람이 갖는 품성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품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하느님께서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바로 겸손한 사람임을 예수께서 가르치십니다.

노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커 보이려고 발끝으로 서는 사람은 단단히 설 수 없고, 남들보다 빨리 가기 위해 다리를 너무 벌리는 사람은 오래 걸을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게 빛날 수 없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돋보일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은 밥찌꺼기 군더더기 같은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경우에서 '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체, 모르면서도 아는 체, 못났으면서도 잘난 체, 똑똑하지 못하면서 똑똑한 체, 행복하지 못하면서도 행복한 체 합니다. 아마도 사람을 우등과 열등으로 가르고 차별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면서 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하고 명품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는 것도 그 범주에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 시대는 위선자들을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함으로 내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23일 연중 30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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