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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두려워 말라

by 분당교회 2016. 11. 13.

두려워 말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할까요?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사과나무를 심는다면 그것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꽤 많은 해가 지나야 할 텐데 내일 당장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야말로 쓸데없는 일이라고 비웃음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와서 열매를 얻는 것을 볼 수 없을지라도 지금 내가 희망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종말 앞에서 심한 공포를 느끼며 패닉에 빠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종말의 그 날이 오면 과연 우리는 어찌 될까요? 


많은 재난 영화들이 인류 최후의 날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여줍니다. 급격한 기상 변화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빙하의 시대로 돌입한다든지, 또는 엄청난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지구가 파괴되는 현상을 표현합니다. 아니면 이상한 괴 물질이 생성됨으로서 무고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간다든지, 괴물이 나타난다든지,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해서 위기에 빠진다든지 하는 영화들 속에 종말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재앙과 위기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어떤 반성과 희망을 이루어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화 속의 그런 재앙들이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과 욕망에 기인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았는데 핵무기가 개발 되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서기 66년.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33년이 지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70년까지 5년 동안 로마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여지없이 패배했고 예루살렘 성전은 남김없이 파괴되었습니다. 이 때 결사항전을 벌였던 마사다 요새에서의 전투는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고 유대인들의 독립의지가 얼마나 강했던가를 보여줍니다.


(루가 복음을 쓴 St. Luke)


루가 복음은 이런 유대인들의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경험하고 기록된 성서입니다. 그래서 전쟁과 박해의 현실에 대해서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회당 법정에서 서른아홉 대의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왕과 총독들 앞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와 다른 교인들도 감옥에 갇혀 고초를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셴키예비치의 쿼바디스는 이러한 박해의 상황과 신도들의 처절한 순교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박해의 재판정에서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면 아마도 그런 박해를 모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으로 내 마음이 평안을 얻는다든가, 축복으로 건강과 재산과 명예를 얻게 된다든가,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이 된다든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런 박해의 순간에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요? 개인의 안락과 소유를 위한 신앙이라면 쉽게 등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보장해 주는 쪽으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박해의 고난을 참고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을 영원한 생명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법정에 서거나 형장에 끌려가더라도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의 상태야말로 혹독한 폭력을 물리칠 수 있는 평화의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 13,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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