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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기다림의 기쁨

by 분당교회 2016. 11. 28.

기다림의 기쁨


영성생활에서 기다림은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고 만남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림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사순절에는 예수님의 승리의 날을 기다립니다. 부활절이 지나면 성령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에는 영광 속에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일 년 사시사철 우리 삶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버스나 전철이 오기를 기다린다거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거나 또는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은 지금도 오고 계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표적을 발견하기 위해서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가 저절로 열릴 때까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식으로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 열매를 맺어 가는 과정에 땀과 정성을 담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지 모를 태풍과 가뭄이 오면 가슴을 졸이며 기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기다릴 때는 이처럼 능동적인 참여와 집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농부가 오늘의 고통과 힘겨움과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이 풍성한 열매를 꿈꾸며 기다리는 것에서 오는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의 빛을 입는 그날에 대한 희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합니다.



뭐든지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타성과 안일에 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래 새 것이란 없다면서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생활태도에 안주할 때 우리의 영적생활은 서서히 잠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놀라움도 감격도 감동도 사라집니다. 매일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거나,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보고서 작은 소망을 발견한다거나, 장엄한 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영적 생활이 이처럼 굳어있고 무감각해지는 것은 기다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설레임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길들인 것만을 알 수 있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아.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사지.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다고! 사람들은 이제 친구를 사귈 수도 없게 될 거야. 만일 네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야 한다는 말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여우가 대답했다. “인내심이 필요해. 일단은 나와 좀 떨어진 풀밭에 앉아. 내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내가 너를 살짝 곁눈질로 쳐다보면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말은 수많은 오해의 원인이 되거든.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넌 내게 조금씩 다가오게 될 거야.” 다음 날, 어린 왕자는 여우를 찾아갔다. 여우가 말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한 거라고.”


어린 왕자와 친구가 만나는 행복은 약속된 시간 이전에 이미 마음속에 깃들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항상 그날과 그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즉,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마치 도둑처럼 오는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깨어있고 늘 준비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있으라고 해서 매일 불면의 밤을 지새울 수는 없습니다. 24시간 도덕과 윤리만 생각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살펴볼 수도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산다면 병에 걸릴 것입니다. 항상 깨어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어둠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 사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에서 눈길을 돌려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소망과 기도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천국을 앞당겨 살기 때문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 27,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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