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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불을 지르시다니요?

by 분당교회 2016. 8. 14.

불을 지르시다니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가 12:49, 51)

예수께서 하신 이 격렬한 말씀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굶주린 백성들을 보고서 측은하게 여기셔서 5천명을 먹이시지 않았나요? 길거리의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치시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빛의 길을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죽은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비통해 하시고 눈물을 흘리신 예수께서 이렇게 가혹한 말씀을 하시니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또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갈라질 것이라니 가정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이 달달하게 마음 편히 들을 말씀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재물축적과 건강과 출세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말씀과 행동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봐도 오히려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거나, 자기의 복락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왕이 되어 배불리 먹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을 피해 사라지셨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예수께서 이렇게 격하고 독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 데, 그 때는 위선자들과 마음이 굳어져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였습니다. 

예수께서 불을 지르신다면 어떤 불일까요? 그건 심판의 불일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소돔 성에 유황불을 내리셔서 모두 태워버렸듯이 악과 죄를 소멸하는 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불은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우리의 죄와 악을 태우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희생과 사랑의 불꽃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존 마틴 작)

또 가족 간의 분열과 반목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 부분은 구약 성서와 예수님 당시에 퍼져있는 종말에 대한 징조를 말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말세야, 말세!’의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런 분열을 일으키겠다는 의지 보다는 그냥 종말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정도로 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죄가 다 드러나서 활개를 치고 가치관과 진리가 무너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가혹하게 자식을 살해하고 학대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보고 먹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층에 있다면 이 역시 종말을 향해 질주하는 사회가 아닐까요? 또한 인간으로서 이루어야 할 고귀한 가치나 소명보다 먹고 사는 것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룬다면 서서히 종말을 향해 익숙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물이 가득 찬 솥에 던져진 개구리가 물속에서 헤엄치며 놀면서 익숙해져서 물이 끓어도 서서히 그 안에서 죽어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시대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자기한테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지, 무엇이 불리한지는 재빠르게 알아차리면서 다가올 심판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대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대한민국의 해방은 친일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재앙이었을 것입니다.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에게 비행기와 무기를 헌납하면서 귀족 작위를 받은 사람들한테는 세상이 무너지는 날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으로 내보내는 내지(일본 본토)의 어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도 여성 자신들이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도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말고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자.”(김활란) “친애하는 반도 학도여! 반도를 응시하라. 일본을 정시하라. 그리고 세계를 통찰하라. 이천 오백만의 운명은 어디까지나 학생 제군의 양 어깨에 달려있다. 대동아는 우리 일본을 중심으로 건립되고 있다. 전쟁은 동아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최남선) 이들은 시대를 이용할 줄은 알았지만 시대의 뜻은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시대’는 바로 심판의 때이고, 시대의 뜻은 바로 회개입니다. 양심과 도덕과 사랑으로 거듭나는 때입니다. 소돔성의 심판을 막을 의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14일 연중 20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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