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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이 어리석은 자야!

by 분당교회 2016. 7. 31.

이 어리석은 자야!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행복 또는 영적인 삶을 유보하고 사는데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갓난 아이 때부터 경쟁력을 키울 목적으로 영어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보다 좋은 유치원을 찾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천재성(?)에 감탄을 하면서 장차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꿈을 키워갑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선행 학습은 물론 필수입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이 학원 저 학원을 옮겨 다니면서 일류 대학 진학 프로젝트를 구체화합니다. 방학도 목적이 있는 체험과 연수로 채워지기 쉽습니다. 가면 갈수록 심한 경쟁에서 싸워 이겨나가는 훈련은 필수입니다. 청소년기의 꿈과 행복은 철저히 유보되어 나중에 일류 대학에 진학한 후로 미루어져야 합니다. 청소년기에 영혼의 양식을 추구한다거나 우정과 사랑을 존중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거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학생부 관리를 위해서 스펙을 쌓고 백과사전만큼이나 많은 입시 요강들을 줄줄 꿰찹니다. 물론 학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에 상당수 의존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들어간 대학 생활은 낭만과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직업기술원이 되어있습니다. 대학마다 진리와 시대정신을 탐구하기보다는 취업 사관학교가 되어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에서마저 행복은 없고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취업전선의 전투를 벌입니다. 그나마 절반 이상이 취업을 재수하고 학원을 전전하며 시험 준비에 청춘을 바칩니다. 청년 실업의 늪 속에서 결혼도 출산도 미래도 포기하고 사는 대열에서 다시 행복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천신만고 끝에 직장에 들어가도 다시 더 살벌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조기 퇴직의 위협 앞에서 안간힘을 써야 합니다. 결혼을 해도 맞벌이는 필수이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행복이라는 단어를 미래에 저당 잡혀야 합니다. 최근 일본의 젊은이가 쓴 책 ‘아, 보람 따위는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서는 이런 직장인들의 현실을 ‘사축’(社畜, 회사의 가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아, 자녀 교육이라는 또 다른 경쟁을 치러내면서 어느덧 인생의 가을을 맞이해야 합니다. 뒤늦은 노후준비에 정신 차릴 때 다시 행복은 뒤로 미루어져야 합니다. 아, 과연 우리 영혼이 만족하고 풍성해질 때는 언제일까요? 참으로 허망한 현실입니다.


(램브란트,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루가복음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부자가 소출을 많이 얻게 되어 궁리하다가 창고를 짓기로 결정합니다. 큰 창고를 짓고는 그 안에 재물을 꽉꽉 채워놓고 몇 년 동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꿈에 젖어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큰 창고에 가득 채울 만큼 재물을 모으느라 양심도 의리도 사랑도 다 지워버렸을 그의 영혼의 창고, 하늘나라의 창고에는 채워 넣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그의 삶에서 행복은 창고에 저장해놓는데 그만 그날 밤에 영혼을 데려간다니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자아성취나 보람보다는 물질을 통해서 얻으려고 합니다. 풍족한 먹을 것과 누릴 것을 가지고 편안한 자동차를 타고 여가를 즐긴다든지, 재산 축적을 통한 안락한 노후 생활을 꿈꾸며 오늘을 희생하지만 그런 편안한 생활이란 언제 올지 기약이 없습니다.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의 기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얼 만큼 소유하고 소비하느냐에 인간의 가치를 구분하면서 ‘호모 컨슈머스’(homo consumers)로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존재하느냐보다는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또 소비하느냐가 인생의 가치와 행복의 척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만약 현대인들로 하여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천국의 모습을 그려 보라고 한다면 그는 많은 새로운 물건과 신기한 장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백화점과 이것들을 사들일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진 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더 많은 특권을 행사 할 수 있는 한, 기묘한 장치와 상품들이 가득 찬 이 천당을 입을 헤 벌리고 배회할 것이다.’(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


호모 컨슈머스는 필연적으로 직업의 귀천을 나누게 되고 ‘차별’이 일상화 됩니다. 일의 가치는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거나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관점을 뒤집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창고에 축복을 쌓아놓는 것입니다. 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집착과 욕심을 덜어내고 그 안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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